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우와이칭 전 홍콩 입법회 의원이 20일 오후 홍콩의 한 호텔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콩/김외현 특파원
홍콩 ‘본토파’ 정당인 청년신정(영스피레이션) 소속 야우와이칭(26) 전 입법회(한국의 국회에 해당) 의원은 지난 3년여간 큰 곡절을 겪었다. 새내기 직장인에서 ‘우산시위’ 당시 거리의 시위대로, 신생 정당 자원봉사자로 변신했다. 이어 구의원 선거 출마 및 낙선을 거쳐 입법회 의원에 당선됐으나 한달 만에 의원직을 정지당했다.
외모 때문에 ‘여신’이란 별칭을 얻은 그는 지난해 10월 의원 선서를 하면서 ‘홍콩은 중국이 아니다’라고 쓴 펼침막을 단상에 깔아놨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영어 이름에서 ‘리퍼블릭’(republic)을 욕설처럼 발음(refucking)하고 ‘차이나’는 일본 강점기의 모욕적 표현인 ‘지나’로 발음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선서는 무효 처리됐고, 홍콩 정부는 자격 무효 소송을 냈다. 다시 선서를 시도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선서와 관련된 2건의 소송이 진행 중인 야우는 20일 홍콩 한 호텔에서 <한겨레>를 만나 홍콩은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재차 설파했다.
-선서 때 행위는 의도적이었나?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의원 선서에선 스스로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것이 관례다. 다만 이번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개입하면서 홍콩 기본법(헌법) 해석권을 발동해 선서 무효화를 정당화시켰다. 전인대가 나서지 않았다면 문제 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소송 관련 비용이 100만홍콩달러(약 1억4600만원)에 이른다. 최종심 판결은 12월께 나올 것으로 본다.”
야우와이칭이 지난해 10월 홍콩 입법회 의원 선서를 하면서 ‘홍콩은 중국이 아니다’라고 쓴 펼침막을 들어 보이고 있다.
-후회한 적 없나?
“없다. 우리가 어떤 행위를 했는지보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전에도 독립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입법회 선거 출마 자격이 취소된 이들이 있다. 우리의 행위를 겨냥한 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홍콩 독립과 민족 자결의 신념을 겨냥한 것이다. 그땐 부모님과 함께 살았지만 친중파 매체 기자들이 집 앞에 진을 치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나와서 혼자 산다.”
-홍콩 ‘반환’이 20년이 됐다.
“중국은 ‘회귀’라지만 홍콩 사람들 입장에선 ‘주권 이양’에 불과하다. 중화인민공화국은 홍콩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무슨 ‘회귀’인가. 홍콩의 영국 할양은 청나라가 맺은 난징조약 등으로 순차적으로 이뤄졌는데, 청나라를 계승한 것은 중화민국(대만)이지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다. 게다가 국제적으로 식민지의 운명은 주민들이 결정하도록 돼 있는데, 홍콩은 1972년 돌연 유엔의 식민지 명단에서 삭제됐다. 1971년 중화민국을 몰아내고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된 중화인민공화국이 추진한 일이다. 결국 홍콩은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지난 20년간 어떤 변화를 느꼈나?
“1997년엔 6살이었다. 텔레비전에서 국기 두 개가 나오고 뭔가 주고받는 장면을 본 기억은 있지만 무슨 의미인지 알 리 없었다. 처음 이 문제를 생각하게 된 것은 2008년 차이위안촌 사건 때다. 중국~홍콩 고속철도 토지 수용에 대한 주민 반발이었는데, 발전을 기대하는 여론도 있었지만 홍콩의 기존 토지계획을 망친다는 반론도 있었다. 지금 와서 보니 이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 정책의 하나였다.”
-우산혁명 전에도 반중 시위에 참여한 적 있나?
“2012년 국민교육 사건 때 대학 3학년이었는데 홍콩중문대 파업에 동참했다. 홍콩의 교육시스템은 중국보다 분명히 나은데, 당시 정부는 제도를 바꿔 ‘애국교육’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세뇌교육을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홍콩 사회가 크게 반발하자 정부는 계획을 철회했다. 그러나 최근 교과서를 보면 그런 움직임이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닌 것 같다.”
-우산혁명에 적극 참여한 계기는?
“우리 세대는 정부가 폭력적 수단으로 시위에 대응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2003~2004년 기본법 제23조 관련 입법에 반대하는 사상 최대 시위가 있었지만 무력을 쓰진 않았다. 그런데 2014년엔 학생들이 맨 앞줄에 있다가 경찰한테 맞았다. 9월28일 처음 나갔는데 그날 최루탄을 쐈다. 물대포, 페퍼 스프레이…, 많은 홍콩인들이 놀랐다.”
-홍콩 독립이 목표인가?
“일국양제는 애초부터 ‘일국일제’를 향하고 있다. 기본법 해석 권한을 전인대에 맡긴 것만 봐도 그렇다. 중국은 개선할 생각이 없기에, 우리는 새로운 길을 갈 수밖에 없다. 그건 자결권을 확보하는 길이며, 독립도 하나의 가능성이 될 것이다.”
-독립은 가능한가? 많은 이들은 비관하는데?
“계속 구체적 정책 준비를 이어간다면 10~20년 안에 가능할 수도 있다. 여론조사에서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이 독립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다면서 군비나 수자원 등을 언급한다. 그러나 싱가포르나 스위스의 국방 상황을 참고할 수도 있다. 수자원은 이미 충분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가능성보다 필요성을 봐주기 바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 연구다. 난 이를 위해 계속 선거에 도전할 것이다.”
홍콩/글·사진 김외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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