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버스운행업체 ‘PKS 그드니아’가 운행하는 666번 버스. 위키미디어 일반
폴란드에서 17년 동안 운행하던 666번 노선버스가 “666번은 악마의 숫자”라는 보수 기독교계의 항의 탓에 결국 번호를 바꿨다.
폴란드의 버스운행업체 ‘PKS 그드니아’는 ”오는 24일부터 666번 버스의 운행을 중지하고 669번을 단 버스가 같은 노선을 대신 다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에이피>(AP) 통신이 1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폴란드에서 666번 노선버스로 갈 수 있는 헬은 발트해 쪽으로 길게 뻗어있는 반도 지역으로, 해변의 모래사장과 푸른 숲길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666번 노선버스는 2006년부터 운영되어온 전통의 버스 노선이다.
폴란드 발트해 연안 지도. 그드니아 위쪽 삐죽하게 바다로 뻗어 나온 곳이 헬이다. 구글 지도 갈무리
이 노선 버스는 특히 666이란 숫자가 기독교에서 불길하게 여기는 ‘짐승의 숫자’인 데다, 행선지 헬(Hel)이 영어로 지옥을 뜻하는 ‘헬’(hell)과 비슷해, 관광객들의 묘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농담거리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지옥 가는 666번 버스를 타봤다”며 주위를 웃기곤 했다고 현지 언론이 전하고 있다.
그렇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666번 노선버스는 보수 기독교계로부터 번호를 바꾸라는 강력한 압력을 받아왔다. 특히 가톨릭 출판물인 <프론다>는 몇년 전부터 666번이 악마를 상징하는 숫자라며 “어떤 방식으로든 영원한 지옥살이에 실재를 부여하며 즐거워하는 건 멍청한 짓”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교회의 압력에 굴복해 666번 번호를 교체한 것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다. 버스회사의 소셜미디어 계정에는 번호 교체 결정이 아주 훌륭한 마케팅 기회를 스스로 버린 것이라는 비판이 올라와 있다. 한 시민은 “그 번호는 전세계에 호소력 있는 광고였다. 나는 외국 사이트에서 헬을 운행하는 666번 노선버스에 대한 글을 여러 차례 읽었다”고 썼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