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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1 17:52 수정 : 2005.02.11 17:52

“파운드 폭락, 권력싸움 탓”

대처, 정치압력 굴복 90년 환율체제 변경
준비없어 투기꾼 공격에 하룻만에 항복

영국 파운드화의 대폭락을 예견한 세계적 환투기꾼 조지 소로스에게 영국중앙은행을 거꾸러뜨린 자라는 ‘명성’을 안겨줬던 ‘검은 수요일’(1992년 9월16일)의 교훈이 새삼 영국 언론들을 달구고 있다.

영국 정부는 올해부터 도입한 정보공개법에 따라 〈파이낸셜타임스〉가 요구한 재무부 고위관료들이 작성한 ‘검은 수요일’ 관련 11건의 사후평가 보고서들을 지난 9일 밤 공개했다. 이들 비밀해제된 보고서에서 재무관료들은 대체적으로 ‘검은 수요일’ 사건이 통화정책이 정치논리에 좌우돼 정책판단을 잘못해서 빚어진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검은 수요일=검은 수요일’은 90년 10월 유럽단일통화체제인 환율조정체제(ERM)에 가입했던 영국이 92년 9월16일 환투기 결과에 대처하기 위해 파운드화 지지용으로 280억달러의 보유외환을 투입해 파운드화를 매입했다가 33억파운드의 손실을 보고, 이자율도 하룻새 10%에서 12%, 15%로 올렸다가 그것도 안돼 환율조정체제를 탈퇴한, 지난 25년간 영국 정치·경제사에 최악의 치욕으로 기록된 사건이다. 당시 무능함이 드러난 집권 보수당은 97년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뉴 노동당’에 참패한 뒤 지금까지도 지지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당은 이번 정보공개를 오는 5월 총선을 앞두고 보수당의 오점을 다시 끄집어내 ‘확인사살’하려는 노동당 쪽의 정치적 공작의 일환이라며 분개하고 있다.

정보판단의 미스=재무관료들은 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집권보수당 내의 정쟁 때문에 준비가 안된 채 파운드화를 유럽통화에 연계시키는 결정이 내려졌다고 평가했다. 80년대 말 낮은 인플레이션의 독일을 본받고자 했던 전임 니겔 로슨 재무장관의 환율조정체제 가입 추진을 거부했던 마거릿 대처 총리는 차기 총리직을 노리는 존 메이저 후임 재무장관의 재차 요구에 굴복해 환율조정체제 가입을 결정했다. 고금리에 따른 지지율 하락에 고심하던 대처 총리는 금리 인하를 조건으로 내세운 메이저의 제안을 수락한 것이다. 메이저는 92년 4월 총선에서 총리가 됐다.

이에 대해 재무관리들은 이런 과정을 소상하게 지적하면서 △90년대 초반 영국 경제상황을 잘못 판단했고 △독일 통일의 영향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못했으며 △반고정환율제로 나아가고 있던 유럽환율체제에 대해 이해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정치인들의 권력다툼으로 영국은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통화를 연계함으로써 외환위기의 씨앗을 뿌렸다는 것이다.

하룻만에 항복=당시 파운드화는 1파운드당 2.95마르크로 고평가됐지만 변동폭은 상하로 6%였다. 첫해 인플레가 안정되던 영국경제는 92년 중반부터 독일이 인플레 억제를 위해 이자율을 올리자 따르지 않을 수 없었고, 9월14일 이탈리아 리라화의 평가절하에 이어, 9월15일 독일 중앙은행 총재의 파운드화 고평가 발언 이후 파운드화는 환투기꾼들의 집중적 투기표적이 돼 하한선까지 떨어졌다. 9월16일 외환보유고를 동원한 영국 중앙은행의 개입과 함께 하루 두차례나 이자율을 인상한 비상조처에도 불구하고 환율방어에 실패하자 보수당 정부는 환율조정체제 탈퇴를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소로스는 약 10억달러를 챙겼다.

검은수요일의 교훈=이후 보수당 정부는 변동환율제를 도입해 환율 결정을 시장에 맡긴 데 이어, 고금리정책도 포기했다. 금리가 내려가고 파운드화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비로소 영국 경제는 회복국면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단기적으로 검은 수요일은 영국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지만, 영국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는 데는 일조를 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97년 들어선 노동당 정부는 중앙은행을 재무부에서 독립시켜 금리결정권을 부여해 통화정책에 대한 정치논리의 개입을 차단했다. 영국 정부가 유럽통합의 중요축인 단일통화 가입에 더욱 신중한 자세를 취해 온 것도 바로 검은 수요일이 준 교훈 때문이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소로스, 1주일만에 10억달러 챙겨

%%990002%%‘20세기 최고의 펀드 매니저’로 불리던 조지 소로스(74)가 ‘환투기의 황제’라는 별명을 추가로 얻게 된 계기는 영국중앙은행과 보수당 정부에 치욕을 안겨준 ‘검은 수요일’이었다.

소로스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부유한 유대인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나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이주한 뒤 1969년 1만달러의 자본으로 ‘퀀텀 펀드’라는 사설 투자신탁회사를 차리면서 월가에 데뷔했다.

날카로운 예측 능력과 냉정하고 발빠른 투자로 연평균 35%의 높은 투자수익률을 올리던 그는 92년 여름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에서 유럽 주요국들이 지나친 통화 강세정책에 한계를 드러내 조만간 불안정의 소용돌이에 빠질 것이라고 독일 중앙은행이 경고한 기사를 읽게 된다. 독일이 금리 인하를 통해 국익을 결코 포기 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그는 외환보유액이 충분치 않았던 영국 파운드화를 공략 대상으로 지목하고 그해 9월 영국의 파운드화가 약세 기미를 보이자 추가 하락을 예상하고는 본격적인 파운드화 공략에 나서 단 1주일만에 10억달러가 넘는 이익을 챙겼다. 본인은 ‘대규모의 환투기는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동남아를 휩쓴 뒤 한국을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로 전락시킨 외환위기 때도 소로스는 상당한 부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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