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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문혁 50년…박제화된 ‘기억’ 어정쩡한 ‘상흔 치유’

등록 2016-05-15 19:36수정 2016-05-16 14:17

‘56둬화(꽃송이)’라는 중국 걸그룹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사회주의 경전가곡 콘서트’에서 마오쩌둥의 이미지를 배경으로 문화혁명 시기 혁명가곡들을 부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56둬화(꽃송이)’라는 중국 걸그룹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사회주의 경전가곡 콘서트’에서 마오쩌둥의 이미지를 배경으로 문화혁명 시기 혁명가곡들을 부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국제 초점 I 중국 문화대혁명 발발 반세기

#1.

아버지는 아래층에 쓰지 않는 방에 세를 줬다는 이유로 ‘자본가’로 몰렸다. 취미로 그린 그림이 미국에 전시된 것이 알려져 ‘미국과 내통했다’는 혐의가 덧붙었다. 중학생이던 홍위병들은 며칠동안 집을 때려부수며 불을 질렀고, 온가족은 매일 매질을 당하고 끌려다니며 모욕당했다.

괴로운 나머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소아과 의사인 딸에게 함께 죽자고 했다. 딸은 아버지의 경동맥을 칼로 찔러 숨을 끊었다. 아들에게 ‘발각’된 어머니와 딸은 곧장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어머니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성분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치료를 못 받고 숨졌다. 딸은 치료를 받았다.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서였다. 수술 뒤 바로 구속돼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죄명은 살인죄, 그리고 ‘자살을 통해 문혁에 항거했다’는 문혁항거죄였다. 딸은 13년 뒤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2.

초등학교 국어교사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타고난 재주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그러나 그를 미워한 한 선생이 그가 수업에서 한 얘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마오쩌둥이 적군에 쫓겨 ‘도랑 속에 몸을 숨겼다’는 부분인데, 위대한 지도자를 중상모략했다는 것이다. 국어교사는 책에서 본 내용이라고 주장했지만 어떤 책인지를 대지 못했다. 8년형을 받고 수감됐다. 교사의 아내는 남편 말만 믿고 그 책을 찾아나섰다. 그러나 문혁 시기 서점엔 마오 저작 뿐이었고, 아내는 문맹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아무 종이나 주워와 주위 사람들에게 읽어달라 하기를 7~8년, 어느날 밤 집에 불이 났다. 아내와 아이는 숨졌다. 옥중에서 소식을 접한 교사는 자살을 결심했다. 그러다 우연히 ‘마오가 도랑에 숨었다’는 기록이 적힌 종이쪼가리를 발견했다. 형기를 마치고 나와 명예를 회복한 교사는, 책을 구해 태운 뒤 아내 무덤에 뿌렸다.

 

안 쓰는 방 세줬다고 자본가 몰리고
미국에 그림 전시했다고 내통자로
괴로운 나머지 창밖으로 몸 던지니
‘자살을 통해 항거했다’며 쇠고랑

문혁 당시 벌어진 어이없는 일들
세월과 함께 역사가 돼가고 있다
젊은이들은 소설·영화로나 접할 뿐
일부선 향수·낭만의 대상 되기도

‘지도자 오류로 시작된 내란’이라는
공산당 평가는 마오 후광에 묻혀
피해 책임 물을 대상만 모호해져
50주년 맞아 새로운 변화 있을까

중국 문화대혁명(문혁·1966~1976) 시기에 대한 인터뷰집 <100사람의 10년>(펑지차이 지음)은 이밖에도 무수한 ‘어이없는’ 실화를 전한다. 문혁 사망자 집계가 몇백만에서 몇천만을 오가며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런 황당무계함 탓일까. 다음달 한국어판(박현숙 옮김, 후마니타스) 출간을 앞둔 이 책엔 문혁 피해자 뿐 아니라 ‘가해자’ 홍위병들도 등장한다. 문혁 이래 중국은 줄곧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살아온 사회였다. 마오쩌둥의 이른바 ‘5·16 통지’를 기점으로 삼는 문혁은 16일 발발 50주년을 맞이한다.

 문혁을 직접 겪은 중국인들은 점차 역사가 되어간다. ‘10년 하오제(대참사)’의 주인공이던 당시 10~20대는 이제 60살이 넘었다. 이후 세대는 옛날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산둥성 출신 대학원생 ㄱ(27)씨는 “신사층(향토지식인·지배층)이던 할아버지가 우파로 몰려 비판투쟁을 받은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고 말했다. 상하이의 회사원 ㄹ(39)씨는 “부모님으로부터 상산하향(하방) 경험이나 촨롄(전국 각지 학생들이 베이징이나 다른 지역에 가서 혁명 경험을 교류하는 활동)으로 베이징 천안문광장에서 마오 주석의 검열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1980~90년대에는 문혁을 정면으로 다룬 <사람아, 아 사람아>, <황금시대>, <패왕별희>, <인생> 등 소설과 영화가 쏟아지면서 간접경험의 기회가 넓어졌다. 지린성 출신 ㄷ(33)씨는 “문혁 때문이라기보단 인기작들이라 접했다. 어렸을 때 본 거라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젠 20년 전 이야기다. 베이징의 대학교수 ㅁ(42)씨는 “내가 태어난 지 2년 뒤 문혁이 끝났다. 문혁은 (40대인) 내게도 이미 전설과 같다”며 “지금 학생들은 거의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전체 인구의 16%인 60대 이상 세대에게 문혁 시절은 향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홍위병과 ‘지청’(지식청년)으로 청춘기를 보낸 문혁 핵심 세대로 ‘사령부를 폭격하라’(문혁 당시 마오쩌둥의 <인민일보> 논평)에 흥분했던 그들은 “그래도 그땐 순수했잖아”라고 말한다.

