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 슈머 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8일(현지시각) 대중국 견제 정책을 총망라한 ’혁신·경쟁법’ 표결 처리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미국 상원이 대중국 견제 정책을 총망라한 법안을 압도적으로 통과시켰다. 극심한 분열상을 보여온 미 정치권이 ‘반중’이란 목표 아래 초당적 협력에 나서면서, 미-중 대결 구도가 더욱 심화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중국은 “냉전적 사고”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9일 <로이터> 통신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미 상원은 전날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중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핵심 첨단기술 분야 등에 2500억달러(약 280조원)를 투입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미국 혁신·경쟁법안’을 찬성 68대 반대 32로 통과시켰다. 대중국 경쟁과 관련된 거의 모든 측면을 담았다는 평가를 받는 이 법안은 조문이 약 2400쪽에 이를 정도로 방대한 분량이다.
법안의 초점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 국제적 산업 공급망에서 대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한편 첨단기술 분야에서 미국의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다. 특히 향후 5년 간 반도체 분야에만 모두 540억달러가 지원될 예정이다. 통신은 “미국의 경제·국가 안보 이익에 긴요한 자동차, 군수, 기타 중요 산업용 반도체 분야에 따로 20억달러의 예산을 투입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세계는 2차 대전 이후 가장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며, 지금 대응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초강대국 지위를 잃게 될 것”이라며 “미국의 노동자와 기업이 세계를 이끌기 원한다면, 2차 세계대전 직후처럼 정부가 과학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둘째, 외교정책 측면에서도 대중국 견제가 강화된다. 벙안은 인권 탄압과 관련해 미 당국자의 2022년 베이징 겨울 올림픽 참관을 금지시켰다. 또 중국 당국의 신장위구르(웨이우얼) 정책을 ‘인종 학살’로 규정하고, 이 지역에서 “체계적 성폭행과 강제 낙태, 강제 불임” 등과 관련된 중국 당국자에 대한 새로운 제재도 부과하기로 했다.
사이버 공격과 지식재산권 침해 관련자도 제재 대상으로 거론됐다. 홍콩에 대한 미 당국 차원의 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미국-대만 관계도 강화하기로 했다. 미국·인도·오스트레일리아·일본이 참여하는 비공식 전략포럼인 ‘4자 안보대화’(쿼드)를 포함해 인도-태평양 지역 군사동맹 강화 방안도 담겼다. 이밖에 미국 대학과 국제기구, 사이버 공간 등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한 조항도 포함됐다.
미 하원 역시 지난달부터 제조업 기술력 향상과 국제기구 활동 강화, 대만·홍콩 등에 대한 지원 확대 등 포괄적 대중국 정책을 담은 ‘미국의 국제 지도력 확보를 위한 법안’(이른바 ‘독수리 법안’)을 논의 중이다. 하원이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면 상·하 양원의 법안을 병합 처리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된다.
엘리자베스 이코노미 미국 후버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에 “법안 통과는 미국의 정치·경제·안보 이익과 관련해 중국이 명백하고 임박한 위험이며, 지금 당장 대응 수위를 높이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수 있다는 인식이 초당적 공감대를 이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이에 대해 중국의 ‘의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 외사위원회는 이날 오후 성명을 내어 “해당 법안은 냉전적 사고와 이념적 편견에 사로 잡혀 중국의 발전방식과 국내외 정책을 음해했다”며 “이른바 ‘혁신’ 과 ‘경쟁’을 내세워 중국의 내정을 간섭하고, 발전을 가로막으려는 행태에 강력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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