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징역 각오 운동 벌여
프랑스에서 강제로 추방당할 처지에 놓인 불법이민자들의 자녀를 숨겨주는 운동이 새로운 시민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프랑스 학부모와 교사, 성직자들이 주도하는 이 운동은 2차대전 당시 나치의 박해를 받던 유대인들을 숨겨주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고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이 15일 보도했다.
아제르바이잔 출신 불법이민자를 부모로 둔 알렉(10)은 요즘 10여명의 프랑스인 ‘양부모’와 함께 살아간다. 지난 4월 경찰이 들이닥쳐 추방령을 내리자 단속을 피해 부모 곁을 떠났다. 프랑스인 양부모들은 차례로 돌아가며 그에게 은신처를 제공한다. 동생 다비드(7)도 다른 프랑스인 양부모들 집에서 숨어 살고 있다. 불법이민자 지원단체인 ‘국경없는 교육연대’는 이렇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리용에만 60여명에 이른다고 말한다.
프랑스인들의 불법이민자 자녀 숨겨주기 운동은 지난해 11월 파리 소요사태 이후 우파정부가 불법이민자 강제추방에 나서면서 불붙었다. 니콜라스 사르코지 내무장관이 올해 2만5천명의 불법이민자들을 추방하겠다고 공언하고 단속을 강화하자, 일부 학부모와 교사들이 반발한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불법이민자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여비까지 제공하며 불법이민자 청소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운동에는 우파정부를 지지하는 이들도 참여하고 있다. 브레스트에서 러시아연방 다게스탄 공화국 출신 불법이민자의 자녀를 돌보는 양부모 모임에는 프랑스군 장교 부인도 포함돼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들은 적발될 경우, 3만유로의 벌금과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한다.
프랑스는 2차대전 당시 유대인들을 내놓으라는 나치의 강압에 시달렸던 기억을 안고 있다. 일부 프랑스인들은 유대인 아이들을 숨겨주다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한 프랑스인 양부모는 “21세기 프랑스에서 그때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리라곤 결코 상상하지 못했다”며 “나는 ‘시민’이다”라고 말했다. 프랑스엔 현재 20만~40만명의 불법이민자가 존재한다. 이 가운데 7만여명이 공식적으로 추방령을 받은 상태다.
유강문 기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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