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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시아·태평양

“식량·전기 없는 이곳은 지옥…제발 도와달라”

등록 2013-11-11 20:36수정 2013-11-11 22:34

‘태풍 직격탄’ 타클로반 현장을 가다

레이테주 건물 70~80% 파괴
굶주린 주민들 약탈 나서기도
주검 수습 역부족…악취 진동

세부에 응급구호전진기지 설치키로
국제사회·인도지원단체도 구호 나서
낙원으로 가는 관문으로 여겨지던 세계적 휴양지, 필리핀 세부는 이제 ‘절망의 땅’으로 향하는 관문이 되어버린 듯하다.

11일 도착한 세부 공항은 사상 최악의 태풍 하이옌에 만신창이가 된 피해지역으로 다가가려는 구호단체와 각국 정부의 구조팀, 취재진 등으로 북적이는 ‘구호 베이스캠프’ 같은 풍경이다.

땅 위의 모든 것을 쓸어가버릴 듯했던 하이옌이 몰고 온 바람과 비의 공습을 받은 지 사흘째, 용케 버텨낸 생존자들에겐 현실이 생지옥이 되어버렸다. 거리 곳곳엔 주검이 쌓여 있고, 물도, 음식도, 전기도 끊겼다. 살던 집은 쓰레기 더미가 되어버렸다. 가장 심한 피해를 입은 레이테주 타클로반에선 생존자들이 먹을거리를 찾아 거리를 ‘좀비’처럼 떠돌고 있어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도로도, 공항도, 항구도 마비돼 구호물자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약탈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흘이나 아무것도 먹질 못했다.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하게 된다.” 4남매의 아버지라는 에드워드 구알베르토는 <아에프페>(AFP) 인터뷰에서 “무너진 집터를 돌며 음식을 찾다가 주검을 숱하게 밟았다”고 말했다. 통신은 “타클로반 시내에선 군용트럭 6대가 돌아다니며 주검을 수습하고 있지만, 도처에 깔려 있는 주검을 다 치우기엔 역부족”이라며 “벌써부터 주검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태풍으로 무너진 담에 아버지가 깔려 죽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10살 소년 라파엘의 가족은 지금 타클로반에 있는 대피소 밖 화물차에서 지내고 있다. 대피소 안의 악취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라파엘은 “우리 가족은 모두 병들어가고 있어요. 밤이면 날씨가 쌀쌀한데 입을 옷도 없어, 동생들은 계속 기침을 하고 있어요”라며 울먹였다고, 그를 만나고 온 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는 전했다.

타클로반을 빠져나가려고 걸어서 공항까지 왔다는 마지나 페르난데스는 <아에프페>에 “내일이면 늦는다.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하다. 지금 여긴 지옥보다 더하다”고 말했다. 타클로반을 중심으로 레이테주의 건물 70~80%가 파괴됐다.

필리핀의 소셜뉴스 사이트인 래플러(Rappler.com)에는 피해 주민들의 사연이 계속 모여들고 있다.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외부와 연결이 끊긴 사마르 지역 기포를로스의 시장은 오토바이를 타고 8시간을 달려 나온 끝에 “1만2000명 인구가 살던 마을의 95% 이상이 피해를 입었다. 완전히 파괴된 우리 마을을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동영상을 이 사이트에 올렸다.

구호의 손길은 더디기만 하다. 앞서 10일 참사현장을 둘러본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은 “응급구호 활동에 나서야 할 공무원들도 태풍 피해를 입어 상당수가 출근조차 못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필리핀 정부는 10일 긴급 국무회의를 열어 타클로반에서 비행기로 40분 거리인 세부에 응급구호 전진기지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아직은 피해지역 대부분이 전기와 통신이 끊긴 채여서 정확한 피해상황 집계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고립된 지역들의 상황이 파악되면 현재의 사망자 추정치 1만명보다 훨씬 많은 사망자가 있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엔 국제이주기구(IOM)의 콘라드 나비다드 응급대응팀(EPRU) 팀장은 <로이터> 인터뷰에서 “2010년 대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아이티보다 타클로반의 상황이 심각해 보인다”고 우려했다.

국제사회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11일 300만유로(약 43억원)의 긴급구호기금을 내놓기로 했다. 영국 정부도 600만파운드(약 103억원)를 지원하기로 약속하는 한편, 이날 따로 60만파운드 규모의 구호품을 필리핀으로 급히 보냈다. 이날 오후엔 미군 수송기가 식수와 발전기, 트럭과 지게차 등 중장비를 싣고 타클로반 공항에 착륙했다.

정세라, 김정효 기자
정세라, 김정효 기자
속속 현장에 도착하고 있는 옥스팸·세이브더칠드런 등 인도지원 단체들의 구호요원들은 현지 상황이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전한다. 아일랜드 인도지원 단체 ‘골’은 이날 성명을 내어 “초기 재난을 요행히 버텨낸 생존자들도, 마실 물과 식량·의약품을 제때 공급받지 못하면 버텨내기 어렵다”며 “초기 대응을 제대로 못하면 인명피해가 급속도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세부/정세라, 김정효 기자 se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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