 홍위병들이 파벌로 나뉘어 무장투쟁까지 벌였던 충칭에는 ‘지청’을 테마로 한 식당도 있다. 종업원들은 그 시절 지청들처럼 낡은 군복에 붉은 완장을 차고 있고, 벽에는 마오의 초상 및 어록과 옛 포스터가 가득하다. 대중문화 영역에서도, 4년 전 <시시티브이>(CCTV)가 방영했던 45부작 <지청>처럼 그 시절 낭만을 다룬 드라마가 왕왕 나온다.

 이들 세대에 속하는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는 문혁을 직접 겪은 마지막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1953년생인 시주석은 산시성 옌촨 산골마을에서 직접 토굴을 파고 살았던 지청이었고, 1955년생 리커창 총리도 19살이던 1974년부터 안후이성 펑양현에서 ‘막바지’ 지청 생활을 했다. 차세대 주자로 거론되는 천민얼 구이저우성 서기(1960년생)나 쑨정차이 충칭시 서기, 후춘화 광둥성 서기(각 1963년생) 등은, 경우에 따라 “그땐 너무 어렸다”고 말할 수도 있는 류링허우(60년대생) 세대에 속한다.

중국 문화혁명 시기, 반혁명분자로 몰린 이들이 일종의 인민재판을 받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중국 문화혁명 시기, 반혁명분자로 몰린 이들이 일종의 인민재판을 받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문혁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평가는 꽤 분명한 편이다. 1981년 6월27일 11차 당대회 6중전회에서 채택된 ‘약간의 역사문제에 대한 결의’는, 공식적으로 “문혁은 지도자의 오류로 시작돼 반혁명집단에 이용당하면서 당, 국가 및 인민에게 엄중한 재난을 가져온 내란”이라고 규정했다. 실제 4인방으로 상징되는 ‘반혁명집단’은 문혁 종료 뒤 처벌됐다.

 그러나 ‘지도자의 오류’ 부분은 중국공산당 집권 정통성의 핵심이 돼버린 마오의 후광에 묻히는 모양새다. 덩샤오핑 시기부터 마오에 대한 평가는 ‘공칠과삼’으로 정립됐다. 게다가 당의 영도 아래 이룩한 중국의 눈부신 성장도 그 과오를 덮어준다.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는 “문혁의 책임은 최종적으로 마오에 있다 하더라도, 공산당이 건재하고 중국의 성장이 지속되는 한 본격적인 논의대상이 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잘못을 반성하고, 책임자를 벌하고, 교육을 통해 다음 세대에 교훈을 남기는 등 진정한 ‘과거 청산’의 과정이, 문혁에 대해선 적용되지 못한 채 ‘트라우마’로 남은 셈이다.

 성찰의 언어가 피상적으로 반복되는 사이 문혁은 정치적 맥락에 이용당한다. 소득의 균등한 분배를 추구하는 충칭모델로 좌파의 지지를 받던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는, 민중 일체감을 고취시킨다며 ‘홍가(혁명가요) 부르기’를 추진해 시대를 문혁으로 되돌리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시 주석 체제 출범 전 부패 혐의로 실각했다. 지난 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56둬화(꽃송이)라는 걸그룹도 문혁 시기를 연상시키는 무대와 노래로 구설에 올랐다. 불똥은 시 주석에게 튀고 있다. 그들의 레퍼토리엔 ‘시진핑 찬양가’도 있었기 때문이다. 시 주석 들어 강력한 ‘1인 집권 체제’가 형성되자 그에게 마오와 문혁의 이미지를 씌우려는 분위기도 있다. 시 주석은 당의 공식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간쑤성 우웨이시의 톈티산에는 위진남북조 시기 승려들이 만든 석굴이 있다. 이곳에서 나온 석상은 란저우시 간쑤박물관 등에서 21점을 보관중이지만, 전체 출토량이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안내원은 그 이유에 대해, “문혁 당시 ‘파사구’(구사상·구문화·구풍속·구습관 등 4가지 옛것을 부순다는 구호) 때문에 상당량이 파괴된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망각과 향수 속에 문혁이 박제가 될 순 있어도, 중국 전역에 새겨진 문혁의 상흔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oscar@hani.co.kr

문화대혁명

중국 최고지도자 마오쩌둥이 주도한 극좌 사회운동으로, 일반적으로 1966년 5월16일 중국공산당 정치국 회의에서 발표된 ‘5·16 통지’를 시작으로 본다. ‘새로운 공산주의 문화를 만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대약진운동 실패로 권위가 추락한 마오쩌둥이 류사오치와 덩샤오핑 등 실리파를 상대로 반격을 취한 권력투쟁 성격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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