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몇 백명이 8일 폴란드-벨라루스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벨라루스 쪽에 모여있다. 반대쪽에는 폴란드 국경수비대가 이들의 월경을 막기 위해 한 줄로 늘어서 있다. 폴란드 국방부 제공. 쿠즈니카/로이터 연합
폴란드와 벨라루스 국경 지대에서 불법 이주민들의 처리 문제를 놓고 심각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2015년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난민 사태가 발생한 지 6년 만에 이주민 문제로 유럽 전체가 다시 한번 큰 홍역을 앓을 전망이다.
폴란드 국방부는 8일 폴란드-벨라루스 국경장벽을 사이에 두고 몇백명에 이르는 중동 지역 출신의 이주민들과 폴란드 경비병들이 대치하는 모습이 담긴 항공 영상을 공개했다. 외신이 전하는 또 다른 영상을 보면, 이주민들이 긴 나무 장대를 이용해 국경을 넘거나 철조망을 자르려 하자 폴란드 경찰이 스프레이를 뿌리며 이를 저지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폴란드 당국은 3천~4천명에 이르는 이주민들이 벨라루스 당국에 의해 의도적으로 폴란드 국경으로 안내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폴란드는 이주민들이 가방 등 각자 소지품을 들고 무장한 벨라루스 보안군의 안내를 받으며 도로를 걷고 있는 영상을 공개했다. 스타니스와프 자린 폴란드 보안군 대변인은 “대규모 이주자들이 벨라루스군에 의해 완전히 통제되고 있다”고 말했다. 마치에이 봉시크 내무부 차관도 트위터를 통해 “그들은 들어올 수 없다. 폴란드 군경은 모든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폴란드는 국경 부근에 배치된 병력을 1만명에서 1만2천명으로 늘려 이주민들의 국경 유입을 막으려 부심하는 중이다. 폴란드는 유럽연합(EU) 가맹국이기 때문에 이주민들이 이 국경을 넘으면 서유럽 전역으로 흩어질 수 있다.
유럽연합은 벨라루스가 유럽연합에 정치적 압력을 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주민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오랜 독재 체제가 이어져 ‘동유럽의 북한’이라 불리는 벨라루스는 지난 5월 반정부 인사를 체포하기 위해 민항기를 강제 착륙시켜 유럽연합의 제재를 받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성명을 내어 “이민자들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27개 회원국에 추가 제재를 제안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도 “이주민을 유럽으로 보내려는 음모를 당장 중지하라”고 벨라루스를 비난했다.
이에 대해 벨라루스의 국경수비대는 폴란드 국경에 “난민” 2천명이 몰려 있다며 “그들은 보호를 신청하기 위해” 유럽연합으로 향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들은 “폴란드 당국의 무차별적이고 비인간적인 태도 때문에 난민들이 이처럼 절망적인 행동에 나선 것”이라며 “보호를 구하는 사람들을” 쫓아내는 것은 “합리화할 수 없다”고 맞불을 놓았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지난 6월엔 난민 지위를 원하는 사람, 약물, 심지어 핵물질이 유럽으로 들어가는 것을 더는 막지 않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후 유럽으로 이주하려는 이라크, 시리아인들이 벨라루스로 몰려들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전했다.
불법 이주민 문제는 이곳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8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재점령하면서 아프간 난민들이 대거 발생하자, 터키에서 유럽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그리스에 비상이 걸렸다. 그리스는 지난 8월 말 높이 5m, 길이 약 40㎞ 정도의 대형 장벽 공사를 완료했다. 이 장벽의 완공을 앞두고 노티스 미타라키스 그리스 이민·난민부 장관은 “아프간을 벗어난 사람 수백만명을 통과시킬 순 없다. 그리스가 유럽의 현관이 될 순 없다”고 말했다. 시리아 난민 등 100만명이 유럽으로 몰려든 2015년 난민 위기를 다시 겪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폴란드는 국경 수비를 강화하고 불법 입국자들을 돌려보냈지만, 벨라루스는 이들의 복귀를 거부하고 있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이주민들은 폴란드 국경 근처 숲속에 숨어 지내다 일부는 저체온증으로 숨지는 등 비극도 발생하고 있다. 폴란드 국경 근처에서 발이 묶인 이라크 출신 아메드는 “지난달 아내와 세 아이를 데리고 벨라루스에 도착했다”며 “루카셴코가 우리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이 전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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