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동북아에서 한·미·일 삼각안보체제와 별개로 동남아에서도 중국을 압박하려는 움직임을 한층 더 분명히 하고 나섰다.
미국과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10개국의 정상회의가 15~1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서니랜즈에서 열렸다. 이번 회의는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로서 동남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중국의 남중국해 지배력을 견제하려는 포석이 깔려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첫날 개막식에서 “우리의 외교정책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으며, 21세기에 아시아·태평양 지역보다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지역은 거의 없다”며 자신의 ‘아시아 중시 전략’과 아세안 국가들의 점증하는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15일 전했다. 오바마는 “내가 재임 초기부터 미국이 태평양 국가임을 분명히 한 것도 미국 외교력의 균형을 회복하고 아태 지역에서 더 크고 장기적인 역할을 하려는 이유에서였다”고 덧붙였다.
이번 회의에선 오는 4~5월께 유엔상설중재재판소가 중국의 ‘남해구단선(Nine-dash line)’의 합법성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앞두고, 미국과 아세안국가들의 공동대응을 강화하는 방안이 논의될 전망이란 분석이 나온다. 남해구단선은 1947년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그은 9개의 선으로, 남중국해의 거의 전역을 포괄하면서 대만·베트남·필리핀·말레이시아·브루나이 등 인근 국가들과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다. 수전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미국이 아세안 정상들을 미국에 초청해 이런 회의를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는 이 사활적인 지역에 대한 우리의 지속적인 책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의 이런 전략이 제대로 작동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중국은 이번 회의를 민감하게 지켜보고 있다. 일부 관리들은 중국이 아세안 국가들에 대한 경제적, 외교적 영향력을 앞세워 일부 회원국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상관이 없는데다 중국의 투자 의존도가 큰 캄보디아와 라오스도 그런 나라다. 미얀마도 최근 총선에서 군부 세력이 참패하고 문민정부 이양을 앞두고 있어 미국과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다. 지난달 베트남에선 권력서열 1위인 공산당 서기장에 친중국 보수파 응웬 푸 쫑의 연임이 확정되면서, 응웬 탄둥 총리가 이번 회의에 불참하려다 결정을 번복해 참석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오는 5월 베트남과 라오스를 방문할 예정이어서, 그 목적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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