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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필진] 독일거지와의 인터뷰

등록 2006-09-08 19:28수정 2006-09-08 19:36

늘 한 거지가 동냥을 하고 앉아 있었다. 내가 한때 제 집 드나들듯 다녔던 포르투갈 식 카페가는 길에. 비가오나 눈이오나 자리를 뜨지않고. 그런 그의 모습이 일종의 거리의 풍경이 되었을 무렵, 나는 뜻하지 않게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그의 밥통에다 던져넣었다. 수백 번 그 앞을 지나다녔으나 그 거지에게 눈길한번 주지 않았던 내가.

그렇게 동전을 던져넣고 '고맙다'는 말을 듣고나니 비로소 그의 행색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거지라고 하기엔 좀 말간 구석이 있는 거지였다.

거지라고 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관은 다음과 같다.

1. 나이가 좀 들었다. 사실 젊고 건장하고 패기있는 거지를 본 적은 없는듯 하다.

2. 행색이 허름하다. 거지로서 기본이다. 옷사고 얼굴 가꿀 돈 있으면 누가 거지하나.

3. 거처가 일정치 않고 늘 다니면서 동냥한다. 역마살은 거지의 운명이다.

4. 입은 옷과 멘 가방을 제외하면 가진게 없다.

이 네가지가 성립되어야 거지라 할진데 거기서 본 거지는 이 네가지 조건에 전혀 맞지 않는 새로운 스타일의 거지였다.

나이는 20대 중반으로 젊고 패기까지 있어보이진 않았지만 건강해보였다. 금발에 175센티정도의 키, 행색도 그다지 허름하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월마트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었다. 거처? 늘 일정하다. 다리밑에서 산다.

어쩌다 자리를 비울 때도 있었지만 왠만하면 자리를 지키는 것 같았다. 재산도 꽤 된다. 우선 누런 세빠뜨 잡종 개 한마리, 메트리스, 배낭, 침낭, 그 주위를 장식하는 여러가지 장식품들, 말하자면 꽃과 꽃병, 숟가락, 포크 등을 꽂는 예쁜 컵, 개사진이 담긴 액자 등... 게다가 취미생활을 하는 도구인 스케치북과 여러종류의 연필, 파스텔까지 구비되어있다. 거지로서 적지않은 그의 재산이다 싶었는데 재산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갔다. 저러다 거처를 옮기기 위해서 이사트럭을 불러야 하는가 걱정될 정도로. 스케치북과 연필과 파스텔이라, 취미가 고급인 거지다. 난 이 거지에 대한 인간적인 궁금증이 폭발하여 카페로 가는 발길을 돌려 그와 인터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야 말았다. 가끔씩 그 거리를 지나다 보면 그와 얘기하고 있는 행인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그 사람들도 다 그의 인생이 궁금해서였을까? 남의 일에 끼고 찡기기를 좋아하는 나처럼.

나는 충동적으로 그에게 인터뷰를 제의했다. 혹시나 거부를 하면 어쩌나 걱정스러웠지만 그의 반응은 뜨뜨미지근했다. 그렇게 하잔다. 그의 반응으로 미루어 봤을때 필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인터뷰를 제의하지 않았나 싶다.

이름은?

보리스.

가족관계는?

하이델베르그에 엄마와 누나하나가 산다. 아빠는 이혼하셨는데 연락이 안닿은지 오래됐다.

가족들의 삶은 어떤가?

내 말은 식구들이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산다던가...

다 보통 가정을 꾸리고 산다. 누나는 두번 이혼해서 지금 흑인이랑 산다. 조카가 넷인데 다 각각... 좀 그렇다. 그게 비정상적인거라면 모르겠지만 다들 남들처럼 산다.

언제부터 집나와서 살았나?

고등학교 중퇴하면서 주기적으로 집을 나왔는데 마지막에는 아주 나와버렸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집에서 살기가 너무 답답해서.

학교 중퇴후 하이델베르그에서 이곳 함부르그까지 오는데 그렇게 오래걸렸나?

