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도로용 시멘트구조물에 집잃은 사람들 몰려
국왕, 홍수소식에 건강악화
국왕, 홍수소식에 건강악화
아직 홍수가 빠지지 않은 타이의 수도 방콕에 벌집이 등장했다. 도시 고가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만들어놨던 벌집 모양의 시멘트 구조물에 홍수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들어가 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국 <시엔엔>(CNN)은 11일 방콕 북부 빠툼 타니에 생겨난 벌집의 일상을 소개했다. 양쪽이 뻥 뚫린 터널같은 이곳에는 수십명의 이 지역 주민들이 생필품만을 챙겨와 살고 있었다. 다행히 전기는 들어온다. 건설회사가 사람들이 여기에 살 수 있도록, 또 전기를 끌어와 쓸 수 있도록 허락했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사람들은 수십m 떨어진 자신의 ‘진짜 집’을 멍하니 바라보며 지낸다.
가족 4명과 함께 이 곳에서 살고 있는 째우는 홍수가 닥친 이래로 일도 없고 돈 한푼도 벌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방콕대학 자원봉사자들이 음식을 갖다주고 가끔 정부에서도 음식과 물을 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마련해 놓은 대피소로 갈 생각은 없다. 여기가 공간도 더 넓고 집을 지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타이 북부 홍수 지역에서는 빈집털이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흉흉한 소식이 들린다. 하지만 무엇보다 여기선 아는 사람들과 매일 얼굴을 마주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물은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이 빠져나간 땅에는 뱀과 악어가 어슬렁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불어난 물에서 헤엄을 치고 논다. 어른들은 물에서 놀지 말라고 야단치기를 이미 포기했다.
방콕 홍수에 충격을 받은 것은 서민들 뿐만이 아니다.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84)은 최근 방콕의 홍수 소식을 듣고 때때로 의식을 잃을 만큼 건강이 나빠졌다고 막내딸인 쭐라폰 공주(54)가 밝혔다. <에이피>(AP) 통신은 푸미폰 국왕이 쇼크를 받은 뒤 복부 내출혈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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