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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시아·태평양

적도에 열린 취업의 문…취준생들 인도네시아로 몰려간다

등록 2013-11-21 20:32수정 2013-11-21 21:14

9월25일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최고 명문대 인도네시아대에서, 현지 취업을 준비중인 한국 젊은이들이 인니어 수업인 ‘비파 과정’(BIPA·Bahasa Indonesia Penutur Asing)을 듣고 있다. 이 과정은 코트라가 6개월간 어학연수와 현지 취업을 지원해주는 ‘케이 비즈니스맨’ 프로그램의 일부다.
9월25일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최고 명문대 인도네시아대에서, 현지 취업을 준비중인 한국 젊은이들이 인니어 수업인 ‘비파 과정’(BIPA·Bahasa Indonesia Penutur Asing)을 듣고 있다. 이 과정은 코트라가 6개월간 어학연수와 현지 취업을 지원해주는 ‘케이 비즈니스맨’ 프로그램의 일부다.
*취준생: 취업준비생

한국 기업 계속 늘어 2100여곳
금융위기에도 이례적 투자 증가
다양성·삶의 여유 존중 사회
생활여건 좋아 ‘주재원의 천국’

막연한 기대로 도전했다간 낭패
언어·사회 잘 알아야 취업 순항
이현상 인도네시아(인니) 자카르타한인회 이사장은 자신을 “현지 기업에 취업한 한국인 1호”라고 소개했다. 1969년이었다. 단돈 49달러를 들고 인니 땅을 밟은 그는 이곳에서 직원 1만2000명을 둔 가발 회사를 일궜다. 한-인니 수교 40돌을 맞은 2013년. 한국인들에게 인니는 여전히 기회의 땅이다. 그곳에서 기회를 잡으려는 한국인들이 급증하고 있다.

이은미(25)씨는 지난 7월 서울의 한 면접장에서 인니 국기를 흔들었다. 코트라의 ‘케이 비즈니스맨’ 과정에 뽑히고 싶어서다. 코트라가 6개월간 자카르타 어학연수와 현지 취업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이씨는 2008년 대구의 한 대학에 입학해 영문학과 국제통상을 전공했는데, 올 상반기 줄기차게 서류 탈락 통보만 받았다. 남의 나라 국기를 흔들 만큼 절박한 이유다.

9월25일 인니 최고의 명문대인 자카르타 우이대 강의실에는 이씨를 비롯한 ‘케이 비즈니스맨’ 1기생 26명이 앉아 있었다. 초급 인니어 수업 중이다. 대부분 이씨처럼 8월에 자카르타에 와서 처음 인니어를 접했다. 인니어는 세상에서 가장 배우기 쉬운 언어라는 평가가 있지만, 6개월은 외국어를 배우기엔 턱없이 짧은 기간이다. 그런데도 이들 중 38%가 석달 안에 목표를 이뤘다. 20일(현지시각) 현재, 26명 가운데 10명이 일자리를 찾았다. 코트라 자카르타 무역관 쪽은 “최종 면접 결과를 기다리는 지원자도 서너명 있다”고 전했다. 대부분 인니에 진출한 한국 기업과 현지 한국인이 운영하는 인니 기업에서 기회를 얻었다.

국외 주재원을 꿈꾸는 청년들이 ‘적도의 나라’ 인니로 몰려들고 있다. 인니는 2억5000만명이 넘는 인구와 풍부한 천연자원 등 잠재력이 큰 나라다. 인니에 대한 한국 기업의 투자가 꾸준히 늘고 있고, 코트라 추산 2100개 한국 기업이 현지에 진출해 있다. 한국에선 좀처럼 열리지 않는 취업의 문이 인니에선 열리리라고 한국 젊은이들이 기대하는 이유다. 인니엔 4만여명의 한국인이 있는데, 주재원만 따로 추려낸 통계는 없다. 다만 한국 기업의 진출이 계속 늘어 일자리도 늘고 있으리란 추산은 가능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국외 투자가 감소하는 추세와 비교하면 더욱 이례적인 현상이다. 중국 베이징에서 고교와 대학에 다닌 임정삼(28)씨도 최근 자카르타의 한국 무역·물류 회사에 취직했다. 그는 “중국이 사업하기에 좋다는 것도 옛말이다. 중국에서 투자만 실컷 해놓고 망해서 떠나는 한국 사람을 많이 봤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 중국 대신 인니로 왔다”고 말했다.

