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국민당 정권 ‘백색 테러’때
간첩혐의 30살 청년 처형되기전
세살배기 딸 등 가족에 쓴 편지
정보공개 투쟁끝에 촬영본 받아
간첩혐의 30살 청년 처형되기전
세살배기 딸 등 가족에 쓴 편지
정보공개 투쟁끝에 촬영본 받아
“하염없이 울었어요. 이젠 아버지의 편지를 읽을 수 있게 돼서…. 편지를 못 봤다면 끝내 아버지의 체온을 못 느꼈을 테고, 마음속에 그린 상상으로만 남았을 겁니다.”
너무나 늦게 배달된 편지였다. 대만 타이베이에 사는 여성 궈쑤전(67)은 1952년 4월에 쓰인 아버지의 편지를 64년 세월이 흐른 뒤에야 받아들고 목이 멨다. 서른살 청년이던 아버지 궈칭이 국민당 장제스 정권에 공산당 간첩 혐의로 처형되기 한 달 전에 어머니와 23살 아내, 그리고 세살배기 딸에게 쓴 작별 편지였다. 궈쑤전이 정부를 상대로 끈질긴 정보공개 투쟁 끝에 사진 촬영본으로 받아본 이 편지는 1947년부터 1987년까지 지속된 국민당 독재정권의 ‘백색 테러’ 때 처형된 희생자들이 쓴 편지 177통 가운데 하나라고 <뉴욕 타임스>가 3일 보도했다.
국민당은 1949년 국공내전에서 최종적으로 패배한 뒤 대만으로 쫓겨와 우익 국가를 세우고 좌파 세력에 대한 피의 숙청을 단행했다. 수만명이 투옥되고 1000명 이상이 처형됐다. 이때 사형수들이 가족에게 남긴 편지들이 60년이 넘어서야 공개되기 시작했다. 이 편지들의 존재는 2008년 젊은 여성 창이룽이 할아버지에 관한 기록 공개를 요청하면서 처음 알려졌다.
창이룽은 법원 재판과 판결 기록이 대부분인 300여 쪽의 문서에서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할아버지가 가족들에게 남긴 작별 편지를 발견했다. 할아버지는 뒷날 창의 어머니가 될 어린 딸에게 이렇게 썼다. “머지않아 난 세상을 떠난다. 마음을 다스리려 애쓰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너에게 이런 편지를 쓰는구나. 이런 심정이 어떤 건지 넌 모를 게다. 다시는 너를 볼 수도, 안을 수도, 입맞출 수도 없다니, 가슴이 찢어지는구나.”
대만에선 지난달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 후보 차이잉원이 당선함에 따라, 수십년 동안 감춰진 어두운 과거사에 대한 조명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선거운동 당시 차이잉원은 대만 역사를 바로 세우고 과거 전체주의 정권 시절의 불의를 밝히겠다고 공언했다. 대만은 1987년에야 계엄이 해제됐고, 1996년에 처음으로 총통 직선제가 도입됐다.
대만 학계는 국민당 시절 억압적 통치에 관한 기록이 상당 부분 폐기됐음에도 은닉된 자료들이 남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황창링 국립대만대 교수는 <뉴욕 타임스>에 “수십만건의 기록물이 있지만 체계적인 연구가 이뤄진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인 대만진실화해협회의 예훙링 대표는 조만간 백색 테러 박물관을 건립해 불법 처형된 정치범들이 남긴 편지들과 유가족들이 기증한 유품들을 모아 전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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