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의 교도소 모습. 지난 7월 폭격으로 시설이 일부 무너졌다. 사진은 10일 러시아 국방부가 주관한 미디어 투어 때 찍은 것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이 병력 손실을 보충하기 위해 자유와 돈을 미끼로 범법자들을 전장으로 보내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 <시엔엔>(CNN) 방송은 러시아 전역에 각종 범죄로 수감된 재소자와 가족, 친구, 인권단체 등을 상대로 한달에 걸쳐 탐사 취재를 한 결과 러시아의 많은 교도소에서 이런 신병 모집이 이뤄지고 있다고 10일 전했다. 인권단체에서는 적어도 러시아 재소자 수백명을 대상으로 신병 모집이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재소자가 모병에 응하면 러시아 남부의 로스토프 지역의 훈련소에서 두주간 훈련을 받은 뒤 실전에 투입되며, 이들은 전투에 참여하는 대가로 여섯달 뒤 사면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재소자는 <시엔엔>과 비밀리에 한 통화에서 “살인자는 모병 대상이 되지만 강간범이나 소아성애범, 극단주의자, 테러범 등은 안 될 것”이라며 “6개월 뒤 사면을 제안받는다고 한다. 어떤 이는 한달에 10만루블(약 215만원)을 받는다고 얘기하고 다른 이는 (한달에) 20만루블(약 431만원)이라고 말한다. 모두 다 다르다”고 말했다. 또 그는 “재소자 40명이 이미 모병되어 교도소에서 따로 격리돼 있는데, 듣기로는 애초 400명이 지원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나에게 그런 제안이 실제 온다면 환영할 것”이라며 “여기서 거의 10년을 갇혀 있느냐, 운 좋게 살아남으면 여섯달 뒤 자유냐의 문제인데, 왜 안 하겠느냐”고 말했다.
러시아 인권단체에서는 지난 7월 초부터 러시아 전역에서 재소자 가족들로부터 재소자의 안부를 걱정하는 얘기가 봇물 터지듯 나오기 시작했다는 증언이 나온다. 재소자 인권단체인 ‘굴라구닷넷’(Gulagu.net)의 대표 블라디미르 오세치킨은 “지난 3주 동안 러시아 재소자 수천명을 모집해 전쟁터로 보내려는 매우 큰 움직임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재소자가 전쟁터에서 전사하면 가족에게 500만루블(약 1억여원)의 보상금을 지급한다는 약속도 일부 있었다”며 “그렇지만 이런 약속은 말뿐이고 계약서도 없고 아무 보장도 없으며 불법이다”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죄수를 상대로 모병에 나선 것은 지난 2월24일 시작된 우크라이나 침공 다섯달이 넘어가면서 병력 손실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콜린 칼 미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은 지난 8일 “러시아군 사상자가 7만~8만명에 이른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침략에 동원된 러시아군 병력 20만여명 중 상당수가 전투력을 잃고 전선을 이탈해 병력 보충이 급한 상황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3월7일 징집병을 전투에 투입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어, 병력 보충 방안이 마땅치 않다. 이에 따라 궁여지책으로 재소자를 상대로 모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재소자 모병에는 악명 높은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와그너)그룹’이 참여하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 바그너그룹은 민간군사기업(PMC) 형태로 전세계를 무대로 러시아의 군사적 이익을 위해 배후에서 활동하며 숱한 민간인 학살 등 인권유린을 저지른 의혹을 받고 있다. 모병에 응한 재소자들에게 계약 내용을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게 해, 세부 내용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차단하고 있다. 한 재소자의 어머니는 지난달 말 모르는 전화번호로 온 문자메시지를 받았는데, 수감된 아들이었다. 아들은 “잘 있다”며 걱정 말라면서도 어디에 있는지도 말하지 않은 채 “이제 시간이 얼마 없다. 가봐야 한다”고 했다. 며칠 뒤 이 어머니는 자신을 “회계사”라고 소개한 사람의 전화를 받았는데, 곧 아들의 월급을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모병된 재소자들은 주로 총알받이가 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오세치킨 대표는 재소자들이 전장에서 미끼로 활용된다며 “그들이 앞에 가면 우크라이나군이 이들을 보고 공격한다. 그러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의 위치를 파악하고 포격한다”고 말했다.
<시엔엔>은 러시아 국방부와 교도당국(FSIN)에 재소자 대상 모병에 대해 질의했으나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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