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 토론회서
중국과 인도가 ‘빵’이 먼저냐, ‘자유’가 먼저냐를 놓고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
최근 미국 뉴욕에서 ‘아시아소사이어티’ 주최로 열린 토론장에서다. 아시아소사이어티는 아시아 관련 기업가와 외교관, 학자들의 모임이다. 아시아의 두 거인이 맞붙은 민주주의 논쟁에 청중들의 반응은 엇갈렸다고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이 23일 전했다.
만모한 싱 인도 총리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그는 연단에 서서 “사람들은 21세기가 아시아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21세기는 자유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역설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민주주의 확산론을 슬쩍 거들면서 인도가 민주주의 국가임을 내세운 것이다. 인도의 민주주의가 경제 발전의 기반이라는 주장이 이어졌다.
다음날 보시라이 중국 상무부장이 반격에 나섰다. 그는 “민주주의는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다”라며 “나는 세계를 민주국가와 비민주국가로 구분하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약 당신이 민주주의를 거리의 시위를 자유롭게 허용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나는 그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보 부장은 인도를 직접 거명하진 않았지만, 판자촌에서 살아가는 인도 뭄바이의 빈민들을 떠올리게 하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일부 개발도상국은 가난한 이들을 빈민가로 몰아넣고 있다”며 “그들에게 자유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비판했다. “그들은 샤워조차 할 수 없고, 교육받을 기회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보 부장의 연설이 끝나자 회의장을 가득 메운 200여명의 중국 관리들과 기업가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도널드 탕 베어스턴스아시아 회장은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뭄바이의 수백만 빈민들은 민주주의를 가졌지만 자유는 갖고 있지 못하다”며 “인도는 민주주의를 설교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인도인 청중들은 침묵으로 불편한 심사를 드러냈다.
국제 투자가와 외교관, 학자들은 중국과 인도가 미국의 패권을 잠식할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이들 두 나라가 손을 잡을지, 등을 돌릴지에 대해선 전망이 다소 엇갈린다. <30억명의 새로운 자본가-부와 권력의 거대한 동진>이라는 책을 쓴 클라이드 프레스토비츠 경제전략연구소 소장은 “21세기는 중국과 인도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지만, 이들의 협력 가능성에 대해선 의문표를 찍었다.
회의에 참석한 중국인 공무원들과 경영자들은 인도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인도를 분명히 경쟁자로 인식하는 듯했다.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인 루이 지 전 중국-유럽 국제비즈니스스쿨 학장은 인도가 중국에 줄 교훈을 증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인들은 인도를 가장 거대한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우리는 인도가 중국에 좋은 민주주의에 대한 본보기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유강문 기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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