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중국 상하이에 문을 연 화웨이의 공식 대표 매장(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마스크를 쓴 고객들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상하이/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이 화웨이 등 중국의 첨단산업과 중공업 분야를 대표하는 20개 기업을 ‘인민해방군이 소유 또는 지배하는 기업’으로 지정했다. 해당 기업에 대한 제재를 염두에 둔 움직임이어서, 중국 쪽 반발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통신은 25일 미 국방부가 의회에 제출한 자료 내용을 인용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와 세계적 영상 보안업체인 하이크비전 등을 중국 인민해방군이 소유하거나 지배하는 기업으로 지정했다”며 “해당 기업에 대한 추가 금융제재를 부과할 수 있는 기초를 닦은 셈”이라고 보도했다.
해당 자료는 ‘1999년 국방수권법’ 제1237조가 규정한 ‘중국 군사업체에 대한 국제비상경제권 적용’을 위해 국방부 장관이 작성한 것이다. <로이터>는 “인민해방군 소유·지배 기업 지정이 자동적으로 제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법에 따라 대통령이 해당 업체에 대한 제재를 부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1977년 제정된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에 따라 미국 대통령은 국가안보·외교정책·경제 등과 관련해 미국에 대한 위협이 있다고 판단하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제비상경제권을 발동해 해당 기업에 대한 거래 제한과 자산 동결 등 제재를 가할 수 있다. 1979년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 사태 당시 이란 정부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시킨 것이 첫 적용 사례다.
문제는 미 국방부가 ‘인민해방군 소유·통제 기업’으로 지정한 업체들이 중국 첨단산업과 중공업 분야를 대표하는 기업을 사실상 총망라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에 따라 미 국방장관은 명단 작성에 앞서 법무장관·중앙정보국장·연방수사국장 등과 논의를 거치도록 돼 있어, 트럼프 행정부가 범 정부 차원에서 마련한 전방위적 대중 압박 카드로 보인다. 미국이 화웨이 등 중국 첨단기업에 제재를 가할 때마다 중국은 “중국의 첨단산업과 경제 발전을 가로막으려는 의도”라고 강력 반발해왔던 터라,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실제 <파이낸셜 타임스>가 공개한 해당 업체 명단을 보면, △항공·우주산업(중국항공공업·중국항천과기 등 4곳) △군수산업(중국남방공업 등 2곳) 전기·전자산업(판다전자 등 2곳) △정보·보안산업(하이크비전·중과서광 등 3곳) △통신(화웨이·중국이동통신 등 3곳) 등이 포함돼 있다. 또 중국철건공사 등 철도 관련업체 2곳과 중국선박중공업 등 조선업체 2곳, 중국광핵 등 원자력 관련 업체 2곳 등도 포함됐다.
그간 미 의회 민주·공화 양당 의원들은 “중국으로 미국의 첨단기술이 유출되는 걸 막아야 한다”며 초당적 압박을 가해왔다. 특히 지난해 9월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와 마이크 갤리거 공화당 하원의원 등은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에게 공개 서한을 보냈다. 중국이 새로 떠오르는 민간 기술을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하는 데 대한 우려를 표시하며, “가능한 한 빨리 중국군 소유 기업의 명단을 공개하라”고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의회 대중 강경파를 대표하는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은 <파이낸셜 타임스>에 “명단 작성은 시작에 불과하며, 내용적으로 대단히 불충분하다”며 “중국 정부가 미국 자본시장을 통해 개인 및 연금 투자자들의 자금을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선 해당 기업들의 자회사와 협력회사까지 포괄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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