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 있는 슈퍼마켓에 빵과 밀가루로 만든 식품 매대가 거의 비어 있고 앞에 “한 사람당 1봉지 (판매)”라고 쓰여 있다. AFP 연합뉴스
러시아가 당분간 밀 등 주요 곡물과 설탕을 유라시아경제연합(EEU)으로 수출하지 않기로 했다. 세계 1위 밀 수출국인 러시아의 이번 조처는 옛 소련 구성 국가에 한정되는 조처지만, 전쟁이 장기화되면 파장이 중동과 아프리카 등으로 확대되며 전세계적인 식량난이 발생할 수 있다.
미하일 미슈스틴 러시아 총리는 14일(현지시각) “외부적 제약에 직면한 국내 식품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유라시아경제연합에 밀·호밀·보리·옥수수 수출을 6월30일까지 금지하고, 백설탕과 원당 수출은 8월31일까지 금지하는 내용의 명령에 서명했다고 러시아 관영 <리아 노보스티> 통신 등이 전했다. 유라시아경제연합은 러시아와 옛 소련 구성 국가인 벨라루스·카자흐스탄·아르메니아·키르기스스탄 등으로 구성된 경제 연합체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서구의 경제제재로 자국 내 식량 사정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선제 조처로 풀이된다.
앞서, 러시아 정부는 최근 관세자유구역이 운영되는 유라시아경제연합 국가들에 대한 곡물 수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우려를 드러낸 바 있다. 빅토리야 아브람첸코 부총리는 다른 국가에는 수출 할당 범위 내에서 개별적으로 허가를 받은 무역상에 곡물 수출을 계속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산하 연구소인 ‘경제복잡성관측소’(OEC)에 따르면 2019년 세계 밀 수출 1위는 러시아로 81억4천만달러를 수출했다. 우크라이나도 같은 해 기준 31억1천만달러의 밀을 수출한 5위 수출국이다. 두 나라의 밀 수출액을 합치면 전세계 수출액 4분의 1이 넘는다. 그 때문에 세계 3대 곡창지대로 꼽히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장기화되고 러시아가 국내 식량 사정 등을 이유로 수출을 추가 제한하면, 이 두 나라에 곡물을 의존해오던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이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우크라이나 주요 밀 재배 지역이 이번 전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남동부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세계식량계획(WFP) 관계자는 15일치 일본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는 곧 봄 파종 시기에 접어든다. 전쟁이 장기화되면 그 영향은 가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세계식량계획은 매월 6000만~7500만달러씩 조달하는 곡물의 50%를 우크라이나에 의존해왔다.
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 들어가는 서구의 지원 물자를 봉쇄하기 위해 주요 곡물 수출항인 오데사 등 주요 항구를 점령하면, 수출 곡물이 선적되는 데 큰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13일 이미 발생한 곡물 수출 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철도 운송을 배로 늘려 수출을 계속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전황 변화에 따라 수출이 안정적으로 이뤄질지 장담할 수 없다. 여기에 서구의 가혹한 경제제재로 시름하는 러시아가 향후 밀 등 주요 곡물 수출의 고삐를 더 바짝 죄면 중동과 아프리카에 몰려 있는 주요 식량 수입국들이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는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14일 “45개 아프리카 국가와 최빈국들은 수입 곡물의 3분의 1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한다. 이 가운데 18개 국가는 최소 50%를 수입한다”고 말했다. 이 두 나라에 식량 의존도가 높은 국가로는 이집트·콩고·부르키나파소·레바논·리비아·소말리아·수단·예멘 등이 꼽힌다. 특히, 세계 최대 밀 수입국인 이집트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산 밀 수입 의존도가 70%, 레바논은 우크라이나산 밀 수입 비중이 60%에 이른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우리는 ‘기아의 허리케인’을 막고 글로벌 식량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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