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중국

영하추위에 노천농성 “돈의 논리에 쫓겨나”

등록 2010-03-02 15:03

상당 부분이 강제철거된 정양예술구 한가운데 담요 등을 이어붙여 만들어 놓은 임시건물에서 예술가들이 정부의 정당한 보상 등을 요구하며 항의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상당 부분이 강제철거된 정양예술구 한가운데 담요 등을 이어붙여 만들어 놓은 임시건물에서 예술가들이 정부의 정당한 보상 등을 요구하며 항의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베이징 변방 철거위기 예술촌 가보니…
부동산 가격 폭등세에 ‘30년 임대약속’도 깨져
베이징 북동쪽의 농촌지역인 차오양구 진잔향의 008예술구. 얼마 전까지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갤러리였던 벽돌 건물들은 과자 부스러기처럼 으깨져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지난달 22일 새벽 2시께 마스크를 쓴 채 들이닥친 200여명의 철거반원들은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예술가들을 향해 칼과 쇠파이프를 휘둘렀고, 뒤따라 온 포클레인은 순식간에 마을을 짓이겼다.

지난 26일 오후 008예술구에서 만난 화가 류이의 머리는 붕대로 감겨 있었다. 그는 “춘절(설) 연휴 동안 고향에도 가지 못하고 지켰는데 새벽에 폭력배들이 몰려왔다.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이 깔려 죽을까봐 문을 두드리고 다니는데 5~6명의 폭력배들에 둘러싸였다. 쇠파이프에 머리를 맞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고 했다.

008예술구 예술가들의 대표인 류이는 2008년 1월1일 현재 작업실의 30년 임대 계약을 맺었지만, 그가 전 재산을 들여 꾸민 터전은 2년도 안 돼 철거 위기에 몰렸다. 그는 “모든 일이 돈과 이익 때문에 벌어지고 있다”며 “토지는 지방 정부들이 가장 쉽게 돈을 버는 수단이 됐다”고 말했다.

차오양구의 진장·순허·둥바향 등에는 13곳의 가난한 예술촌들이 모여 있다. 전국에서 몰려든 가난한 예술가들이 임대료가 싼 베이징 변두리의 농촌지역에서 농가 주택 등을 빌려 예술활동을 시작하면서 2~3년 전부터 예술촌이 생겨났다.

베이징 외곽 진잔향 008예술구에서 유일하게 강제철거에서 살아남은 화가 류이의 사무실에서 주변 예술촌 예술가들이 함께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이들은 전기와 난방이 끊긴 작업실을 지키고 있다.
베이징 외곽 진잔향 008예술구에서 유일하게 강제철거에서 살아남은 화가 류이의 사무실에서 주변 예술촌 예술가들이 함께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이들은 전기와 난방이 끊긴 작업실을 지키고 있다.

지난해 여름 차오양구 정부는 토지정비 계획을 발표했고, 10월께부터 008예술구와 이웃 정양예술구에 철거통지서가 날아들었다. 12월 말부터는 전기도, 난방도, 수도도 모두 끊겼다. 기록적인 겨울추위 속에서 예술가들은 합법적 세입자들에 대한 법률에 따른 보상과 존엄성 존중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지만, 지방 정부는 아직 보상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방 정부가 토지를 부동산 개발상에게 넘겨 막대한 이익을 얻기 위해 세입자들을 강제로 쫓아내려 한다는 게 예술가들의 설명이다. 이미 진잔향 곳곳의 마을이 철거돼 폐허로 변했고, 고층건물을 짓기 위한 크레인들이 줄지어 늘어섰다.

정양예술구에서 100일 넘게 천막농성 중인 사진예술가인 황쉬는 “정부는 집주인들이 나서 세입자인 예술가들을 쫓아내게 하고 있다. 부동산이 미친 듯 오르고 경제성장이 토지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 정부는 세입자들을 쫓아낸 땅을 비싼 값으로 부동산 개발회사에 넘겨 막대한 이익을 얻으려 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정양예술구 들머리에는 새해를 맞아 복을 기원하는 붉은 종이가 나무 곳곳에 걸려 있지만, 건물들은 이미 주저앉거나 곳곳이 부서지고 유리창이 깨진 채 서 있다. 이곳에도 지난달 22일 새벽 철거반원들이 들이닥쳤고 이를 막으려던 8명이 심하게 다쳤다. 황쉬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폭력배들이 사람들을 때리는데도 경찰들은 차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못 본 체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비극이 부동산 폭등에 의존하는 경제 성장의 불도저 아래 짓눌리는 가난한 중국인들의 비극이라고 했다. 화가 류이는 “우리 상황에 사람들이 관심을 보여주는 것은 예술가로서의 특권일 것이다.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한 채 강제철거 당하는 백성들은 훨씬 많다. 우리는 백성들을 대표해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권력은 법보다 힘이 세고 우리는 너무 약하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베이징/글·사진 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1.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2.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3.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4.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5.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