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된 지식인들 잇단 무죄…EU 가입 의식 분석
터키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이슬람식 전통 스카프인 히잡이 5천년 전에는 여성 사제들의 성(性)적인 암호로 사용됐다고 주장한 고고학자에 대해 1일 터키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판결은 특히 표현의 자유 억압을 포함해 터키의 개혁 지체를 질타할 것으로 예상되는 유럽연합(EU)의 보고서 발표에 일주일 앞서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올해 92세의 여성 고고학자인 무아제즈 일미예 츠으는 지난해 출판된 자신의 저서에서 히잡이 5천년 전에는 젊은 남성들과 성적 관계를 맺었던 수메르인 여성 사제들이 남성을 유혹하기 위해 사용했다고 주장, 이슬람교도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히잡을 착용함으로써 남성들이 일반인들과 자신들을 구별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츠으는 종교인들을 모욕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이스탄불 법원은 이날 그녀의 주장이 범죄 요건을 구성하지 못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터키에서는 국가 정체성이나 고위 관료, 종교적 권위를 모욕하는 발언에 대해 형법 301조를 적용해 처벌해왔으며, 최근에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 여류소설가 엘리프 사파크 등이 아르메니아 학살의 역사를 거론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파묵에 대한 기소는 법원에서 기각됐으며, 사파크도 무죄 방면돼 최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으로 악명높은 형법 301조를 적용한 언론인과 소설가, 학자들이 잇따라 혐의를 벗고 처벌을 면했다.
터키에서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고 있다는 서방 측의 비난에 대해 레젭 타입 에르도간 총리는 이 같은 잇단 무죄 판결을 상기시키며 지식인들이 기소됐지만 아무도 처벌받지 않고 있다며 법 조항 개정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서방 언론들은 지식인들이 실제로 처벌되지 않는다고 해도 형법 301조가 존재하는 이상 이들에 대한 재판 자체가 자유로운 발언을 억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형법 조항이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잇단 법원의 무죄 판결은 다분히 터키의 EU 가입 협상을 의식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 1972년 은퇴한 뒤 지금까지 13권의 저서를 집필한 츠으는 올 초에는 에르도간 총리에게 부인으로 하여금 히잡을 착용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슬람 국가이면서도 세속주의를 근간으로 해온 터키에서는 공공장소에서 히잡의 착용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의 에르도간 총리는 이 금지 조항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세속주의 세력의 거센 반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부다페스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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