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부 41명 역내 총생산 74% 차지
중산층·청년층, 불평등에 분노 표출
중산층·청년층, 불평등에 분노 표출
홍콩 민주화 시위의 저변에 깔린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홍콩판 재벌’을 향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20일로 시위 23일째를 맞은 홍콩 시민들이 정부뿐 아니라 재벌들을 향해서도 시위를 벌여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시위로 인해 314억달러의 자산을 가진 아시아 최고 갑부 리카싱 회장이 소유한 청쿵그룹 본사 사옥 앞 도로가 봉쇄됐다. 정위퉁 일가가 소유한 홍콩 최대 보석업체 저우다푸의 홍콩 내 50개 매장 중 도심 지역에 있는 20개 매장이 잠정 휴업했다.
홍콩에서는 소수의 재벌 가문이 부동산 시장의 대부분을 통제하며 소매업은 물론 전기와 가스, 교통 등 공공 영역까지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전형적인 가족경영 제국이다. 거대한 부동산을 가진 5개 회사가 민간 주택시장의 약 70%를 장악하고 있고, 두개의 재벌소유 체인이 코카콜라 등에 대한 독점 판매권을 가지고 슈퍼마켓, 소매점 등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다. 홍콩 억만장자 41명의 재산이 홍콩 역내총생산의 74.4%를 차지한다. 상위 부자 10%의 자산은 2000년 홍콩 전체 자산의 65.6%를 차지했지만 올해는 77.5%로 증가했다. 1명의 억만장자가 국내총생산(GDP)의 99%를 차지한 아프리카의 스와질란드를 제외하면 부의 집중도가 가장 심하다.
반면, 홍콩 대학 졸업자의 초봉은 19만8000홍콩달러(약 2700만원)로 지난 17년간 연 1%씩 상승하는 데 그쳤다. 임금 상승이 주택가격 상승 등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젊은층과 중산층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 이번 시위의 한 배경으로 지적돼 왔다.
중국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특혜를 받으며 성장한 홍콩 재벌들이 친중 행정장관을 뽑는데 도움을 줬다는 인식도 커지고 있다. 홍콩 행정장관을 간접 선출해 온 1200명의 후보추천위원회에 포함된 상당수가 재벌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이들이다.
장 피에르 레만 홍콩대 객원교수는 “재벌들은 홍콩 불평등의 상징으로 비춰지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은 이번 시위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가 재벌과의 협력을 통해 홍콩을 통제하고 있는 상황이 크게 바뀌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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