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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법대로 판결’ 사법개혁 불씨

등록 2005-12-04 17:56수정 2005-12-04 17:56

아시아사람들 - 중국 여성판사 리후 이쥐안
지방법원의 한 여성판사가 우연한 판결로 중국 사법개혁의 불씨를 피웠다.

중국 중부 허난성 뤄양시 법원의 리후이쥐안(32) 판사는 2003년 씨앗 가격을 둘러싼 기업분쟁 재판을 맡았다. 그는 씨앗가격에 대한 규정을 찾다가 상위법인 국가법은 “시장이 정한다”규정하고 있는 데 반해 하위법인 성 법률은 “국가가 정한다”고 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 상위법에 따라 “씨앗 가격은 시장이 결정한다”는 판결을 내린 그는 “상위법과 충돌하는 하위법을 폐기한다”고 선언했다.

포청천 보고 판사꿈 신세대
‘가격은 시장이 결정’ 판결
당국 발끈 실직 처벌 위기
법조인 대거 청원으로 복직

얼마 뒤 그는 뤄양중급인민법원 기율위원회에 불려갔다. 그는 조사를 받았고 판결에 중대한 실수가 있다는 비판도 감수해야 했다. 실직은 물론 처벌까지 당할 위기에 몰렸다. 법률에 대한 결정권을 법원이 아닌 정부가 가지고 있는 중국에서, 일반적인 법이론에 따라 법을 무효화시킨 리 판사의 판결은 ‘사법부의 반란’으로 해석됐다.

베이징의 명문 정법대학을 졸업하고 1996년 판사가 된 리후이쥐안은 중국 사법계의 신세대다. 그는 10대 시절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추상같이 호령하며 백성들의 편에서 정의로운 판결을 내리는” 포청천 같은 법관들을 보며 판사의 꿈을 가지게 됐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현실은 포부를 조금씩 갉아먹었다고 그는 말한다.

중국 사법 시스템에는 정부의 권력을 견제할 독립성이 없다. 판사들은 정부 관리들의 요구에 따라 판결을 내려야 하고, 당과 정부가 조직한 위원회에서 판사가 어떤 판결을 내려야 하는지 결정하는 경우도 많았다. 리 판사가 씨앗재판을 진행하는 동안 이번 사건에서 거액의 이권이 걸린 두 기업 관계자들은 뤄양법원의 고위 책임자들을 만났고, 상급자들은 리 판사가 이들을 만나도록 압력을 넣기도 했다.

사건 직후 리후이쥐안은 “나는 법을 지키려고 노력한 판사일 뿐이며, 정치제도나 상급자들에게 도전할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부당하게 박해받고 있다”는 호소문을 동료와 학계, 중앙정부에 보냈다. 리 판사의 사건이 알려지면서 중국 사법개혁을 주장하던 학자들과 ‘베이징변호사협회’ 등 법조인들이 뭉쳤다. 그들은 중앙정부에 리 판사의 구명을 호소하는 청원을 냈고, 이 사례가 중국 언론에 보도되면서 칭화대학에서 토론회도 열렸다. 리후이쥐안은 2004년 여름 1년여 만에 다시 판사직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무렵 허난성고등법원은 씨앗사건을 재심하면서 리 판사가 법률을 폐기한 것을 비판했다. 시스템은 변하지 않은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사건은 중국 사법제도의 한계와 함께 점점 영향력과 발언권을 넓혀가고 있는 새 세대 법관들의 변화 움직임이라는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한알의 불씨가 광야로 번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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