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스토니아 갈등폭발 위치도
에스토니아 옛소련군 동상 철거에 러 ‘석유철도 중단’ 맞서
폴란드·헝가리도 갈등 조짐
폴란드·헝가리도 갈등 조짐
러시아와 주변국들의 ‘역사 분쟁’이 공관 폐쇄와 유혈사태로 발전했다. 에스토니아의 소련군 동상 철거에 이어 폴란드와 헝가리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2일 모스크바 주재 영사관을 폐쇄했다. 안드루스 안시프 총리는 이날 의회에서 “에스토니아 대사에 대한 공격, 러시아 당국 서버를 통한 사이버 공격, 러시아 두마(하원)의 에스토니아 정부 교체 요구”를 들어 러시아를 비난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보도했다.
모스크바 주재 에스토니아 대사관은 이날 대사관 건물을 에워싼 시위대가 돌을 던지고, 친정부 청년단체 회원 30여명은 대사의 기자회견장에 난입해 “파시스트 에스토니아” 등의 구호를 외쳤다고 밝혔다. 에스토니아 공관 직원 가족들은 대피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3일 러시아 국영 러시아철도가 에스토니아 항구로 가는 석유의 운반을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사태는 지난달 27일 에스토니아가 수도 탈린 중심부에 있던 1.8미터 크기의 소련군 동상을 철거하면서 비롯됐다. 1차대전 뒤 러시아로부터 독립했으나 1940년 다시 옛 소련에 병합된 에스토니아는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의 철거를 강행해 동상을 시 외곽으로 옮겼다. 이에 130만여명의 에스토니아 인구 중 4분의 1을 차지하는 러시아계와 러시아 당국이 반발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러시아계 청년들이 3일간의 시위에서 1명이 숨지고 153명이 다쳤다. 유리 루시코프 모스크바 시장은 “가장 야만스런 방식”으로 철거가 이뤄졌다고 비난했고, 일부 두마 의원들은 단교를 요구했다.
폴란드에서도 소련과 관련된 상징물을 철거할 근거가 되는 법률이 15일 발효한다. 폴란드는 또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 소련인 수십만명이 숨졌다는 러시아 쪽 주장이 근거없다며, 기념관의 러시아 희생자 전시관을 문닫았다. 헝가리에서는 소련 상징물 철거 요구에 20만명이 서명했다.
역사 갈등은 1945년 독일군을 몰아내고 동유럽에 진주한 소련군을 해방군이 아닌 점령군으로 보는 인식이 여러나라에 퍼지면서 악화됐다. 러시아 주변국들에서는 1991년 소련이 해체되자 레닌과 스탈린 동상이 별 마찰 없이 철거됐다. 그러나 나치즘에 대한 승리는 소련군의 영웅적 희생의 결과라는 시각이 여전한 러시아 쪽은 최근 주변국 동향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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