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재판소 판결…과도한 보안조사 요구에 제동
미국행 비행기에 타는 승객의 상세정보를 미국 국토안보부에 넘기게 한 협정을 무효화하는 유럽연합 사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왔다. 9·11사태 이후 입국자 개인정보와 보안조사를 과도하게 요구하고 있는 미국의 태도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룩셈부르크에 있는 유럽연합 사법재판소는 30일 미국과 유럽연합이 맺은 탑승자 정보제공 협정이 “법적 근거를 갖추지 못했다”며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재판소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협정 근거로 삼은 유럽연합 정보보호 규정에 안보를 이유로 한 정보수집을 허용하는 대목이 없다고 판시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2004년 5월 유럽 항공사들이 이륙 후 15분 안에 탑승자 정보를 미 국토안보부에 제공하게 하는 협정을 맺었다. 전산으로 제공되는 정보는 이름·주소·전화·전자우편·계좌·신용카드 등 34가지다.
미국은 항공기 납치 테러를 막는다며 자세한 탑승자 개인정보를 내라고 외국 항공사들에게 요구했으며, 유럽연합 집행위는 회원국 여객기들이 정보 미제공을 이유로 회항당하자 협정을 추진했다. 미국은 애초 제공받은 정보를 50년간 보관하려 했지만, 협의 과정에서 3년 반으로 줄었다. 또 기내식 주문 내역 등 탑승자의 인종·종교를 판별할 수 있는 정보는 제공 대상에서 빠졌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정보가 제공되는데다, 정보보호 수준이나 악용에 대한 우려가 가시지 않았다. 이에 유럽연합 의회는 협정 체결이 부당하다며 이를 법정으로 가져갔다. 미국이 국내선 항공편에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려다가 반발 때문에 그만둔 점을 보면, 외국 항공사들과 외국인에 대한 상세정보 요구는 더욱 부당하다는 지적이 일었다.
유럽연합 사법재판소는 일단 판결 내용을 당장 발효시키지 않고 9월30일까지 대안을 마련하라고 집행위에 요구했다. 외국 항공사들이 상세정보를 주지 않으면 탑승자 1명당 6천달러의 벌금, 착륙 불허, 탑승자 추가 보안조사 등의 불이익이 따른다고 미국이 경고하고 있기 때문에 절충점을 찾으라는 뜻이다.
유럽연합 집행위는 이에 따라 회원국들이 각자 입법을 통해 유럽 항공사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것으로 보이지만, 네덜란드 등 이런 정보 제공을 불법화한 나라들도 있어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이본영 기자, 외신종합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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