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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시아·태평양

복싱 영웅 ‘파퀴아오’의 석연찮은 판정패…필리핀 열도 ‘멘붕’

등록 2012-06-11 15:25수정 2012-06-11 16:18

웰터급 타이틀 매치에서 신예 브래들리에 져
“벨트를 도둑맞았다” 흥분…11월쯤 재경기
판정이 내려지던 순간, 필리핀 열도는 깊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내 옅은 한숨이 열도를 감쌌다. 챔피언의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한 필리핀인들은 “벨트를 도둑맞았다”고 외쳤고, 텔레비전을 통해 경기를 지켜보던 여성팬들이 얼굴을 감싸 쥐고 눈물을 흘렸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필리핀의 영웅 매니 ‘팩맨’ 파퀴아오가 1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그랜드호텔 특설링에서 열린 국제복싱기구(WBO) 웰터급 타이틀 매치에서 미국의 티모시 브래들리 주니어(28)에게 1-2의 판정패를 기록했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잠시 충격에 빠졌던 군중들이 엄지를 밑으로 내리며 고함을 질러댔다“고 보도했다.

시작부터 불안한 느낌의 경기였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복서로 추앙받는 파퀴아오의 명성에 비교한다면 상대 브래들리는 ‘듣보잡’에 가까운 선수였지만, 지금까지 열린 28번의 경기에서 한번도 패하지 않은 강타자기도 했다. 그래도 챔피언은 초반 특유의 경쾌한 움직임을 선보이며, 경기를 리드해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후반으로 가며 체력이 떨어진 챔피언의 패배였다.

필리핀인들에게 파퀴아오는 단순한 권투선수 이상의 존재다. 그는 필리핀의 ‘인생 역전’의 신화였다. 파퀴아오는 1978년 12월17일 필리핀 민다나오섬의 부키드논주 키바웨하루에서 하루에 한끼를 먹기도 힘든 가난한 농부의 집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가는 바람에 어머니를 위해 길거리에서 꽃과 담배를 팔았다. 가계를 책임지기 위해 12살부터 권투를 시작해 16살이 조금 넘었을 때 프로에 입문했다. 이후 그는 플라이급, 슈퍼 밴텀급, 슈퍼 페더급, 라이트급, 웰터급, 슈터 웰터급 등 6개 체급에서 세계 메이저 타이틀을 획득했고, 페더급과 슈퍼 라이트급에서는 이 체급의 당대 최고의 선수인 영국의 리키 해튼과 멕시코의 마르코 안토니오 바레라를 꺾어 사실상 8체급을 정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별명은 ’필리핀의 싸우는 자존심’, ‘인민의 챔피언’이었다. 그가 4체급을 석권했을 때 그의 경기 시청률은 63.8%였고, 2008년 12월6일에 미국이 자랑하는 복싱 천재 오스카 델라 호야와 싸울 때는 45.6%를 기록했다.

이날 경기를 지켜본 37살의 필리핀 노동자 라헬 라보이는 “분명 파퀴아오가 더 많이 때렸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날 파퀴아오의 중계를 무료로 위성중계 하는 마닐라 동부 마리키나의 한 공원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그는 이 경기에 수백 페소의 판돈을 걸었지만, 이 돈도 날릴 위기에 놓였다고 <아에프페> 통신이 전했다.

필리핀인들은 편파 판정으로 벨트를 도둑맞았다며 흥분했다. 미국의 스포츠 채널 <이에스피엔>(ESPN)은 파퀴아오(총 펀치수 493개에서 유효타 190개)가 브래들리(총 펀치수 390개에서 유효타 109개) 보다 더 많은 펀치를 날리면서 공격적인 면을 보여줬고, 적중률도 높았다고 분석했다. 링 옆에서 경기를 지켜본 호세 에스트라다 필리핀 의원은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필리핀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이건 날강도와 같은 짓”이라고 흥분했다.

베니그노 노이노이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냉정을 찾을 것을 요청했다. 그는 “파퀴아오는 이번 패배에도 불구하고 필리핀의 보물 같은 존재”라며 “벨트를 잃었지만 우리는 그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이름을 알렉스라고 밝힌 필리핀인도 독일 <데페아>(dpa) 통신과 인터뷰에서 “매니가 당했다. 실망했지만 그는 여전히 내 영웅”이라고 말했다. 아비갈리 발테 대통령궁 부대변인은 “여전히 필리핀의 유일한 국민복서”라며 “그는 다시 한번 필리핀인들의 강함과 끈끈함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이날 패배에도 챔피언은 굴하지 않았다. 그는 경기가 끝난 뒤 “브래들리와 재경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외신들은 둘의 재경기가 11월께 열릴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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