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3일(현지시각) 옛 소련의 마지막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장례식에서 영정을 들고 가고 있다. 모스크바/사진기자단 AP 연합뉴스
옛 소련의 마지막 대통령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장례식이 3일(현지시각) 모스크바에서 몇천명의 추모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치러졌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이날 오전 크레믈(러시아 대통령궁) 근처에 있는 ‘하우스 오브 유니언’ 필라홀에서 엄수됐다고 <에이피>(AP) 등 외신이 보도했다. 추모객들은 꽃으로 치장된 관에 누워있는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시신을 보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애도를 표했다. 관 옆에선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딸 이리나와 두 손녀가 자리해 추모객을 맞았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당뇨와 심장 질환 등으로 오랜 투병 끝에 아흔한 해를 일기로 별세했다.
장례가 치러진 하우스 오브 유니온 필라홀은 18세기 제정 러시아 시절 호화롭게 지어진 건물로 옛 소련 시절 국장이 치러진 장소다. 이날 장례식은 몰려드는 추모객들로 애초 예상했던 2시간을 훌쩍 넘겨 4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30대 초반의 일리야는 “나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아들”이라며 ”고르바초프 덕분에 지금은 누리지 못하는 자유를 어린 시절 누렸다”고 회고했다. 페레스트로이카는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개혁 정책을 뜻한다.
추모객 친견행사를 마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시신은 노보데비치 묘지로 옮겨져 부인 라이샤의 곁에 안장됐다. 부인 라이샤는 1999년 백혈병으로 숨져 이곳에 묻혀 있다. 노보데비치 묘지는 고르바초프의 정적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을 포함한 유명인사들이 묻힌 곳이다.
마지막 운구 행렬은 지난해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자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이끌었다. 무라토프는 러시아의 독립신문 <노바야 가제타>의 편집장으로 러시아에서 언론 자유를 주도한 공적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고르바초프는 자신의 노벨평화상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지난해 3월 러시아 당국에 의해 발행이 정지된 노바야 가제타에 자금 지원을 한 인연이 있다.
이날 장례식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다만 푸틴 대통령은 1일 개인 자격으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을 찾아 헌화했다. 드리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이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푸틴 대통령이 이날 잇따른 실무 회의와 국제 통화, 비즈니스 포럼 준비 등으로 바쁘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탈냉전의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러시아 국내에선 옛 소련의 해체와 뒤이은 경제적 몰락의 실마리를 제공한 인물이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푸틴 대통령은 옛 소련의 붕괴를 “20세기 최대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불렀고,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냉전 해체 당시 북대서양조약금지(NATO) 확장 금지 약속을 명문화하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러시아 정부는 이번 장례식에 경호와 의장대 지원 등 사실상 국장에 상응해 장례 절차를 대부분 지원했지만 국장으로 공식 지정하진 않았다. 이는 2007년 별세한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국장으로 지정되어 화려하게 치러진 것과 비교된다. 미국의 <시엔엔>(CNN)은 옛 소련을 포함해 러시아 지도자의 장례식이 국장으로 치러지지 않은 건 1971년 니키타 흐루쇼프가 마지막이었다고 전했다.
국장으로 지정되지 않음에 따라, 푸틴 대통령의 참석 의무도 없고 외국 지도자의 공식 초청도 없었다. 외국 지도자 중에선 친러시아 행보를 보여온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장례식에 거의 유일하게 참석했으며, 미국과 영국, 독일 등에선 러시아 주대 대사들이 참석했다. 러시아 정부 쪽에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 세르게이 스테파신 전 총리 등이 참석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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