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방어시스템 주식 5.02% 사들여…25%까지 시사
항공방어 “경영간섭 안돼” 반발…독일·프랑스등 긴장
항공방어 “경영간섭 안돼” 반발…독일·프랑스등 긴장
러시아가 유럽의 하늘을 넘본다?
러시아 국영은행이 유럽 최대 항공·방위 산업체인 유럽항공방어시스템(EADS)의 주식을 사들이자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러시아가 초강대국 소련의 ‘영광’을 되찾아가는 듯한 모습에 유럽과 미국이 ‘공포증’을 보이는 가운데 벌어진 일이다.
유럽항공방어시스템은 최근 러시아 국영 브네시토르크은행이 자사 지분 5.02%를 약 12억달러에 사들였다고 발표했다. 2000년 독일·프랑스·스페인 업체와 정부 등 유럽항공방어시스템 설립에 전략적으로 참여한 주주들 말고는 러시아 은행이 가장 많은 지분을 쥐게 된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외교정책보좌관 세르게이 프리홋코는 브네시토르크은행이 유럽항공방어시스템의 지분을 25%까지 사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항공방어시스템은 ‘이사회에 러시아 대표를 받아들이는 일이나 러시아의 경영 간섭을 용인할 수 없다’며 곧바로 반발하고 나섰다. 회사 쪽은 기존 핵심 주주들 외에 시장에서 지분을 산 세력이 이사회에 진출할 여지는 차단돼 있다고 설명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유럽항공방어시스템이 지난 6월 30억달러어치의 군용 헬리콥터 납품계약을 따내 처음으로 미국 군수시장에도 진출했다며, 회사는 러시아의 개입이 미국과의 관계에도 악영향을 끼칠까봐 염려한다고 보도했다.
핵심 방위산업체에 러시아가 발을 들여놨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독일과 프랑스 등은 긴장하는 기색이다. 독일·프랑스·스페인 업체가 합병해 탄생한 유럽항공방어시스템은 70여개 생산시설에서 에어버스 등 상업용 항공기, 유로파이터를 비롯한 군용기, 미사일과 인공위성 등 수많은 장비를 생산하는 거대업체다. 회사 역사를 되짚어보면, 1차대전 이후 유럽의 유수한 방산업체 수십개가 합쳐졌다고 할 수 있다. 말그대로 유럽의 상징인 셈이다. 독일과 프랑스가 공동회장 1명씩을 내세운 것에서 보듯, 출자국들 사이에 미묘한 주도권 갈등도 있다.
러시아 은행의 행동은 지난주 말 프랑스 콩피에뉴에서 열린 프랑스·독일·러시아 3국 정상회담에서도 관심사였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지분 매집이 “공격 신호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보장한다”고 밝혔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유럽항공방어시스템 주가가 저평가돼, 브네시토르크은행이 “금융시장 게임” 차원에서 나섰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나 유럽항공방어시스템에서의 러시아 역할에 대해 독일·프랑스와 함께 ‘워킹 그룹’을 만들어 논의하겠다며, 경우에 따라 브네시토르크은행 보유 지분을 러시아 국영 연합항공기제조(UAC)에 넘길 수도 있다며 모순된 발언을 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쪽이 유럽항공우주시스템의 경영권을 쥐기는 어렵지만, 막대한 자금력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기술 전수에 나서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는 연합항공기제조로 항공업체들을 합병해 가며 거대 업체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한편, 유럽항공방어시스템은 지난해 러시아 수호이 전투기 제조업체들 중 하나인 이르쿠트의 지분 10%를 사들였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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