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21일 오전 서울 서소문 시청 별관에서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에 시장직을 걸겠다는 내용의 기자회견문을 읽은 뒤 절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움직일수록 빠져드는 수렁에 빠진 한국과 일본의 우익
일본우익이 ‘새역모’ 주도 방송국 앞 시위라니 요상해/ 한승동
일본우익이 ‘새역모’ 주도 방송국 앞 시위라니 요상해/ 한승동
오세훈의 서울시와 일본 우익. 닮은 점이 있다.
자신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해 시작한 서울시의 무상급식 반대 캠페인이 아무래도 위기에 봉착한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투표 결과에 따라 시장직을 걸겠다느니 어쩌니 하는 얘기 따윈 하지 않았을 테니까. 이건 어쩌면 선거 결과와도 그다지 상관없는, 더 장기적 관점에서 파악해야 실상이 제대로 보일 흥미진진한 사건인지도 몰라. 조중동과 방송들이 복지논쟁을 포퓰리즘으로 몰아 초점을 흐려놓으려는 집권당 전략을 그대로 대변해주는 얄팍하고 기이한 상황에서, 밀어붙이면 이길 것이라 계산했겠고. 그걸 위해 집권세력은 정권장악 초기부터 이제까지 쉼 없이 언론통제 기구들을 자신들 입맛대로 재편하고 길들이는데 무진장 힘을 쏟아 왔다.
하지만, 입만 열면 포퓰리즘 운운 하는 것 빼면 뾰족한 전략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고. 어떻게든 기업 프렌들리, 부자 감세의 집권세력에겐 절대 약점으로 작용할 복지논란 자체를 잠재워야겠고, 그렇게 해서 포퓰리즘은 그냥 대책없이 읊어대고 읊조리는 주문처럼 돼버렸다. 정작 복지가 무엇인지, 포퓰리즘이 무엇인지 따져본 적도 없이, 그저 나쁘다고만. 그런데 그 주문의 저주가 그들 소망대로 야당이나 복지론자들 머리에 쏟아질지. 돼가는 꼴로 봐서는, 그들 자신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가능성도 없지 않은데.
복지문제는 지난 두 차례의 지방·보궐선거에서 여당 참패를 초래하는데 중요한 구실을 한 논란거리. 그대로 둘 순 없었겠지. 복지논쟁을 막아버리든지, 아니면 자신들 뜻대로 비틀어 논쟁을 그들 입맛대로 끌어가든지, 어느 쪽으로든 휘어잡지 못하면 내년 총선과 대선도 어렵다고 봤겠지. 그래서 오세훈의 강공을 내심 기뻐했을 것. 잘 되면 여당이 살고, 잘 못되어도 다치는 건 주로 오세훈일 테니. 하지만, 일이란 게 일단 시작되면 애초 의도한 쪽 계산대로만 굴러가는 게 아니어서, 오세훈이 죽고 사는 게 그 개인의 일, 서울시만의 일이 아니게 됐다. 자칫 집권 여당이 박살날지도 모를 지경으로 일이 커졌다. 매스컴도 차기 정권을 가늠하며 눈치를 살피게 되는 집권 말기에, 일단 여기서 무너지면, 그것이 내년 선거들의 풍향계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상황에서 걷잡을 수 없는 권력누수와 민심이반이 일어날 것. 이 대처불능 상태를 집권세력은 제일 겁내겠지. 마침내 자기들끼리도 당혹스러워하며 네탓 내탓 따지기 시작하고 그 날선 공방들이 그대로 바깥으로 흘러나올 지경이 됐고. 그만큼 내부 혼선이 심각하고 다급해졌다는 얘기겠지. 자신감도 없어지고.
