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없는 ‘미군아빠’ 수천 필리피노 아메리칸 인터넷으로 아버지 찾기…대부분 실망
수비크만에 버려진 수천 필리피노 아메리칸
인터넷으로 아버지 찾기…대부분 ‘실망’
1992년 미군의 마지막 함정이 필리핀의 항구도시 수빅을 떠났다. 89년 동안 이곳에 주둔했던 미군들이 마침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들과 필리핀 여성들 사이에서 태어난 수천명의 아이들은 그대로 남겨졌다. 아이들 가운데 일부는 도둑이 되거나 거지가 되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백인의 얼굴을 한 이국적인 용모 탓에 여자아이들은 사창가의 표적이 됐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 이들 수많은 ‘필리피노 아메리칸’들이 인터넷의 바다에서 미국인 아버지를 찾고 있다고 홍콩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최근 전했다. 인터넷의 검색 기능이 이들에게 미국인 아버지를 찾아나설 수 있는 용기와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엠마누엘 드류워리(20)는 그렇게 해서 최근 미국인 아버지를 찾았다. 어머니가 들려준 아버지 이름을 인터넷 검색창에 치자, 그런 이름이 들어간 수많은 정보가 컴퓨터 화면에 떠올랐다. 그는 몇번의 클릭을 더한 끝에 마침내 아버지의 주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난 아버지는 미시시피주의 한 양로원에 살고 있었다. 엠마누엘은 요즘 미국으로 날아가 아버지를 만나는 꿈을 꾼다.
그러나 엠마누엘처럼 행복한 경우는 아주 드물다. 오히려 더욱 큰 상처를 입는 이들이 많다. 수백명이 아버지의 주소를 찾아 편지를 띄우지만, 답장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아버지 찾기를 돕는 아일랜드인 신부 샤이 쿨렌은 “아버지의 냉정함을 다시 확인한 아이들은 분노보다 큰 슬픔을 느낀다”고 말했다.
수빅은 한때 미국 본토를 빼면 미군의 가장 큰 해군기지가 있었던 곳이다. 클라크 공군기지와 함께 태평양 미군의 핵심 기지였으나, 1991년 필리핀 상원이 미국의 기지 사용 연장안을 거부함으로써 미군의 손에서 벗어났다. 미군의 장기 주둔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과 근처 피나투보 화산의 폭발 등이 맞물린 결과였다.
필리피노 아메리칸들은 주로 수빅 근처 올롱가포 시내의 다리 밑에서 살아간다. 경찰은 최근 이곳에 들이닥쳐 이들을 내쫓고 집집마다 쓰레기를 잔뜩 쌓아놓았다. 가난과 핍박은 미국인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지곤 한다. 스테판 프라가타(19)는 아버지의 이름을 똑똑히 기억하지만 인터넷에서 아버지를 찾지 않는다. “나는 그를 증오해요. 그를 보고 싶지 않아요.”
유강문 기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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