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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시아·태평양

“24시간 쉬지않는 공장, 노동자는 입다문 로봇”

등록 2010-05-27 19:56수정 2010-05-27 22:23

중국 광둥성 선전의 폭스콘 공장 앞에서 자살한 한 남성노동자의 가족들이 26일 모기업인 대만 재벌 훙하이그룹 창업주 궈타이밍 회장의 공장 방문에 맞춰 억울함을 풀어줄 것을 요구하며 울부짖고 있다.
중국 광둥성 선전의 폭스콘 공장 앞에서 자살한 한 남성노동자의 가족들이 26일 모기업인 대만 재벌 훙하이그룹 창업주 궈타이밍 회장의 공장 방문에 맞춰 억울함을 풀어줄 것을 요구하며 울부짖고 있다.
폭스콘 연쇄자살 왜?
기본급 한화 20여만원…‘군대식 노동통제’ 비극 불러
고학력에 저임금 받는 ‘신세대 농민공’ 박탈감 반영돼





중국내 폭스콘 공장과 연쇄자살
중국내 폭스콘 공장과 연쇄자살
26일 중국 광둥성 선전시 북부 룽화에 있는 폭스콘(중국명 푸스캉) 공장. 폭스콘의 모기업인 대만 훙하이그룹의 궈타이밍 회장이 공장을 방문해 머리를 조아렸다. 이 공장에서 노동자들의 투신자살이 잇따르며 여론이 악화되자 회장이 직접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궈 회장이 대만으로 돌아간 지 몇 시간 뒤인 이날 밤 23살의 남성 노동자 한 명이 기숙사 7층에서 또다시 뛰어내려 자살했다. 이어 27일 아침에도 노동자 한 명이 투신자살을 기도해 중상을 입고 치료를 받고 있다고 중국 언론들이 전했다. 이달 들어 중국 내 폭스콘 공장에서 일어난 7번째 투신자살이자, 올 들어 13번째 자살 시도(10명 사망·3명 부상)다.

무엇이 폭스콘의 젊은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걸까?

“하루종일 쉬지 않고 돌아가는 공장, 42만의 ‘로봇 인간’.” 대만 <연합보>는 폭스콘 선전 공장을 이렇게 묘사했다. 13건의 자살 중 12건이 집중된 선전 공장은 42만명의 젊은 노동자들이 2교대로 쉼없이 일하며 애플의 아이폰·아이팟 등 고가의 전자제품들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공장을 취재한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27일 “폭스콘 노동자들은 감시 카메라와 감독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로봇처럼 손을 놀리고 있었다”고 묘사했다.


중국 광둥성 선전의 폭스콘 공장에서 26일 노동자들이 조립 라인에서 일하고 있다.  선전/블룸버그 연합뉴스
중국 광둥성 선전의 폭스콘 공장에서 26일 노동자들이 조립 라인에서 일하고 있다. 선전/블룸버그 연합뉴스
중국과 홍콩의 노동 전문가들은 폭스콘의 가혹한 군대식 관리와 노동강도가 비극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허난 출신의 22살 노동자는 “3년 전 이곳에 온 뒤로는 말하는 법도 잊고 지냈다”며 “감독에게 혼날까봐 일하는 동안은 말할 수 없고, 일한 뒤에는 너무 피곤해 몇년 동안 같이 산 룸메이트의 이름도 모르고 지낸다”고 했다. 현대식 공장 안에는 올림픽 경기장에 못지않은 수영장과 도서관 등이 갖춰져 있지만 노동자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광시 좡족 자치구 출신의 한 여성 노동자(21)는 “점심식사 시간이 30분밖에 되지 않아 식당까지 걸어가는 시간을 빼면 밥을 억지로 삼켜 넘기는 상황”이라며 “어떻게 수영할 시간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폭스콘의 모기업인 대만 재벌 훙하이그룹의 창업주 궈타이밍 회장이 26일 중국 광둥선 선전의 폭스콘 공장에서 기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폭스콘의 모기업인 대만 재벌 훙하이그룹의 창업주 궈타이밍 회장이 26일 중국 광둥선 선전의 폭스콘 공장에서 기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40만의 청춘들이 컨베이어 벨트에 얹혀 살아가는 이 공장의 비극엔, 중국의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신세대 농민공들의 좌절이 깔려 있다. ‘80허우’(80년대 이후 출생자), ‘90허우’ 신세대 농민공들은 고등학교 이상의 높은 교육을 받았고, 인터넷 문화에도 민감하지만, 중국의 급격한 경제·사회 발전에서 소외된 채 어떤 기회도 가질 수 없다는 박탈감에 빠져 있다. 지난 25일 11번째로 투신자살한 리하이(19)는 “현실과 앞날에 대한 희망의 차이가 너무 크다. 생활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다. 아버지를 끝까지 책임지지 못해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겼다.

폭스콘 연쇄자살 사건은 저임금 노동집약적 수출산업에 의존해온 중국 경제모델이 신세대 노동자들과 충돌을 일으키며, 종말로 향하는 상징으로도 해석된다. 궈위화 칭화대 교수 등 9명의 학자들은 지난주 공개서한에서 “기업들이 농민공이라는 이유로 저개발국의 평균 임금보다도 훨씬 낮은 임금을 주면서 젊은 노동자들에게 존엄성을 잃은 힘겨운 삶을 강요하고 있다”며 “폭스콘의 연쇄자살은 ‘세계의 공장’과 신세대 농민공들의 미래에 의문을 던지게 한다”고 지적했다.


베이징/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 폭스콘

대만 최대 재벌인 훙하이그룹의 창업주 궈타이밍(60) 회장이 세운 세계적 전자제품 생산 기업. 1974년 창업한 훙하이는 1988년 당시 논밭이 끝없이 펼쳐지던 광둥성 선전시 북부 룽화에 폭스콘 공장을 세우며 본격적으로 아이티 산업에 뛰어들었다. 중국의 저임금, 값싼 토지,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전세계 유명 기업들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제품을 값싸게 공급하면서 급성장해, <포천> 기준 전세계 전자부문 기업 중 8위를 차지한다. 노동자 42만여명이 함께 생활하는 선전 공장은 ‘궈타이밍의 자금성’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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