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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07 18:55 수정 : 2005.03.07 18:55


△ 이라크 무장세력에 납치됐다 석방된 이탈리아 여기자와 함께 바그다드 공항으로 향하던 중 미군의 무차별 총격을 받고 숨진 이탈리아의 정보요원 니콜라 칼리파리의 주검이 안치된 로마 무명용사기념관 비토리아노 묘소 계단에 6일 참배객이 꽃다발을 놓고 있다. 로마/AP 연합

이탈리아 국민 반미감정 고조

미군의 ‘무차별’ 사격으로 이탈리아 고위 정보요원이 숨진 이라크내 피랍 이탈리아 여기자 구출 작전 결말에 격분한 이탈리아 국민들 사이에 반미감정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달 4일 납치됐다 한달만에 풀려난 일간지 <일 마니페스토>의 이라크 종군기자 줄리아나 스그레나(56)는 6일 자신의 신문에 실은 <나의 진실>이란 글에서 지난 4일 밤 자신을 이탈리아로 데려다 줄 군용기를 타기 위해 바그다드 공항까지 1㎞도 안 남은 지점에서 “차가 천천히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총탄이 빗발처럼 쏟아졌다”며 “검문소도 아닌 곳에 나타난 미군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자마자 아무런 이유없이 총질을 해댔다”고 주장했다. 스그레나는 “당시 납치기간 중 일어났던 일에 대해 얘기하던 중이었다”며 “총탄세례 속에서 나를 구하려고 몸을 던진 칼리파리의 마지막 숨소리를 들은 그날은 내 인생의 가장 극적인 날이었다”고 술회했다.

당시 미군 장갑차는 스그레나와 그의 인질석방협상을 성사시킨 니콜라 칼리파리(51) 등 정보요원 3명과 운전사 등 모두 5명이 타고 있던 승용차에 300~400발의 총탄을 퍼부었다. 스그레나는 어깨에 가벼운 부상을 입었지만, 칼리파리는 관자놀이에 맞아 즉사했고, 다른 요원 1명도 다쳤다. 스그레나의 동거인인 피에르 스콜라리는 “미군은 이미 여러 검문소를 지나간 스그레나의 통과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면서 “독자적인 이라크내 취재로 반전기사를 작성해 온 스그레나의 생존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며 단순 오인사격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사건 발생 직후 이례적으로 로마 주재 미국대사를 소환해 “이런 심각한 사건에 대해선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철저한 조사를 요구했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도 5분간 베를루스코니 총리와 통화하면서 “비극적 실수”라며 위로의 말과 함께 철저한 조사를 약속했다.

외신들은 스그레나의 석방을 기다리며 콜로세움에 불을 켜고 축하하려던 이탈리아 국민들은 미국 대사관과 영사관들 앞에서 반전 시위를 벌이고 로마 무명용사기념관에 임시안치된 칼리파리의 관을 참배하기 위해 수만명이 줄을 서는 등 비장한 자세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칼리파리 장례식은 7일 대통령과 총리 등 정부요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장 형식으로 치러졌다. 반전여론에도 불구하고 2700여명의 병력을 파견한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다시한번 거센 철군여론에 직면하게 됐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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