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강제병합한 크림반도에 있는 도시 세바스토폴에서 4일 열린 2차대전 승전 기념일 예행연습이 열리고 있다. 경례를 한 남성이 탑승한 T-34 탱크는 독-소 전쟁 당시 소련군의 주력 전차였다. 타스 연합뉴스
러시아가 9일 ‘2차 대전 승전 기념일’(승리의 날)을 맞아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어떤 입장을 밝힐지에 대해 엇갈린 관측들이 나오고 있다. 일부에선 승리를 선언한 뒤 군사작전을 마무리 할 것이란 기대를 내비치지만, 본격적으로 전쟁을 선언한 뒤 확전의 길을 택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미국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2일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추진하는 러시아의 노력이 “빈혈” 상태라며 “그들은 승리를 선언하고 군대를 철수해, 우크라이나가 다시 (철수한 지역을) 회복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어, 지난 2월 말 개전 이후 러시아군을 괴롭혀온 여러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며 “형편없는 지휘-통제, 사기저하, 기대에 못 미치는 보급 등으로 러시아군이 고통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현재 주전장인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지상전에서 러시아군이 “매우 조심스럽고,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이미 고갈된 전력에 추가적인 사상자가 발생하는 위험을 회피하려고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러시아가 승전 기념일에 종전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말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친밀한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에게 들었다고 전했다. 교황은 최근 이탈리아 신문 <코리에레델라세라> 인터뷰에서 “오르반 총리를 만났을 때, 그는 내게 ‘러시아가 5월9일 모든 것을 끝낼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며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만,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2일 러시아가 선전 목적으로 승전 기념일을 “이용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9일까지 모스크바로부터 더 많을 것을 들을 수 있을 것”이란 유보적 입장에 머물렀다.
이 같은 예측에 힘을 싣는 것은 러시아가 5월 중순께 이번 침공을 통해 점령한 지역을 합병하기 위한 주민투표를 준비하고 있다는 여러 정황이다 . 마이클 카펜터 미 국무부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대사는 2일 “가장 최근 보고에 따르면 러시아가 (돈바스 지역에 있는 친러시아 세력이 세운 자칭 “독립국”들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을 합병하려 하고 있다. 러시아는 5월 중순에 이를 위한 주민투표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반대 예측도 있다. 러시아에 대한 서구의 강경입장을 선도하고 있는 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은 푸틴 대통령이 9일 우크라이나에 공식적인 전쟁을 선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지난달 28일 <엘비시>(L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푸틴은 아마 승전 기념일에 ‘우리는 지금 세계의 나치와 전쟁 중이고, 더 많은 러시아 인민들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며 공식적인 전쟁을 선포할 것이다”고 전망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월24일 시작된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돈바스 지역의 친러 지역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특별 군사작전’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월러스 장관의 말은 푸틴 대통령이 승전 기념일을 맞아 우크라이나에 공식적으로 ‘선전포고’를 하고 군사행동의 폭을 넓힐 것이란 의미다 이 경우 전쟁은 끝을 알 수 없는 수렁에 빠져들게 된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승전 기념일과 우크라이나 전쟁의 연관성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를 거부했다. 그는 지난 1일 이탈리아 방송 <메디아셋>과 인터뷰에서 “우리 군은 ‘승리의 날’을 포함해 특정 날짜에 맞춰 군사행동을 인위적으로 조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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