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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중국 드라마 고구려·연개소문 정체불명으로 그려

등록 2007-03-19 14:06수정 2007-03-20 09:36

중국 드라마 <설인귀> 홍보물. 2천만위안이라는 거액이 들어간 이 드라마는 웅장한 규모와 유명 배우들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중국 드라마 <설인귀> 홍보물. 2천만위안이라는 거액이 들어간 이 드라마는 웅장한 규모와 유명 배우들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주몽> 맞선 대형사극 <설인귀>, 중국 지방정권 암시도
“고구려는 어디에 있는가?”

요즘 중국 텔레비전에서 방영되고 있는 대형 사극 <설인귀>(薛仁貴 傳奇)에선 고구려가 보이지 않는다. 중국이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 등 한국의 이른바 ‘고구려 드라마’에 맞서기 위해 만들었다는 소문이 무색할 정도다. 이 드라마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인 고구려를 일부러 비켜갔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 명장 설인귀의 위용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중국이 소심증에 걸렸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설인귀>는 애초 ‘동북공정 드라마’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았다. 설인귀가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안동도호부 총독에 오른 인물이기 때문이다. 평민 출신인 설인귀는 당 태종 이세민이 연개소문에 패해 위기에 빠졌을 때 목숨을 구한 공로로 대장군의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2천만위안(약 24억원)이라는 거액이 들어간 <설인귀>는 상하이와 충칭, 톈진, 장쑤, 푸젠, 산둥, 랴오닝 등에서 이미 전파를 탔다.

<설인귀>에서 고구려는 ‘발료’(渤遼)라는 정체불명의 나라로 등장한다. ‘발해’와 ‘요동’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것으로 짐작되는 이 나라는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 역사에서 존재한 바 없다. 당시 고구려의 보장왕은 ‘발건왕’(渤建王)으로, 연개소문은 ‘철세문’(鐵世文)으로 나오는데, 이 역시 실존하지 않은 이름들이다. 이세민을 비롯해 당나라의 주요 인물들이 실명으로 출연하는 것과는 영 딴판이다.

더욱이 이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과 동떨어진 허구적 장치들로 가득차 있다. 설인귀와 이세민의 인연이 악몽에서 시작하는 게 대표적인 본보기다. 이세민은 어느 날 꿈 속에서 발료군의 추격을 받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다. 이 때 어디선가 흰 옷을 입은 장수가 바람처럼 나타나 그를 구하는데, 이 장수가 훗날 설인귀로 확인된다는 식이다. 설인귀가 발건왕의 딸 ‘소양공주’(昭陽公主)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는 허무맹랑한 연애담까지 끼어든다. 드라마의 하이라이트인 설인귀와 철세문의 대결은 무협지를 방불케 한다.

이런 야사적인 설정에 고구려 정복의 쾌감을 기대했던 이들의 성에 찰 리 없다. 한 누리꾼은 “중국이 한국의 눈치를 보느라 고구려 정복의 역사를 피해갔다”며 “중국은 바보”라고 힐난했다. 다른 누리꾼은 여기에 “한국은 중국의 위풍을 죽이는데, 중국은 스스로 위풍을 죽이고 있다”고 댓글을 달았다. 일부 중국인들은 중국이 이른바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다 한국의 거센 반발로 호되게 당하자 ‘고구려 기피증’에 걸렸다고 자조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 중국의 고구려관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발건왕이 당나라의 책봉을 받았다거나, 소양공주에게 공물을 들려 보냈다는 대목은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는 동북공정의 역사인식을 떠올리게 한다. 소양공주가 설인귀와 부부의 연을 맺는 데선 고구려의 격을 낮춰보는 시각이 비친다. 이세민을 패배시킨 철세문은 권력을 찬탈한 뒤 당나라에 반란을 일으키는 역적으로 그려진다. 그런 철세문을 죽이는 설인귀로 나오는 배우는 중국 젊은이들에게 꽃미남으로 통하는 바오지앤펑(保劍峰)이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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