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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시아·태평양

한국 공장에 배치된 군인들 “노 포토!” 총부리

등록 2014-01-14 22:04수정 2014-01-15 10:33

무장을 한 군인들이 14일 오후(현지시각) 캄보디아 프놈펜 남부의 의류·봉제공단인 카나디아 공단에서 지나가는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있다. 프놈펜/김명진 <한겨레21>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무장을 한 군인들이 14일 오후(현지시각) 캄보디아 프놈펜 남부의 의류·봉제공단인 카나디아 공단에서 지나가는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있다. 프놈펜/김명진 <한겨레21>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국 기업’ 노동자 유혈 사태] 프놈펜 현장을 가다

14일(현지시각) 오후 캄보디아 프놈펜 남서부의 의류·봉제공단인 카나디아 공단. 총을 들고 탄띠를 둘러맨 군인 50여명이 눈에 띄었다. 공장 안에 있는 군인들은 잡담을 하거나 해먹에 길게 누워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공장 밖 공터의 군인들은 천막 아래 모여 있었지만 경계를 서고 있는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한겨레> 취재진이 카메라를 들자 상황은 돌변했다. 군인 3명이 총부리를 겨누며 다가왔다. “당신, 여기서 뭐 하는 건가!” 기자 신분을 밝혔으나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들은 “노 포토”라고 여러차례 소리치며 사진을 지우라고 했다. 사진을 삭제하고서야 군인들은 물러섰다.

지난 3일 이곳에선 월 80달러인 임금을 인상하라고 요구하는 노동자들에게 군인들이 총을 쏴 최소 5명이 숨지는 유혈사태가 빚어졌다. 공단의 겉모습은 고요했지만, 폭풍 전야의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기자, 사진 지우고서야 총 거둬
의류공단 안 폭풍전야 긴장감
건물엔 깨진 유리·총알 박혀
노동자 90% 파업 뒤 도피
인력난에 임금 100달러로 올라

프놈펜공항에서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에 탄 택시 기사도 ‘유혈사태’를 알고 있었다. 30대로 보이는 반낙은 “한국 사람들이 유혈사태를 만들었다는 소문이 있다. 그래서 캄보디아 사람들이 많이 화가 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상황을 바꾸기를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의 시민단체들도 한국 기업과 대사관이 군부대 투입을 요청했다며 규탄하는 집회를 지난 10일 서울에서 열었다.

유혈사태가 일어났던 카나디아 공단으로 가는 비포장도로는 원단과 옷을 싣고 오가는 차량과 오토바이들로 가득했다. 영어를 잘 못 알아듣던 ‘툭툭’(오토바이 택시) 기사 새론(32)은 기자가 한쪽 눈을 감고 총을 만들어 쏘는 시늉을 하고서야 “팩토리(공장)?”라며 오토바이 가속페달을 밟았다.

한국과 중국, 대만, 일본 기업들이 주로 입주해 있는 카나디아 공단은 도로를 경계로 둘로 나뉜다. 길 양쪽으로 각각 50여개의 의류·봉제공장이 들어서 있다. 공단으로 들어가면서 왼쪽은 오른쪽보다 공장들의 규모가 더 컸다. 보통 노동자 1200명 규모의 공장이지만 가장 큰 규모의 공장은 1500명 가까이 고용하고 있다. 오른쪽은 주로 800여명 규모의 공장들이 모여 있다.

유혈사태가 발생한 곳은 카나디아 공단 들머리 부근의 벵스렝 대로다. 벵스렝 대로 주변에서 식료품가게를 운영하는 창(42)은 “노동자들이 모여 마이크로 임금을 올려달라며 시위를 했다. 당시에 군인들이 엄청나게 많이 몰려들었고 총소리가 났다. 군인들이 사람들을 때려서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이송된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봉제노동자 파업을 선동했다는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돼 법원 심리를 마친 통합야당(CNRP) 삼 랭시 대표(마이크 든 이)와 켐 소카 부대표(박수 치는 이)가 14일 오후(현지시각) 캄보디아 프놈펜시 법원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프놈펜/김명진 <한겨레21>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캄보디아 봉제노동자 파업을 선동했다는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돼 법원 심리를 마친 통합야당(CNRP) 삼 랭시 대표(마이크 든 이)와 켐 소카 부대표(박수 치는 이)가 14일 오후(현지시각) 캄보디아 프놈펜시 법원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프놈펜/김명진 <한겨레21>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국기업 사장 “임금 160달러로 올리면 문닫을판”

이날 공단 안 공장 곳곳에는 깨진 유리 파편이 가득했다. 텅 빈 건물에는 총알이 박혀 있었다. 그날의 흔적들이었다. 파업 이후 공단에는 인력난이 발생했다. 9년 전 카나디아 공단에 들어와 의류제조업을 시작했다는 한국인 사장 김연천(69)씨는 “일하는 사람들이 파업 때문에 쭉 빠지고 없어 공장을 전혀 못 돌린 데가 많다”고 말했다. 한달에 80달러 하던 임금이 100달러까지 오른 인력모집공고가 나붙어 있기도 했다. 카나디아 공단의 대만 회사 ‘큐엠아이’(QMI) 노동자들은 여전히 공장 안에 머물며 파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무력진압이 두려워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유혈사태가 있던 때만 해도 군인들은 공단 주변을 빙 에워싸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파업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며 군인들은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공장도 어느 정도 원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공장은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로 가득 찼다. 서로 업무지시를 주고받느라 고함치는 이들도 많았다. 재봉틀을 돌려가며 옷을 만드는 데 여념이 없는 여성 노동자들이 보였다. 남성 노동자들은 트럭에서 원단을 끌어내려 바쁘게 옮겼다. 일하다 더위에 지친 노동자들은 공장 밖으로 나와 윗옷을 벗어젖혔다.

8일부터 공장 다시 돌려
파업 묻자 노동자들 굳은 표정
“리틀 머니” 한마디만 반복

김씨는 “8일부터 다시 공장이 정상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파업 때문에 내내 공장을 못 돌리고 애를 먹었다. 노동자들이 임금을 80달러에서 160달러로 올려달라고 한다. 그렇게 된다면 공장 하는 사람 다 나갈 거다. 60달러 하는 임금을 5달러, 10달러씩 올려서 여기까지 온 건데 그마저도 빠듯한 형편이다.”

노동자들은 모두 입을 닫아걸었다. 그 누구도 파업에 대해 말하려 하지 않았다. 여성 노동자들은 취재진이 질문을 던질 때마다 수줍게 웃다가도, ‘파업’을 언급하면 표정이 굳어졌다. 애나(24)는 조금 달랐다. “리틀 머니…”라는 말을 조용히 반복했다. 그러다가도 “그 이상은 얘기를 더 해줄 수 없다”며 입을 닫아버렸다.

이날 프놈펜 도심의 법원 주변에는 수천명의 노동자들과 야당 지지자들이 모여들었다. 유혈사태로 번진 캄보디아 봉제노동자 파업을 선동했다는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통합야당(CNRP)의 삼 랭시 대표와 켐 소카 부대표가 법원에 출석했다. 이들은 훈 센 총리 퇴진을 촉구했다. 민주주의와 자유도 거듭 한목소리로 외쳤다.

프놈펜(캄보디아)/이재욱 기자 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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