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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시아·태평양

파키스탄 의류공장 화재로 289명 사망한 배경엔...

등록 2012-09-13 19:05수정 2012-09-13 20:25

파키스탄 의류공장 화재 289명 사망
출구는 폐쇄하고 창문엔 쇠창살…“사장, 사람보다 옷 걱정”
열악한 시설·최저임금도 못받아
500억 자산가 공장주는 자취 감춰
의류산업, 외화벌이 일등공신
검게 그을린 건물은 그칠 줄 모르고 연기를 내뿜었다. 구조대원들은 하얀 천을 덮은 주검을 쉴새없이 밖으로 실어날랐다. 전날 밤 공장에서 일어난 큰불로 289명이 숨진 파키스탄 카라치 의류공장 앞엔 12일 피해자의 가족·친척 수백명이 모여들어 눈물바다를 이뤘다.

불이 난 4층짜리 건물은 화재 당시 외부와 통하는 문이 한 곳밖에 없었다. 다른 비상구들은 모두 잠겨 있었고 창문은 쇠창살로 막혀 있었다. 물론, 화재경보나 스프링쿨러도 없었다. 불이 난 지 5분도 안돼 불길이 온 공장으로 번졌다. 그나마 운 좋은 이들은 창살을 부수고 달아났지만 임신한 27살 여성 노동자를 비롯해 65명이 건물 밖으로 뛰어내리다 척추가 부러졌다.

공장주는 옷을 도둑맞거나 노동자들이 근무시간 중에 몰래 빠져나갈 것을 염려해 출구를 폐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공장에서 일했던 무함마드 페레즈는 “사장은 노동자들보다 옷 걱정을 더 많이 했다”며 “만약 비상구가 열려 있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구했을 것”이라고 <파키스탄 데일리 타임즈>에 말했다. 450여명의 노동자가 일했던 이 공장은 옷과 천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으나 통풍구가 하나도 없었다. 무함마드는 “불평하는 사람들은 모두 해고됐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현지언론들은 공장 노동자들 대다수가 가난한 노동자계층이 몰려사는 카라치의 오랑기마을 출신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매달 파키스탄 최저임금(약 82달러)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았다. 화재가 일어난 이 날도 마침 월급날이어서 모두들 급여봉투를 기다리고 있었다.

파키스탄에서 의류산업은 외화벌이의 일등공신이다. 국내 총생산의 7.4%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체 제조업 종사자 중 38%가 이 분야에서 일한다. <뉴욕타임즈>는 노동자들은 열악한 처우로 고통받고 있으나 공장주들은 이로써 막대한 이윤을 얻고 있다고 보도했다. 화재가 일어난 카라치의 공장주 또한 1000만~5000만달러의 자산가로 알려졌는데, 그는 이번 사건 이후 자취를 감췄다. 파키스탄 정부 또한 이번 비극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2003년부터 산업지대인 펀자브와 카라치 지역에선 감독관들이 공장을 방문해 전기안전검사를 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는 등 근로감독, 안전시설 규제를 지속적으로 완화해왔다.

2012년 파키스탄의 모습은 섬유·의류산업이 총수출에서 약 38%를 차지하던 1970년대 우리나라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청계천 피복공장 노동자들은 정부규제의 사각지대에서 최저임금만큼도 못한 임금을 받아가며 하루에 14~16시간씩 일했다.

노동인권 민간기구인 ‘파키스탄 노동 연구소’(PILER) 의 활동가 샤라파트 알리는 “지난해 151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숨졌고, 여기엔 정부 책임도 크다”며 “정부는 더이상 노동자들의 건강·안전을 보장하는 법을 위반하는 공장주들을 방조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이유주현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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