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서방 유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친러시아 야누코비치 총리 임명”
“친러시아 야누코비치 총리 임명”
정적에게 총리 자리를 내줄 수 없다고 버티던 빅토르 유셴코(오른쪽)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두 손을 들었다. 옛 집권세력을 몰아내고, 러시아를 멀리하며 서방에 접근해 온 ‘오렌지 혁명’ 노선이 큰 도전을 만났다.
유셴코 대통령은 3일 새벽 2시(현지시각) 텔레비전 연설에서 대선 맞수이자 지역당 당수인 야누코비치(왼쪽)를 총리로 임명하겠다고 밝혔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유셴코 대통령은 지난 3월26일 총선 이후 정치세력간 다툼으로 정부를 구성하지 못해왔다.
유셴코 대통령의 정치적 위기는 총선에서 집권당인 우리우크라이나당이 14%의 득표율로 제3당에 그치며 본격화됐다. 친러시아적인 야누코비치의 지역당이 1위를 차지한 가운데, ‘오렌지 혁명’ 동지인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와 사회당이 불화 끝에 지난달 집권연합에서 떨어져 나가, 그는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졌다. 지역당과 사회당, 공산당은 지난달 연합을 구성하고 야누코비치를 총리로 밀기로 했다.
유셴코 대통령은 야누코비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의회 해산과 조기총선을 주장하며 버텼다. 그러나 낮은 지지율로 승산이 없는 데다, 야권이 탄핵 카드를 꺼내들자 마지못한 결단을 내린 것이다. 유셴코 대통령은 2일 자정의 총리 지명 마감시한을 앞두고 이날 오후부터 야누코비치와 담판에 들어가 옥신각신하다 3일 새벽에야 합의안을 발표했다.
야누코비치의 총리 지명으로 유럽연합과 나토 가입을 적극 추진한 우크라이나의 노선에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유셴코 대통령은 연설에서 “(양 쪽이) 서방화의 길을 유지하는 등 정책의 큰 줄기를 정할 합의에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야누코비치는 지지자들에게 “(‘오렌지 혁명’ 때) 삶을 개선하기 위해 모인 시위대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러시아어권의 동남부 산업지대에 지지기반을 둔 야누코비치는 친러시아 노선과 러시아어의 공용어화 등을 추진해, 크든 작든 유센코의 친서방 정책에 제동이 걸리고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2004년 11월 당시 총리인 야누코비치와 대선에서 맞붙은 유셴코 대통령은 결선투표에서 패했다. 그러나 선거부정과 정적에 의한 독극물 주입으로 그의 얼굴이 상했다는 주장이 대규모 항의시위를 촉발했고, 재선거로 결과가 뒤집어졌다. 유셴코 대통령은 자유화와 부패 청산 등을 추진했지만 성과가 미흡하고 집권세력 내부 갈등까지 불거지며 인기가 급락했다. 우크라이나의 반러시아 정책을 지켜보던 러시아가 지난 1월 일시적으로 천연가스 공급을 끊고 가격을 크게 올린 것도 그의 책임으로 돌아왔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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