이번 투표에서 지면 말할 것도 없고, 설사 가까스로 투표율 33.3%를 넘기고 오세훈 지지가 더 많은 걸로 집계되더라도 집권당이 얻을 건 별로 없을 듯. 이 정도라면 애초 겨냥했을 차기 차차기 대선이란 게 무망. 시장직을 거네, 무릎을 꿇네 하는 호들갑을 떨며 얻은 전리품치고는 너무 보잘것없고 양날의 칼처럼 위험한 것. 어찌 보면 오직 잃을 것뿐.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물고기 통발 같은 것, 바닥 없는 수렁 같은 것.
요즘 일본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을 보면 일본 또는 일본 우익이 유사한 지경에 빠져든 건 아닌가 하는 생각.
1500여명이 도쿄 중심 신개발지 오다이바에 모여 장사진을 치며 외친 구호가 고작 한류 반대였다니. 한류 방송 많이 내보내는 후지 텔레비전 비판을 명목상 내세웠지만, 속내가 그게 아니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일. 게다가 그 후지 텔레비전이라는 게 바로 일본 우익의 선전 거점 <산케이> 계열 아닌가. 독도는 일본땅을 외치는 ‘새역모’ 교과서 주도한 게 바로 산케이와 그 이웃들인데, 그 계열사 후지 앞에서 한류는 안돼! 시위를 벌여야 하는 이상한 형국. 세상사 정말 알 수 없어.
어쩌다가 일본이 이 지경이 됐나. 어찌 고작 한류, 자신들이 상대도 해주지 않았던, 후진 이웃이라 깔봤던 한국에서 건너온 방송 프로그램 때문에 분해서 펄펄 뛰며 거리에 떼지어 나가 안돼, 안돼! 외쳐야 할, 정말 쪽팔리는 이런 황당지경에 이르렀나. 만일 그 문제의 드라마나 가요 프로들이 베트남이나 타이, 말레이시아, 또는 인도, 아니면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하다못해 중국 것이었다 해도 그랬을까? 그럴 리가 없지. 자신들의 식민지라 깔봤던 조선에서 건너온 것이니 속이 뒤집혔을 것. 거기에도 뒤진다며 속좁은 우익들은 펄펄 뛰었을 테지. ‘아름다운 나라 일본’ 운운하며 점잖게 거들먹거리던 우익들의 실체가 실은 그 정도. 어쩌면 그들이 의식하고 있는 건 조선에서 건너온 자그만 반란 자체가 아니라 그것조차 튀어 보이게 만드는, 초조하고 절망스럽게 만드는, 그들 뒤에 웅크리고 있는 더 거대한 그림자, 일본의 장기 몰락이라는 그림자일지도 모르지. 거기에 대한, 그런 꼴로 나라를 끌어가는 보수 주류에 대한 거부감, 분통이자 우리가 이대로 가라앉지는 않아! 하고 외치고 싶은 암울한 우익 멘털리티의 표출일지 모르지. 한류는 그저 만만한 구실일 뿐. 물론 한류를 어떻게 봐야 할지,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 하지만, 지극히 상업주의적인 그 한류 프로들을 이익을 좇는 일본 민방들이 수입해서 돈 남기고 장사하는 것에까지 내셔널리즘을 동원하는 일본 우익의 천박함이라니. 한류 하나 따라잡지 못해 헉헉대며 되지도 않는 트집 잡기에 이른 몰골이라니. 그렇게 해서 1세기 전에는 통했지. 대륙 낭인들까지 풀어서 거슬리는 세력은 힘으로라도 제거해버렸고, 그래도 될 정도로 당시 세상은 일본에 유리한 쪽으로 흘러갔지. 중국 조선이 워낙 무대책이었고, 동아시아를 노리는 서양세력까지 일본을 밀어주고 이용했으니까. 로마 멸망에서 보듯, 오래고 낡은 문명을 뒤엎는 건 변방 신흥세력, 일종의 그런 법칙대로(변방 미국도 그러지 않았나) 일본은 변방에서 일어서 중심으로 밀고 들어갔지. 그야말로 욱일승천. 하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은데. 일본이 뒤에 업었던 서방은, 지금 미국이나 유럽을 보듯 밀물이 아니라 썰물. 바야흐로 해양보다는 대륙 세력 쪽이 힘을 얻어가는 형국. 일본 우익들의 좌절감도 아마 이런 대세를 읽은 데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지. 그럴수록 미국과 더욱 밀착하려고 일본 우익은 날뛰겠지만(기득권을 지키려고), 미국도 예전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주고받던 때의 욱일승천지세는 이미 가버린 세월. 