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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시아·태평양

아프간 여성들 ‘목숨건 출사표’ 봇물

등록 2010-08-25 20:07수정 2010-08-26 09:56

지난 총선 보다 24% 늘어
탈레반 등 살해 협박 줄이어
얼굴대신 과일사진 싣기도
파레다 타라나는 모르는 남성들로부터 매일 10여통의 협박전화를 받는다. 나질라 앙기라는 최근 탈레반으로부터 “죽여버리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파르쿤다 자흐라 나데리는 선거 포스터에 자신의 얼굴 대신 배(과일) 사진을 싣기로 했다.

 다음달 28일 총선을 앞두고,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고 영국 <가디언>이 24일 전했다. 이번 총선에는 아프간 전역에서 406명의 여성이 입후보해 역대 최고기록을 세웠다. 탈레반의 위협과 이슬람 보수파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5년 총선 당시 328명보다 24%나 늘어난 수치다. 특히 상대적으로 치안이 안정된 수도 카불은 여성 후보가 갑절 이상 늘었다.

 아프간은 전체 의석 249석 중 최소 64석이 여성의 몫이다. 그러나 법적 보장에도 불구하고 아프간에서 여성의 정치 참여는 여전히 이슬람 규율에 어긋날 뿐 아니라 때론 목숨을 걸어야 하는 모험이다. 당선이 되면 다행이지만 낙선하면 고향이나 고국을 등질 각오까지 해야 한다. 친 탈레반 성향 정당인 ‘히즈비 이슬라미’는 아프간의 여성의석 할당제를 “아프간 문화에 낯선 외세가 심어놓은 관행”이라고 폄하했다.

 카불 시내 곳곳의 선거벽보판에는 여성 후보 포스터의 얼굴 사진이 찢겨나가거나 붉은 페인트칠로 훼손되고, 그나마 오래 가지도 못한다. 유명가수 출신으로 세계식량계획(WFP)에서 근무했던 타라나는 “이미 선거운동원들에게 이런 정도는 각오해야 한다고 말해줬다”며 “고향에선 출마할 수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수학교사 출신인 하미다 아메리 후보도 완고한 이슬람 보수주의의 장벽을 절감했다. “최근 호의적인 뮬라(이슬람공동체 지도자)로부터 자신의 모스크에서 선거 유세를 하라는 초청을 받았지만, 모여있던 남성들 대다수가 야유를 퍼붓고 퇴장해버렸어요.”

 서른 살의 주부인 앙기라 후보는 탈레반이 혐오할만한 거의 모든 조건을 갖췄다. ‘여성 후보’일 뿐 아니라, 가족과 떨어져 물류회사를 경영하는 ‘기업인’이며, 선거홍보물에 “탈레반 치세는 암흑기”라는 문구까지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경력을 읽어본 탈레반 지도자로부터 직접 살해 협박을 받았지만 “탈레반 시대는 끝났으며, 우리는 새로운 아프간을 만들고 있다”며 결의를 다졌다.

 아프간 자유공정선거재단(FEFA)은 최근 보고서에서 “여성 후보들은 탈레반, 남성 경쟁자, 심지어 평범한 주민들로부터도 감당할 수 없을만큼의 심야 협박전화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프간에선 문맹자가 많은 탓에 얼굴을 많이 알리는 게 유리하다. 그럼에도 나데리 후보가 선거포스터에 이어 투표용지에도 얼굴 대신 과일 사진을 싣기로 한 이유가 신변위협 때문만은 아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정치에 대해 생각하도록 노력하는데, 유권자 대다수는 선거를 미인대회처럼 여겨요. 선거포스터의 여성 후보들이 패션쇼나 영화 광고를 하는 것 같아요.”


 물론 아프간 여성들에 일상화돼 있는 차별은 여전히 뿌리깊고, 정치권에 나선 여성들은 일반 여성들에겐 ‘먼 세계’의 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늘어난 여성 출마자들은 아프간 여성 스스로 사회의 문제해결에 나서기 시작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국제 아프간선관위는 최근 “이번 총선 때에선 치안 불안정을 우려해 전국에서 투표소 938곳을 폐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아프간은 지난해 8월 대선 당시 탈레반의 선거 방해와 위협으로 상당수 지역에서 투표가 이뤄지지 못한데다 부정선거 시비까지 불거진 바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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