독일에서만 산 것이 아니다. 독일은 밖에서 살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다. 우선 날씨가 춥고 비가 자주 와서. 그래서 스페인으로

가서 몇년 살았다. 거긴 날씨도 따뜻해서 겨울나기도 좋고 물가도 그다지 비싸지 않았는데 어느땐가 경찰들이 외국에서 온 떠돌이들을

국경밖 프랑스로 다 내쫒아버렸다. 그 이후로 프랑스에서 주욱 살았다. 스페인에서 알게된 사람들이랑 우연히 프랑스를 떠돌다가 빈집을 발견하게 됐는데 쫒겨나기 전까지 거기서 제법 오래 살았었다.

영어는 어디에서 배웠나?(그는 영어가 편하면 영어로 대답해줄 수도 있다고 했다)

다니면서 사람들이랑 어울리면서 배웠다. 학교에서 배운건 아니다. 영어는 대화하기에 무리가 없고 불어와 스페인어도 프랑스에서 살면서 많이 배웠지만 꽤 많이 잊어버렸다. 그리고 독일어는 모국어이니 4개국어 하는 셈이다.

집에서 보리스씨가 이러고 사는걸 알고있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사는게 별로 부끄럽지 않다. 남들은 구걸이라고 하지만 나는 당당하게 돈버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다른 사람한테 돈달라고 한 적이 없다. 우리 식구한테 손벌린 적 없고 지나가는 사람들 한테도 돈달라고 구걸하지 않는다.(그러고 보니 그의 거처에 '나 배고파요'라는 종이쪼가리가 없다) 사람들이 봐서 주고 싶으면 주고 안주고 싶으면 안주면 된다.

이 생활 청산하고 노동청에서 나오는 실업급여만 받아도 잘 살수 있지않나?

내가 독일 시민이니 나라에서 나오는 실업기금 받으며 안락하게 집에서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실업기금 받으려고 시청에 찾아가서 사람들한테 구걸하기도 싫고 그 사람들이 나를 보는 눈초리도 싫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지금 내 삶에 만족하기 때문에 내 삶이 여기서 변하는게 싫다.

여기서 몇년 살았나?

경찰이나 공무원이 철거하라고 하지않나? 이러구 사는거 사실 불법일텐데.

여기서 1년정도 살았다. 처음 몇달 살았을때 경찰이 와서 철거하라고 했다. 근데 내가 이 동네에 마당발이다. 아는 사람도 많고 돈주고 가는 사람도 많다. 그 사람들이 다 나를 위해 서명을 해줬다. (갑자기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며) 나 여기서 살게 해달라고. 서명인원이 100명이 넘었던 걸로 안다. 그 이후로 여기서 아무 저지받지 않고 살게되었다.

사실 아는 사람이 많긴 많았다.

1분꼴로 한명씩 아는 사람이 찾아와서 우리의 인터뷰를 방해했다. 방금도 터키분식점의 요리사가 물 한병을 건네주고 간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거처를 인근의 술집으로 옮겨서 보리스는 카푸치노 나는 술잔을 앞에두고 계속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루종일 앉아있으면 하루에 얼마나 버나?

대중없다. 내가 자리지키고 앉아있으면 자리에 없을때보다 훨씬 수입이 많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자리를 안떠나려고 한다. 겨울이 여름보다 수입이 많다. 특히 크리스마스랑 연말에 수입이 제일 많다. 한번은 한 할머니가 5만원권 지폐를 넣어주고 가신 적도 있다.

평소엔 많으면 3,4만원 적으면 2만원정도 된다.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는가?

많다. 거리에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나한테 말을 거는데 그 사람들 중에는 자기가 살고 있는 집에 들어와서 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근데 대부분 나는 그런 호의를 거절한다. 왜냐하면 안좋은 기억이 너무 많기 때문에.

안좋았던 경험들을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나?

