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적 중립국 이미지’ 훼손…반발.후유증 거셀 듯
24일 스위스 전역에서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스위스 유권자들은 끝내 한층 더 강화된 난민법 및 이민법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에 반해 스위스내셔널뱅크(중앙은행)의 막대한 수익 중 상당액을 극심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노인연금 확충에 쓰자는 개혁안에 퇴짜를 놓았다.
스위스 연방정부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난민법과 이민법은 26개 전 칸톤(州)에서 과반이 넘는 동시에, 전체적으로 67.8%와 68%의 압도적 지지를 각각 받았으며, 노인연금 지원안 도입은 58.3%가 반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스위스 내 우파적, 고립적 경향의 확산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불법 난민 및 이민자 문제로 역시 골치를 썩는 유럽의 눈으로 볼 때에도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도입함으로써 앞으로 상당한 반발과 후유증이 뒤따를 전망이다.
특히 새 난민법 및 이민법은 지난 해 12월 스위스 연방의회의 승인을 받았으나 사회민주당.녹색당 등 중도좌파 정당 및 교회그룹, 인도주의기구들의 반대 활동이 성공하면서 이날 국민투표로 그 최종 결정이 미뤄졌던 사안이었다.
이에 따라 각종 인도주의적 국제기구와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본부가 소재해 있는 `중립국 스위스'의 평화적 이미지는 크게 훼손될 것으로 예상된다.
◇ 새 난민법 내용 뭔가 = 이날 국민투표로 최종 확정된 새 난민법은 인도주의적 이유에 따른 난민 허용을 원칙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새 법안에 따르면 믿을 만한 이유 없이 여권이나 자신의 신원확인 서류를 입국후 48시간내에 제시하지 못하는 사람은 스위스를 떠나야만 한다.
그리고 이들은 정기적인 복지혜택을 받지 못하며, 오로지 식품과 거처만을 신청할 수가 있게 된다.
특히 스위스를 떠나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다른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어도 성인은 최고 24개월, 어린이는 최고 1년까지 징역형을 받게 될 수 있다.
그동안 이 법안의 제정을 주도해온 크리스토프 블로셔 스위스 연방 법무장관은 난민 신청자의 수가 계속 늘어나면서 스위스의 복지시스템에 고비용을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블로셔 장관은 우파인 스위스인민당(SPP) 소속이다.
이에 대해 제네바에 본부를 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은 스위스의 새 난민법은 신원확인 서류 없이도 난민의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1951년의 `제네바난민협약'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UNHCR 등 국제인권기구들은 새 규정이 스위스 입국후 48시간내에 적법한 신원확인 서류를 제시할 수 없는 전쟁 및 처형 피해자들을 봉쇄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시 말해 고문과 강간, 처형 등을 피해 국외로 탈출하면서 그런 적법한 서류들을 챙기는 것이 과연 현실적이겠느냐는 게 이들 기구의 지적이다.
연방이주청에 따르면 스위스 거주자 750만명 가운데 4분의 1이 외국인이며, 스위스에 난민 신청자는 지난 7월말 현재 2만3천291명을 기록하고 있다. 또 작년 한해동안 총 1만61명이 난민 신청을 해서 그 중 1천497명만 난민으로 허용됐다.
스위스에 난민 신청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세르비아, 터키, 이라크, 러시아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 새 이민법 내용 뭔가 = 유럽연합(EU)과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시민권자 이외에는 원칙적으로 이민자의 자격을 `고숙련 노동력'으로 국한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새 이민법은 본질적으로 유럽 이외 지역의 `비숙련 노동력'이 스위스로 이주하는 것을 완전히 봉쇄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EU 시민권자는 스위스와의 양자협약에 따라 이주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이 법안은 또한 인간 밀매와 편의에 의한 결혼을 강력히 단속하는 한편, 특히 언어 코스를 통해 통합을 촉진시키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그동안 연방정부를 구성하는 4개 정당 가운데 3개당은 이 법안을 찬성했으나, 나머지 1개 정당은 이민자의 가족 구성원에 대한 제한 및 스위스를 떠나기를 거부하는 불법 이민자에 대한 가혹한 징역형을 비난하며 반대해왔다.
이와 함께 이미 스위스에서 거주하며 일하고 있는 상당 규모의 불법 이민자의 존재를 무시하고 있다고 우려도 적지 않게 제기돼 왔다.
스위스내 코소보-알바니아연합에 따르면, 새 이민법의 통과로 인해 스위스에 거주하고 있는 코소보.마케도니아.몬테네그로.알바니아 출신의 알바니아인 20만명 가량이 추방될 위기에 놓여 있다.
이 유 특파원 lye@yna.co.kr (제네바=연합뉴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