조락하는 세력은 빈 수레 요란하고 빈 깡통이 시끄럽듯 얼마간 떠들썩하겠지만 남는 건 허망. 세상사 한 번 그렇게 굴러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어쨌든, 천하의 일본이 한때 식민지로 부려먹고 등쳐 먹고 회 쳐 먹고 찜 쪄 먹었던 조그만 이웃 조선, 언제나 일본보다 몇 수 아래라고 깔봤던, 바로 그 재미에 우쭐대며 살아왔던 그 보잘것없던 한국에서 건너온 방송 프로그램 따위에 절절매고 수백, 수천명이 도심 한가운데 모여 반한류를 외쳐야 할 지경이 되다니.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로군. 이게 사실 조선의 친일파들이 우러러봤던, 아니 지금도 그 후예들이 높이 떠받드는 일본 우익의 실체요 진짜 실력. 세상의 흐름을 탔을 때 가늠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하고 단단해 보이던 것들이, 세상 흐름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 하잘것없는 것으로 급변하는, 알고 보면 별것 아닌, 여우가 호랑이 위세를 빌려 거들먹거린다는 호가호위, 수레에 실린 부처님상에 고개 숙이는 거리의 다중을 자신에 대한 경모로 착각하는 당나귀의 그것과 같은 그런 허상. 오다이바에 1500여명이나 모여 반한류를 외치는 건 저들의 실력이라는 게 바로 그런 허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자백하는 극적인 퍼포먼스 같은 게 아닐까. 어쩌면, 저들이 떠받드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말을 빌리자면, 탈아입구에서 탈구입아로의 복귀일지도 모르지. 자신들이 밤낮 숭모해온 서방이 아니라 동방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 서방이라는 착각에서 지금껏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그럴 정도로 일본의 위세가 예전 같았다면, 까짓것 이웃 조그만 나라에서 건너온 유행쯤 찻잔 속 태풍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관대하게 끌어안는 아량 정도는 어렵지 않게 베풀었을 텐데. 제이팝 유행도 대단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건 뭐야. 그러니까, 1500여명의 일본인들이 오다이바에서 반한류 시위를 벌였다는 건 그저 그런 에피소드의 하나가 아닐 수 있다. 그건 어쩌면 근대 이후 서구 지배하의 세계에서 동아시아를 대표했던 일본의 세기가 끝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흥미롭고도 중대한 사건일 수 있다. 이 작은, 별것 아닌 유행가 한 자락에 얽힌 에피소드 같은 사건이. 일본의 세기는 끝났다. 오다이바 사건은 그걸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일 수 있다. 마치 자민당 55년 체제가 저토록 맥없이 허물어지듯이. 화무십일홍이라! 길게 보면, 서울시의 오세훈도 친미·친일 보수우익연합 개발독재의 장기집권체제, 1948년 이후까지 담으면 48년 체제, 1961년 쿠데타 이후로 치면 61년 체제, 하염없이 가라앉고 있는 그 체제의 마지막 에피소드들 중의 하나일지도 모르지. 메이지의 근대와 친미 유사식민체제로 고도성장을 구가해온 일본, 천황제 그늘조차 여전히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는, 뉴라이트들이 이른바 진보·좌파를 공격할 때 들먹이는 반봉건 반식민이라는 말이 가장 합당하게 적용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본이 저렇게 기울어가듯, 분단 한국의 개발독재 시대, 87년 체제로도 끝나지 않았던 그것이 이제야 제대로 저물어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건일지도. 너무 아전인수인가? 어쨌든 지방선거 뒤 소수 야당 처지가 돼버린 서울시장이 만만해 뵈는, 자기 소관도 아닌 학교 무상급식을 화두로 주민투표 하자고 나서고 그것 때문에 시장직 걸고 전전긍긍하는 게 예삿일은 아니니까. 오세훈뿐만 아니라 한나라라는, 따지고 보면 좀 이상한 이름을 붙인 정당의 흥망조차 꺼져가는 한 시대의 말기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 두고 봐야겠지만. 한승동 논설위원 블로그의 글 보기
