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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삶도 민주주의도 함께 빚어간다

등록 2007-03-25 19:49수정 2007-03-25 23:38

유럽연합(EU) 탄생 50돌 전야인 24일 벨기에 브뤼셀의 라켄공원에서 열린 경축음악회 도중 높이 102m의 알루미늄 탑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브뤼셀/AP 연합
유럽연합(EU) 탄생 50돌 전야인 24일 벨기에 브뤼셀의 라켄공원에서 열린 경축음악회 도중 높이 102m의 알루미늄 탑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브뤼셀/AP 연합
유럽연합 50돌 ‘통합 용광로’ 현장을 가다 ① ‘유럽합중국’ 그 이상의 꿈

유럽연합(EU)이 25일로 출범 50돌을 맞았다. 그동안 유럽연합은 국경없는 이동, 세계 최대 단일시장을 기반으로 세계가 주목할 만한 통합을 이뤄냈다. 경제 통합을 넘어 정치·사회 통합을 향해 고민하는 유럽연합의 현주소를 현지 취재를 통해 다섯 차례로 나누어 싣는다.

독일인 간호사 땅값 싼 벨기에서 출퇴근
직장 잃으면 벨기에서 실업수당까지 받아
국기 대신 EU깃발… ‘민주적 가치’ 펄럭

네덜란드·벨기에와 국경을 접하는 독일의 서북쪽 도시 아헨. 이곳에서 만난 독일인 간호사 로지타 뮐러는 벨기에 집에서 출퇴근을 한다.

그가 벨기에 땅에 집을 산 것은 독일에 비해 값이 싸기 때문이다. 로지타는 “20분이면 버스로 국경을 넘고 검문도 없다”며 “이래서 유럽이 좋다”고 말했다. 로지타는 독일인이지만, 벨기에에 거주하는 탓에 직장을 잃으면 벨기에에서 실업수당을 받는다. 또 벨기에 선거에 투표할 수도 있다.

아헨의 유레스(EURES, 유럽연합고용서비스) 사무실. 한 독일인 청년이 직원과 상담을 하고 있었다. 이 청년은 “영어를 쓸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다”며 아일랜드나, 영국에서 일하기를 희망했다. 이곳 직원 헤인즈 베르너는 “외국에서 일하려고 사무실에서 정보를 얻는 사람만 한달에 약 250~300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유레스 사무실 앞에는 ‘유럽연합 대졸자 취업안내서’가 꽂혀 있다. 지난 24일 현재 이 프로그램에는 구직자 23만9231명, 구인자 9410명, 일자리 87만9259건이 등록돼 있었다.

유럽은 하나였다. 유레일 열차가 파리와 브뤼셀, 베를린을 한달음에 거침없이 내달리듯 출범 50년째를 맞은 유럽연합은 거대한 ‘유럽합중국’으로 변모해가고 있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호텔에서 본 텔레비전에는 ‘소우주’ 유럽연합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스페인의 투우 경기 방송,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후보의 토론 프로그램, 거액이 걸린 퀴즈쇼에서 우승해 기뻐 날뛰는 이탈리아인 등등. 호텔 직원은 37개의 채널 중 18개가 독일 방송이 아니라고 귀띔해줬다.

유럽 어느 곳을 가든 시내 한가운데 자리잡은 채 범기독교적 가치를 상징하는 대성당, 아침이면 먹을 수 있는 딱딱한 빵, 여행 가이드들조차 구분하기 어렵다며 고개를 젓는 비슷한 인종, 적게는 1~2개에서 많게는 9개 나라와 국경을 맞댄 나라들, 유럽연합은 이런 공통의 기반 속에서 27개 회원국들을 모두 담아내는 거대한 용광로가 되어 있었다.

50이면 사람 나이로 하늘의 명령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이다. 지천명의 나이에 접어든 유럽연합이 지나온 50년을 뒤로 하고, 새로운 50년, 나아가 100년의 미래를 내다보는 꿈은 무엇일까?

최근 시사주간지 <타임>은 유럽연합을 “소프트 파워”라고 표현했다.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 프랑수아 바푸알 책임연구원은 “유럽연합은 민주적 가치의 앙상블”이라고 말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최근 ‘유럽을 사랑해야 할 50가지 이유’의 하나로 ‘민주주의의 번영’을 꼽았다.

결국 평화와 민주주의, 유럽식 사회복지 모델 등이 세계를 이끌어가는 유럽의 힘이라는 것이다. 실제 유럽연합의 지난 50년은 전쟁에서 평화로,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빈곤에서 번영으로 옮겨온 발자취였다.

평화는 2차 대전의 악몽에서 꽃피운 유럽연합 50년의 최대 성과다. 프랑스 외무부 유럽연합 협력국 크리스틴 모로 부국장은 “유럽은 철의 장막과 냉전을 극복했다”며 “평화는 유럽연합의 출발점이자 최대의 성과”라고 말했다.

평화는 전쟁 대신 번영을 선물했다. 모든 회원국 국민은 1년에 최소 4주간의 유급휴가를 보장받는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낸 한 안내서는 “유럽연합 가족”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아일랜드와 그리스, 스페인 등은 유럽연합의 지원으로 성장했다.

이번 유럽연합 50돌 행사의 공식 구호는 ‘함께’였다. 독일 외무부 유럽연합국 하디 버클러 부국장은 “덴마크는 물론 독일도 세계화된 세상에서는 작다”며 “우리는 함께 함으로써 중동 등 세계 곳곳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인들은 ‘함께’ 함으로써 평화와 번영을 얻었고, 또 더 나은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었다. ‘유럽연합인’ ‘비유럽연합인’.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의 출국 수속은 이렇게 나눠졌다. 호텔 앞에는 국기 대신 자주 파랑색 바탕에 노란색 별 12개가 그려진 유럽연합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브뤼셀 공항에는 ‘유럽으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시사주간 <뉴스위크> 최신호는 유럽연합 50돌 특집에서 4500만명이 의료보장을 받지 못하는 미국식 사회모델의 실패를 개탄했다. 독일 프리드리히-에버트 재단 크리스티앙 켈러만 연구원은 “유럽은 미국식 모델을 넘어서는, 그 이상의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의 미래 역시 ‘아메리카 합중국’ 형태와는 달랐다. 유럽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유럽연합 관계자들은 “독립 국가와 연방제의 중간”이란 말을 자주 했다. 그들은 “균형”을 강조했다. 프랑스 외무부 유럽연합 협력국 줄리엥 스테임머 부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유럽합중국’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독립 국가와 연방제의 중간에서 균형을 맞추며 나아갈 것이다.”

파리 브뤼셀 베를린/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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