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성직자 납치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이탈리아 검찰이 군 정보기관 고위급들을 체포해, ‘테러와의 전쟁’에서 납치와 주권침해를 일삼은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이에 협조한 유럽 정보기관들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밀라노 검찰은 5일 이집트인 아부 오마르 납치에 협조한 군 정보기관 시스미의 2인자인 마르코 만치니와 전 방첩대장 구스타보 피그네로를 납치와 직권남용 혐의로 체포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유럽 영토 안에서 테러 용의자 납치 문제로 정보기관 인사가 체포되기는 처음이다.
밀라노 검찰은 또 지난해 중앙정보국 요원 등 미국인 22명의 체포영장을 발부한 데 이어 이날 추가로 미국인 4명의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이들은 모두 이탈리아를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통화조회와 증언을 통해 2003년 2월 오마르를 밀라노 거리에서 납치하는 데 이들이 개입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오마르는 미 공군기지를 거쳐 이집트로 이송됐고, 이집트 수사관들한테서 고문을 당해 청력을 잃었다고 호소하고 있다.
밀라노 검찰의 행보는 지난 4월 총선으로 출범한 로마노 프로디 총리 정부가 이라크 주둔 이탈리아군의 철수를 시작하며 미국과 거리를 두는 것과 시기적으로 맞물렸다. 친미 성향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이탈리아 정보기관의 사건 연루를 강력히 부인했고, 중앙정보국 요원들을 넘겨받게 해달라는 검찰 요청도 거부한 바 있다.
한편,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은 2002년에 관타나모수용소에 구금된 프랑스인 6명을 자국 정보기관원들이 심문했다고 5일 폭로했다. 프랑스 정부는 관타나모수용소 설치는 불법이라는 공식입장을 보여 왔기에, 프랑스 정보기관의 이 행위는 위선적 행태로 비난받고 있다. 2003년에 레바논계 출신 독일인이 중앙정보국에 납치된 것을 몰랐다고 잡아떼던 독일 연방정보국은 최근 주장을 번복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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