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등반자 “못 도와줘” 고백
발짝을 떼기도 힘든 해발 8500m의 설산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발견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더구나 목격자가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이라면?
두 다리가 없는 장애인으로는 최초로 해발 8850m의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뉴질랜드인이 “하산 때 죽어가는 사람을 발견했지만 도와주지 못했다”고 23일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15일 다른 대원들과 함께 정상을 밟고 내려오던 마크 잉글리스(47)는 해발 8500m 지점의 바위 아래에서 숨져가는 영국인 데이비드 샤프(34)를 발견했다. 샤프는 전날 셰르파 없이 정상을 정복하고 내려오는 길에 산소가 떨어지면서 조난당한 상태였다.
잉글리스는 그러나 “해발 8500미터에서는 남의 목숨은 고사하고 스스로의 목숨을 건사하는 것조차 아주 어렵다”며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무전으로 우리 등반대장에게 알렸지만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을 들었다”며 “그날 아침 정상을 오르내린 40여명 이상이 샤프 곁을 지나쳤다”고 말했다.
1953년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는 이 소식에 “경악스럽다”며 잉글리스와 그 일행을 비난했다. 잉글리스와 같은 뉴질랜드인인 힐러리는 <뉴질랜드 헤럴드>와 인터뷰에서 “과거에도 등반 과정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방치한 일들이 있었는데, 올바른 철학을 가지고는 그럴 수는 없다”며 “내 등반대에서 누가 그런 사고를 당했다면 우리는 모든 노력을 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악인과 의사들 사이에서는 “에베레스트 등반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사람들은 모른다”며 구조에 나서지 않은 이들을 이해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산소만 공급했어도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본영 기자, 외신종합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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