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노동력·값싼 토지·감세 토대로
포화 상태 연해지역 대안으로 급부상
5년전 밭·야산 공장·아파트로 탈바꿈
세계기업 속속 진입…고물가 해결과제
포화 상태 연해지역 대안으로 급부상
5년전 밭·야산 공장·아파트로 탈바꿈
세계기업 속속 진입…고물가 해결과제
충칭은 오랫동안 ‘세계의 끝’이었다. ‘서부의 관문’인 충칭을 넘으면 황량하고 낙후된 서부가 펼쳐진다. 충칭의 ‘천지개벽’은 중국의 70%를 차지하는 광활한 서부의 삶을 바꾸고, 개혁개방 30년을 맞아 연해 지역·수출 중심 성장의 한계에 부닥친 중국에 새로운 성장축을 더하는 출발점이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시장경제는 광저우·선전 등 주강삼각주에서 첫걸음을 내디뎠고 1990년대 상하이 푸둥개발이 중심이 된 창강삼각주, 2000년대 톈진 빈하이신구로 발전 동력을 이어왔다. 중국 정부는 2010년 6월 충칭 시내 북부 1200㎢의 ‘양강신구’를 내륙 지역의 유일한 국가급 개발구로 승인했다. 웡제멍 양강신구 관리위원회 주임은 “양강신구는 30년 전 선전, 20년 전 푸둥, 10년 전 빈하이와 같은 의미가 있는 곳”이라며 충칭이 중국 경제의 제4의 성장축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지난해 말 찾은 충칭은 ‘천지개벽’ 중이었다. 공항에서 가까운 장베이지역은 5년 전만해도 밭과 야산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공장과 고급 아파트, 골프장이 즐비한 풍경으로 탈바꿈했다. 주변 농촌 지역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주요 도시와 연결되는 고속철도가 사방으로 뚫리고 있다. 충칭 토박이인 샹성물류회사 셰다오샹 사장은 변화를 온몸으로 실감하는 중이다. “1998년 회사를 연 뒤 천지개벽의 변화가 있었다. 처음에는 산업이 발달하지 않아 공장들이 물건을 만들면 트럭을 수소문해 실어 보내는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세계적 기업들이 몰려오고 산업이 다양해지면서 물류도 첨단화되고 동남아 수출 물동량이 엄청나게 늘었다”고 그는 말했다.
상하이, 광저우 등 발달한 동남부 연해 지역에 진출했던 많은 기업들이 충칭 등 내륙 지역을 향해 서진중이다. 2009년과 2010년 휼렛패커드, 에이서가 잇따라 충칭에 투자 계약을 체결해 2015년부터 한해 6500만대의 노트북을 생산할 ‘중국의 실리콘밸리’가 들어선다. 포드자동차도 40만대 규모의 새 엔진 공장을 충칭에 짓고 있다. 대만의 거대 전자기업 폭스콘도 공장 일부를 충칭으로 옮겼다. 한국타이어는 9500만달러를 투자해 양강신구에 공장을 건설한다. 충칭의 외국직접투자(FDI)는 2009년 40억달러에 이어 2010년에는 60억달러 목표를 달성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09년 14.9%에 이어 2010년에는 17%에 달했다.
충칭은 풍부한 노동력과 저렴한 토지·세금 감면 등을 내세워, 포화 상태인 연해 지역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창안포드자동차의 구매 담당 간부인 수순원은 “3공장 부지를 결정할 때 충칭과 (연해지역의) 난징을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며 “난징이 물류에서 이점이 있지만, 인력 수급, 노동 비용,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 서부대개발을 통한 내륙 시장의 성장 등을 고려해 결국 충칭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충칭 시정부 대외무역경제위원회 후지 처장은 “투자자들이 충칭을 선택하는 중요한 이유는 3280만 인구, 주변 중서부까지 포함하면 2억5000만명의 광대한 미개척 시장이 있다는 점”이라며 “현재 충칭과 주변 청두 지역의 발전 속도가 동부 평균보다 높은데, 이 지역 도시화율이 50%도 안 되는 상황에서 도시화, 공업화를 통해 설비·건설 수요가 크게 늘고 경제발전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도시화와 호구제도 개혁, 투자 유치 정책은 하나의 장기판 위에서 진행된다”며 “농민들을 대규모로 유입시키려면 일자리를 창출하고 주택, 사회보험을 제공해야 하지만, 대규모 노동력을 확보하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충칭의 개발은 서부대개발이 사회기반시설 건설에 초점을 맞췄던 지난 10년의 1단계에서, 이제 내수 확대와 민생 개선의 2단계에 들어선다는 의미도 있다.
도시로 들어온 농민들은 개발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눈부신 혜택이 자신들에게도 고루 돌아올지에 대한 의문을 함께 품고 있다. 경제가 발달한 푸젠성에서 8년 동안 일하다가 2007년 고향 충칭으로 돌아온 농민공 자딩춘(28)은 “19살에 일을 시작했을 때는 당연히 일자리도 많고 발전한 연해지역에 가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이제는 충칭이 발전해 일자리가 많이 늘고 연해지역과의 임금 차이도 많이 줄었다”고 했다. 하지만 “물가, 집값이 너무 올라 생활의 압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며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내놨다고 들었지만 노동자 임금은 영원히 성장률을 못 따라갈 것”이라고 걱정했다.
충칭/박민희 특파원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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