한 번은 남자 하나가 나한테 제의하길 자기 여자친구랑 헤어졌으니 집에 와서 살라고 했다. 때마침 너무 추워서 그 집에 들어가 서 살긴 살았는데... 처음엔 옷갈아 입으라고 자기 옷까지 주면서

잘해주다가 시간이 지나니까 잔소리가 심해졌다. 문 꼭 닫고 다녀라, 그릇은 먹은 직후 씻어놔라, 샤워타올은 쓰고난 후 꼭 어째라... 기분이 상해있는데 나갔다는 여자친구가 일주일인가 지난후에 다시 돌아왔다. 그 남자도 그 틈을 타서 나보고 나가라고 하더라. 그 이후에도 몇번 그런 제의를 받은 적이 있지만 사람들이 한순간의 동정심으로 나보고 들어와 살라고 하는걸 알기 때문에 이제는 왠만하면 그런 호의는 거절하는 편이다.

서로가 불편하다.

이 일 이외에 돈벌이를 해본 적이 있나?

직업을 가져본 적이 딱 한번 있다. 20대 초반에 실업기금 신청하려고 시청에 갔었는데 나보고 일하라고 일자리를 소개시켜줬다.

거기가 분식점 청소하는 일이었는데 하루 일하고 더이상 못해서 나왔다. 그 이후로 시청에 실업기금 달라고 찾아간 적이 없다.

여자친구는 있는가?

돈 들어서 왠만하면 피한다.(웃음) 나는 게이다. 내가 이러고 있으니까 하룻밤 제의하는 사람들이 많이 온다. 어렸을 땐 돈벌려고 응했는데 지금은 그런 일 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남자친구가 있고 그 친구가 가끔 용돈을 주기도 한다. 그외의 수입은 없다.

길거리에서 생활하면서 게이가 된 것인가 아니면 그 전 부터 게이였나?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길거리에서 살지만 몸팔아 돈버는 남창은 절대 아니다. 내가 이러고 살아도 보시다 시피 술마시지 않는다. 얼굴을 보면 알겠지만 마약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않는다. 그런 것들에 중독되는 순간 나는 술과 마약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중독자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술마시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대신 나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그림그리기인데 내가 길거리에서 이것저것 보이는데로 그림그린 걸 좋아한다. 한번은 어떤 아저씨가 내 스케치북을 보더니 주기적으로 스케치북과 그림그릴 재료들을 갖다주신다. 잘 그리지는 않지만 그림그리는 것이 재미있다.

나는 돈벌러 가야한다. 벌써 30분 넘게 얘기를 했네.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자리에 있는거랑 없는거랑 수입이 많이 차이가 난다. 어떤 사람들은 모자에 든 내 돈을 훔쳐가기도 한다.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웠다. 미안하지만 그럼 이만 가보겠다.

짧은 시간이지만 새로운 형태의 삶을 접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대화에 응해줘서 고맙다. 그럼 돈 많이 벌고 건강하길 빌겠다.

보리스는 인터뷰가 있고난 후에도 꽤 오랫동안 다리밑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얼마전부터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호의를 베푸느라 그에게 방을 하나 제공했을지, 아니면 다시

날씨가 따뜻한 스페인으로 돌아갔을지 모르겠다.

보리스를 보면서 우리나라와 다른 형태의 거지를 보게되었다. 생계형 거지가 아닌 선택형 거지. 보리스는 사업이 망하고 집안이 박살나고 돈벌려고 발버둥치다 거지로 전락한 생계형 거지가 아니라 거지로서의 삶을 선택한 거지인 셈이다. 선택형 거지라니 참 인간적이다. 게다가 다리밑 자기의 보금자리를 지키고자 100명의 서명을 받은 사람이나 서명한 100명의 사람이나 100개의 서명을 받았다고 거지를 거기에 살게해 준 경찰이나. 다들 참 인간적이다.

거지도 하나의 인생이다. 독일정부가 한 사람의 국민인 보리스가 거지로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배려해 주길 기원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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