어쩌다가 일본이 이 지경이 됐나. 어찌 고작 한류, 자신들이 상대도 해주지 않았던, 후진 이웃이라 깔봤던 한국에서 건너온 방송 프로그램 때문에 분해서 펄펄 뛰며 거리에 떼지어 나가 안돼, 안돼! 외쳐야 할, 정말 쪽팔리는 이런 황당지경에 이르렀나. 만일 그 문제의 드라마나 가요 프로들이 베트남이나 타이, 말레이시아, 또는 인도, 아니면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하다못해 중국 것이었다 해도 그랬을까? 그럴 리가 없지. 자신들의 식민지라 깔봤던 조선에서 건너온 것이니 속이 뒤집혔을 것. 거기에도 뒤진다며 속좁은 우익들은 펄펄 뛰었을 테지. ‘아름다운 나라 일본’ 운운하며 점잖게 거들먹거리던 우익들의 실체가 실은 그 정도. 어쩌면 그들이 의식하고 있는 건 조선에서 건너온 자그만 반란 자체가 아니라 그것조차 튀어 보이게 만드는, 초조하고 절망스럽게 만드는, 그들 뒤에 웅크리고 있는 더 거대한 그림자, 일본의 장기 몰락이라는 그림자일지도 모르지. 거기에 대한, 그런 꼴로 나라를 끌어가는 보수 주류에 대한 거부감, 분통이자 우리가 이대로 가라앉지는 않아! 하고 외치고 싶은 암울한 우익 멘털리티의 표출일지 모르지. 한류는 그저 만만한 구실일 뿐. 물론 한류를 어떻게 봐야 할지,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 하지만, 지극히 상업주의적인 그 한류 프로들을 이익을 좇는 일본 민방들이 수입해서 돈 남기고 장사하는 것에까지 내셔널리즘을 동원하는 일본 우익의 천박함이라니. 한류 하나 따라잡지 못해 헉헉대며 되지도 않는 트집 잡기에 이른 몰골이라니. 그렇게 해서 1세기 전에는 통했지. 대륙 낭인들까지 풀어서 거슬리는 세력은 힘으로라도 제거해버렸고, 그래도 될 정도로 당시 세상은 일본에 유리한 쪽으로 흘러갔지. 중국 조선이 워낙 무대책이었고, 동아시아를 노리는 서양세력까지 일본을 밀어주고 이용했으니까. 로마 멸망에서 보듯, 오래고 낡은 문명을 뒤엎는 건 변방 신흥세력, 일종의 그런 법칙대로(변방 미국도 그러지 않았나) 일본은 변방에서 일어서 중심으로 밀고 들어갔지. 그야말로 욱일승천. 하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은데. 일본이 뒤에 업었던 서방은, 지금 미국이나 유럽을 보듯 밀물이 아니라 썰물. 바야흐로 해양보다는 대륙 세력 쪽이 힘을 얻어가는 형국. 일본 우익들의 좌절감도 아마 이런 대세를 읽은 데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지. 그럴수록 미국과 더욱 밀착하려고 일본 우익은 날뛰겠지만(기득권을 지키려고), 미국도 예전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주고받던 때의 욱일승천지세는 이미 가버린 세월. 조락하는 세력은 빈 수레 요란하고 빈 깡통이 시끄럽듯 얼마간 떠들썩하겠지만 남는 건 허망. 세상사 한 번 그렇게 굴러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어쨌든, 천하의 일본이 한때 식민지로 부려먹고 등쳐 먹고 회 쳐 먹고 찜 쪄 먹었던 조그만 이웃 조선, 언제나 일본보다 몇 수 아래라고 깔봤던, 바로 그 재미에 우쭐대며 살아왔던 그 보잘것없던 한국에서 건너온 방송 프로그램 따위에 절절매고 수백, 수천명이 도심 한가운데 모여 반한류를 외쳐야 할 지경이 되다니.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로군. 