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스크 무장단체 22일 ‘항구적 정전’ 선언
요인암살 등 비난자초 쇠락…좌파정부 ‘대화’도 효과
요인암살 등 비난자초 쇠락…좌파정부 ‘대화’도 효과
19세기에 뿌리를 둔 유럽의 전투적·저항적 민족주의 운동이 마침내 막을 내리게 됐다.
스페인과 프랑스의 경계를 이루는 피레네산맥 일대에 사는 바스크인들의 무장독립운동단체인 ‘바스크 조국과 자유’(ETA)는 22일 총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다. 이미 북아일랜드의 아일랜드공화군(IRA)과 터키의 쿠르드노동당(PKK)이 무장투쟁 노선을 공식적으로 또는 사실상 접은 상태라, 이 선언은 유럽에서 한 시대를 마감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바스크 조국과 자유’는 지역 방송사에 보낸 비디오테이프에서 “24일 이후 항구적 정전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테이프에 등장한 복면을 쓴 여성은 이번 결정이 앞으로 “민주적 절차”를 추구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프랑코 총통 집권기인 1959년 조직된 ‘바스크 조국과 자유’는 1968년 비밀경찰 처형을 시작으로 850여명의 경찰과 관리, 정치인을 살해하며 독립국가 건설을 추구했다. 스페인 정부가 고작 수십명 정도의 단원만 있다고 평가절하해 온 ‘바스크 조국과 자유’는 1980년에는 118명의 희생자를 만들었다.
그러나 ‘바스크 조국과 자유’는 1997년 동료 석방을 요구하며 젊은 정치인을 납치·살해하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나흘간 600만명이 시위에 나서 비난을 퍼부었다. 1975년 프랑코가 숨진 뒤 바스크 지방의 자치가 강화된 것도 이들의 기반을 약화시켰다. 스페인과 프랑스 경찰의 추적과 지도부 검거도 타격이 됐다. ‘바스크 조국과 자유’는 2003년을 마지막으로 살해를 중단했고, 현재 700여명이 이 단체 활동과 관련해 수감돼 있다. 2004년 191명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열차 폭파사건은 테러에 대한 비난 여론을 확산시켜 이들의 입지를 더욱 좁혔다.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우파 정당들과는 달리, 스페인 좌파 정부는 2004년부터 대화 노선을 추구했다. ‘바스크 조국과 자유’와 연결된 바타수나당은 이제 합법활동을 통해 독립 요구를 대변하고 있다.
독립 공국이었던 바스크 지방은 19세기 후반 스페인 왕위 쟁탈전에서 패자 편에 섰다가 독립을 잃었고, 1937년 스페인의 제2공화국을 무너뜨린 프랑코 군대에게 짓밟혔다. 프랑코의 사주로 독일 공군의 융단폭격을 받아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의 소재가 된 같은 이름의 도시도 바스크 지방에 있다. 카탈로니아 지방과 함께 바스크 지방은 프랑코 독재가 막내리기 전에는 고유언어의 사용조차 금지될 정도로 탄압을 받았다.
앞서, 1919년 창립 뒤 요인 암살과 공중시설 폭발테러를 구사해 온 영국령 북아일랜드의 아일랜드공화군은 지난해 무기 반납을 마치고 합법활동으로 돌아섰다. 또 터키 안에서 독립국가 건설을 추구해 온 쿠르드족의 무장단체 쿠르드노동당은 1999년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의 체포 이후 사실상 무장투쟁을 벌이지 않고 있다.
영국 <비비시(BBC)>는 △유럽연합 출범 △각국 정부의 자치 보장 △강경 대응 △대중적 지지의 하락이 전투적 민족주의를 사라지게 만든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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