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사오치
항공과학자 알랴오샤…어머니 러시아 성으로 살아
중국에선 요즘도 지난해 10월13일 폐렴으로 숨진 왕광메이(王光美)를 추모하는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류샤오치(劉少奇) 전 국가주석의 부인으로 ‘인민의 누이’로 불렸던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그만큼 중국인들의 뇌리에 깊게 박혀 있다. 하지만 최근 열린 한 추모전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끈 것은 알랴오샤(52)라는 이름의 한 러시아인이었다. 그는 얼마 뒤 류 전 주석의 손자로 밝혀졌다.
류 전 주석의 핏줄이 러시아인이라는 사실은 지금까지 비밀에 싸여 있었다. 알랴오샤는 16일 중국 〈신시스바오〉와 인터뷰에서 “어려서부터 러시아인 어머니의 성으로 살았다”며 “중국과 러시아(옛 소련)의 관계가 나빴던 때라 사람들이 가족사를 아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류 전 주석의 아들 류윈빈(劉允斌)이 모스크바대에서 유학하던 시절 만나 결혼한 같은 반 학생이었다.
알랴오샤는 1960년 다섯살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를 만났다. 류 전 주석이 모스크바 방문길에 몰래 며느리의 집을 찾은 것이다. 그는 “어느 날 집 앞에 호화로운 검은색 승용차가 서더니 한 노인이 내렸다”며 “인자한 웃음을 머금은 그 노인은 나에게 뽀뽀를 하고, 장난감과 사탕을 줬다”고 말했다. 그는 그 무렵 할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
그의 삶에는 중국 문화대혁명의 상처가 깊게 배어 있다. 마오쩌둥 사후 할아버지가 몰락하고, 아버지마저 사인방의 핍박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중국으로 돌아가 내몽골자치구 바오터우의 한 연구소에서 원자탄 개발에 참여했던 그의 아버지는 1967년 겨울 철로 옆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는 이 소식마저도 20년이 지나서야 고모로부터 전해들었다고 한다.
그는 할아버지가 복권된 뒤에도 한동안 중국을 찾지 못했다. 왕광메이가 그의 가족을 중국으로 초청했으나, 러시아 정부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 국가항공지휘센터에서 일하고 있었던 그의 방중을 러시아 정부는 바라지 않았다고 한다. 모스크바대 항공학원을 나온 그는 이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올려 여러 차례 훈장을 받은 고급두뇌였다. 그는 2003년 류 전 주석 탄생 105주년 기념식을 맞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그의 꿈은 중국과 러시아가 더욱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한다. 그가 요즘 부쩍 소망하는 것은 러시아에 중의학 기지를 세워, 중국의 의술로 러시아인들을 치료하는 것이라고 한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알랴오샤가 다섯살 때 할아버지 류샤오치 전 주석과 함께 찍은 사진. 맨 왼쪽은 그의 누나 소피아, 맨 오른쪽은 어머니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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