이게 사실 조선의 친일파들이 우러러봤던, 아니 지금도 그 후예들이 높이 떠받드는 일본 우익의 실체요 진짜 실력. 세상의 흐름을 탔을 때 가늠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하고 단단해 보이던 것들이, 세상 흐름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 하잘것없는 것으로 급변하는, 알고 보면 별것 아닌, 여우가 호랑이 위세를 빌려 거들먹거린다는 호가호위, 수레에 실린 부처님상에 고개 숙이는 거리의 다중을 자신에 대한 경모로 착각하는 당나귀의 그것과 같은 그런 허상. 오다이바에 1500여명이나 모여 반한류를 외치는 건 저들의 실력이라는 게 바로 그런 허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자백하는 극적인 퍼포먼스 같은 게 아닐까. 어쩌면, 저들이 떠받드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말을 빌리자면, 탈아입구에서 탈구입아로의 복귀일지도 모르지. 자신들이 밤낮 숭모해온 서방이 아니라 동방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 서방이라는 착각에서 지금껏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그럴 정도로 일본의 위세가 예전 같았다면, 까짓것 이웃 조그만 나라에서 건너온 유행쯤 찻잔 속 태풍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관대하게 끌어안는 아량 정도는 어렵지 않게 베풀었을 텐데. 제이팝 유행도 대단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건 뭐야. 그러니까, 1500여명의 일본인들이 오다이바에서 반한류 시위를 벌였다는 건 그저 그런 에피소드의 하나가 아닐 수 있다. 그건 어쩌면 근대 이후 서구 지배하의 세계에서 동아시아를 대표했던 일본의 세기가 끝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흥미롭고도 중대한 사건일 수 있다. 이 작은, 별것 아닌 유행가 한 자락에 얽힌 에피소드 같은 사건이. 일본의 세기는 끝났다. 오다이바 사건은 그걸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일 수 있다. 마치 자민당 55년 체제가 저토록 맥없이 허물어지듯이. 화무십일홍이라! 길게 보면, 서울시의 오세훈도 친미·친일 보수우익연합 개발독재의 장기집권체제, 1948년 이후까지 담으면 48년 체제, 1961년 쿠데타 이후로 치면 61년 체제, 하염없이 가라앉고 있는 그 체제의 마지막 에피소드들 중의 하나일지도 모르지. 메이지의 근대와 친미 유사식민체제로 고도성장을 구가해온 일본, 천황제 그늘조차 여전히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는, 뉴라이트들이 이른바 진보·좌파를 공격할 때 들먹이는 반봉건 반식민이라는 말이 가장 합당하게 적용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본이 저렇게 기울어가듯, 분단 한국의 개발독재 시대, 87년 체제로도 끝나지 않았던 그것이 이제야 제대로 저물어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건일지도. 너무 아전인수인가? 어쨌든 지방선거 뒤 소수 야당 처지가 돼버린 서울시장이 만만해 뵈는, 자기 소관도 아닌 학교 무상급식을 화두로 주민투표 하자고 나서고 그것 때문에 시장직 걸고 전전긍긍하는 게 예삿일은 아니니까. 오세훈뿐만 아니라 한나라라는, 따지고 보면 좀 이상한 이름을 붙인 정당의 흥망조차 꺼져가는 한 시대의 말기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 두고 봐야겠지만. 한승동 논설위원 블로그의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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