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야오방 전 공산당 총서기
천안문사태 촉발 주역 추모 열기
중 정부는 “반혁명분자” 불온시
중 정부는 “반혁명분자” 불온시
천안문 민주화운동(천안문 사태) 20주년을 앞두고 당시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던 후야오방(사진) 전 공산당 총서기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인터넷 일각에선 그에 대한 추모가 이어지고 있으나, 관영매체나 교과서에선 여전히 그의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고 있다.
15일로 사망 20주년을 맞은 후 전 총서기에 대한 평가는 해마다 중국 정부의 ‘뜨거운 감자’였으나 올해엔 특히 민감한 이슈로 떠올랐다. 그의 실각과 죽음이 천안문 민주화운동의 도화선이 됐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개혁주의자’라는 일부 지식인들의 평가와 ‘반혁명분자’라는 공산당의 낙인 사이에서 정치적 금기어로 자리잡았다.
그의 몰락은 1987년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에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시작했다. 당시 최고 실력자였던 덩샤오핑은 그를 반혁명분자로 몰아 총서기직에서 밀어냈고, 그는 모든 정치적 권리가 박탈당한 상태에서 1989년 4월15일 심장마비로 숨졌다. 이에 학생들이 그의 복권과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면서 이른바 천안문 사태가 폭발했다.
최근 인터넷에선 그를 추모하고 복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번지고 있다. 한 사이트의 추모공간에는 지난달 이후 300여건의 글이 올라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총서기 재임 시절 문화혁명의 희생자들을 복권하려고 했고, 티베트 문제에 대해서도 온건한 입장을 견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여전히 그를 불온시하고 있다. 그와 관련된 집회는 실내외를 막론하고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교과서나 공식매체에서도 그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한 교수는 홍콩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후야오방은 여전히 ‘지옥의 변방’ 또는 ‘연옥’에 갇혀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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