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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오스트리아 10세 소녀 피납 8년만에 극적 생환

등록 2006-08-25 11:12

‘지하감옥’에 거주, ‘스톡홀름 증후군’ 보여
지난 98년 3월 납치돼 오스트리아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든 10세 소녀가 8년만에 극적으로 귀환했다.

오스트리아 경찰은 23일 수도 빈 교외의 마을인 슈트라스호프에서 주민 신고로 발견, 보호하고 있는 18세의 여성이 8년전 납치된 나타샤 캄푸시라는 사실을 친부모가 확인했다면서 정확한 신원을 밝혀내기 위해 DNA검사를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나타샤는 98년 3월 2일 등교하던중 납치돼 슈트라스호프의 한 가옥 지하실에 8년동안 갇혀있었다가 그녀를 납치한 볼프강 프리클로필(44)이 방심한 사이에 집을 빠져나가 이웃에 사는 노파에게 도움을 요청,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범인의 집은 나타샤의 자택에서 불과 10㎞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으며 이웃들도 평소 그를 알고 지내는 사이여서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는 것. 범인은 나탸사가 집 밖으로 달아나자 황급히 차를 몰고 밖으로 나갔고, 몇시간 뒤 열차에 치여 사망한 채로 경찰에 발견됐다.

나타샤가 갇혀있던 장소는 프리클로필의 집 차고 지하에 위치한 으슥한 방으로, 입구가 낮아 기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실상의 '지하감옥'이었다. 6㎡ 면적에 창문도 없는 답답한 공간이었지만 조그만 침대와 화장실, 싱크대가 있었고 책이나 신문, 라디오, TV, 비디오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나타샤가 때때로 범인이 시키는 집안 허드렛일을 하기 위해 방을 나올 수 있었다면서 탈출하던 날 당일에는 진공청소기를 사용해 차를 청소하던 중 마침 범인이 전화통화를 위해 소음을 피하려 멀찌감치 떨어져 있자 열려있던 문으로 잽싸게 빠져나갔다고 설명했다.

경찰측은 나탸샤가 심리치료를 전공한 여성 경찰관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라고 말했다. 경찰로부터 딸이 무사하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그자리에서 실신했으며 아버지는 한시도 딸이 죽었으리라고 믿지 않았다는 소감을 밝혔다.

나타샤의 부모는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에 이혼한 상태였다. 오스트리아의 일간지 쿠리어는 나타샤가 아버지 루드비히 코흐에게 극적인 상봉 순간 "아빠, 사랑해요, 내가 좋아하는 장난감 자동차는 아직도 있나요"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8년이 지나 얼굴이 많이 바뀌었지만 팔에 있는 수술 자국으로 딸인지를 금새 알아봤다는 부모는 나타샤가 여위고 피부는 창백했으며 온몸에 알 수 없는 얼룩이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구체적 범행 동기와 함께 성폭행 여부도 수사중이라고 말했다.

언론들은 나타샤가 범인 프로클로필을 '주인'으로 불렀다면서 심리학자들은 그녀가 '스톡홀름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다고 전했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란 인질사건에서 인질로 잡힌 사람들이 인질범들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오히려 자신들을 볼모로 잡은 법인들에게 호감과 지지를 나타내는 심리현상을 말한다.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은행에 침입한 4명의 무장강도가 벌인 인질 사건에서 처음 관찰되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범인 볼프강 프리클로필은 독신의 통신 기술자로, 이웃들은 가끔 식품점이나 산책길에서 그를 만났지만 이상한 점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집은 철제 대문과 잘 가꾼 정원이 갖춰진, 전형적인 교외의 2층 가옥이며 비디오 등 첨단 감시장치가 설치돼 있었다.

나탸샤가 탈출한 직후 납치범 프리클로필이 몰던 빨강색 BMW는 나중에 빈의 한 주차장에 버려진 채로 발견됐다. 오스트리아 경찰은 그의 몸이 열차에 치여 갈갈이 찢겨졌지만 주머니에 있던 차 열쇠와 입고 있던 옷을 통해 신원을 확인했다면서 그가 자살을 기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건 당일 나타샤와 함께 등교하던 소녀의 증언에 따르면 범인은 흰색 밴을 타고 있었고 오스트리아 경찰은 동형의 차령을 보유한 1천여명을 용의선상에 올려놓았었다. 경찰은 당시 프로클로필도 접촉했지만 알리바이가 분명하다는 이유로 가택 수색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다.

나탸샤 납치사건은 오스트리아 경찰이 사상 최장기간 수사 노력을 기울인 사건. 경찰은 적외선 카메라를 장착한 헬기와 잠수부를 사건 발생 인근지역과 호수 밑바닥을 샅샅이 뒤졌고 헝가리에서 그녀를 봤다는 목격자의 증언까지 확인작업에 나선 바 있다.

따라서 오스트리아인들에게도 '사건의 추억'은 여전히 생생하고 이 때문에 현지 신문과 방송들은 대대적으로 나타샤의 극적 생환을 다루고 있다. 국영 ORF TV방송은 저녁 뉴스 시간 전부를 나타샤의 생환 뉴스에 할애했을 정도다.

심리학의 개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배출한 나라답게 오스트리아인들은 나타샤가 향후 몇년간 겪을 정신적 상처와 후유증, 치료의 필요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네티즌들은 언론의 보도 자제를 요청하고 있고 부모조차도 인터뷰 요청을 사양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을 호소했다.

BBC방송은 그러나 빈의 시민들은 프라이버시를 강조하며 이웃의 일에 나몰라라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범인이 살고 있었고, 모두가 서로 통하고 지내는 사이였던 슈트라스호프의 주민들에게서는 당혹과 경악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고 전했다.

AP통신은 슈트라스호프의 주민들은 평소 문을 열어놓고 가까이 지내며 이웃의 일을 서로 걱정해주고 어린이들도 길에서 마음껏 뛰노는 교외의 한적한 마을에 이처럼 무서운 비밀이 수년간 드러나지 않고 감춰져 있다는 사실에 주민들이 충격을 받고 있으며 기자들과의 접촉도 꺼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빈 AP=연합뉴스) jsm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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