인니의 매력이 ‘풍부한 일자리’만은 아니다. 잠재력이 큰 시장이자, 종교와 문화의 다양성, 삶의 여유가 존중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인구의 90% 가까이 무슬림이지만, 6대 종교를 인정한다. 다만 무종교의 자유는 인정하지 않는다. 신분증을 발급받으려면 6대 종교 중 하나를 반드시 적어야 한다.

2003년 자카르타 엘지전자에 입사한 장일환 차장은 중동 전문가가 꿈이었다. 한국외국어대에서 아랍어를 전공했고, 한국이슬람학생총연합회장도 지냈다. 우연한 기회에 인니에서 열린 세계이슬람총회에 참석했다가 인니의 매력에 눈을 떴다. 이후 우이대에서 인니어 과정과 마케팅 석사 과정도 마쳤다. 장 차장은 “중동보다 인니가 성장 가능성이 커 보였다.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고 외국인과 어울릴 기회가 많다는 것도 장점”이라며 인니에 정착한 배경을 설명했다. 김강수(48) 산업은행 자카르타 사무소장도 “3억 가까운 인구가 쓰는 언어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니어 공부를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도전을 좋아하고 시장이나 국가의 규모, 미래 잠재력 등을 고려해 자카르타 주재원을 자원했다”고 말했다.

‘주재원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자카르타의 생활 여건도 동경의 이유가 된다. 자카르타의 고급 주상복합 단지인 끄망빌리지에는 한국 대기업 주재원들이 많이 산다. 가구와 가전제품이 구비된 205㎡(62평)형의 한달 임대료가 3800달러(400만원) 수준이다. 그러나 회사에서 주택비 지원을 받는 주재원들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견기업 주재원들이 많이 살고 있는 인근 낀따마니 아파트는 현지인보다 한국인이 더 많은 ‘자카르타 속의 한국’이다. 지은 지 오래돼 끄망빌리지보다는 저렴하다. 그래도 단지에 들어서면 리조트풍 조경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다. 현대건설 주재원의 아내인 장문선(44)씨는 “이런 아파트들엔 입주 가사도우미용 거주 공간과 출입문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출·퇴근과 자녀의 등·하교는 현지인 운전사가 시켜준다. 한 달에 가사도우미 150달러, 운전기사 300~400달러 정도의 낮은 인건비 덕이다.

한인사회의 규모가 커서 한국의 먹을거리와 생필품을 파는 곳도 많고, 자카르타에만 한인 식당 100여곳이 성업 중이다. 한인 교회와 성당, 절도 많다. 원한다면, 자녀를 한국 교육 과정에 맞춰 가르쳐 주는 한국국제학교(초등~고등)에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막연한 기대만 가지고 도전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많다. 임정삼씨는 “취직하기는 어렵지도 쉽지도 않다”는 말로 지나친 기대에 대한 우려를 표현했다. 일자리는 있지만 한국인들이 기대하는 임금 수준에 맞춰 취직하려면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장일환 차장도 “인니의 한국 기업에서 한국인들이 주로 하는 일은 현지인 직원 관리다. 여기서 제대로 취직해 일을 하려면 인니어를 잘하고, 인니 사회를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무턱대고 인니어 강의부터 들으며 취직을 준비하다가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된 한국인 구직자들도 많다. 현지에서 <자카르타 경제일보>를 내고 있는 황윤홍 발행인은 “몇 해 전부터 이곳 인니어 강좌 수강생의 70~80%가 한국인일 정도지만 취업이 안 돼 그냥 돌아가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다”고 말했다. 또 주재원으로 취업해 가족들까지 데리고 왔다가 계약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해고를 당하는 황당한 사례도 적지 않다. 주로 인니 투자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고전하는 중소 규모 회사에서 생기는 일이다.

개인사업 등을 하며 아예 현지에 정착한 한국인 커뮤니티에서는 주재원이 늘며 생긴 부작용에 대한 불평도 많다. 한 교민은 “일부 부동산들은 한국 대기업의 주택 지원금 상한선에 딱 맞춰 아파트 임대료를 올렸다”며 주재원들 탓에 현지 집값이 올랐다고 푸념했다. 자녀들의 국제학교 입학난에 대한 불만도 커지고 있다. 자카르타에만 15개 정도의 국제학교가 있는데 가는 곳마다 한국인 학생들이 대기 상태다. 한국인 학생 비율을 제한하는데, 입학하려는 한국 학생들은 계속 늘고 있어서다. 김강수 사무소장은 “몇개월씩 기다리다 입학하는 건 기본”이라고 말했다.

자카르타/글·사진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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