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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블로그] 의무적인 블레어의 사임

등록 2007-05-15 19:25수정 2007-05-15 19:40

애쉬다운(Ashdown)은 그의 일기에서, 그가 장관직 사임을 토니 블레어 (Tony Blair)에게 미리 알리고자 만났을 때 블레어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썼다: 장관직을 그만둔다는 것은 정치를 하는 사람에게 있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너무 오랫동안 자리에 눌러 앉아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는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물었을 때 그만두기를 선호한다; “왜 그만두지 않는가?” 또는 더욱 최악은 “언제 그만두지?” 라고 묻기 보다는 “왜 그만두지?” 라고 물었을 때이다. 당신처럼 할 수있기를 바란다. 하나의 예언처럼 이제 블레어는 그 최악인 언제 그만두지라는 상황에서 당 내부의 반발과 국민들의 여론에 의해 어쩔 수없이 수상직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하게 되었다.

영국의 노동당을 개혁했고 선거에서 세번 연속 토리 (Tory)당을 패배시켰고, 제삼의 길 (third way)로 영국를 변모시키는 것에 그치치 않고, 또한 유럽의 정치적 파노라마를 변모시켰다고 분석되는 블레어가 물러나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적으로 블레어가 노동당의장이 되기 전의 영국의 정치 상황을 살펴보자. 1980년대 영국에서 다수의 국민은 라이트쪽으로 움직이는 동안에 노동당 (Labour)은 레프트로 움직였다. 이러한 레이버의 선택은 1992년까지 네번 연속 선거상에서 토리당에게 패배를 하게 만들었다. 노동당의 상징은 1918년의 당헌에 씌여진 IV항에 항상 남아있었다: 경제의 “공동 소유 (common ownership)” 에 대한 공약이다. 20세기 후반, 레이버 지도자들은 IV항을 의식의 조각으로서 생각하게 되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마거렛 새처(Margaret Thatcher)는 노동조합에 대한 억압, 소기업의 보호, 카운슬 (council) 주택의 판매, 자산 (asset) 분배, 시장 자유화, 애국주의로 레이버당을 이겼었다. 하지만 그녀의 통치 말기에, 토리당의 경제적 비운영은 새롭게 산 자산 가치들의 급속한 하락을 산출했고, 파산을 야기시켰다. 사회주의, 노동 조합과 고세금에 반대하는 그녀의 정책을 지지하는 국민들은 또한 좋은 공공 서비스들을 원한다는 것을 새처와 토리당은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만약 레이버가 새처리즘(thatherism)에다 능력있는 경제적 운영, 새처리즘이 위협했던 사회 보장 및 실직 수당 등을 보장하는 사회 수급권 (social entitlement)들을 제안할 수 있다면, 다가 오는 선거에서 레이버당에 승리를 가져다주는 확신적인 공식으로서 보여졌다.

사회주의와 계급에 근거한 정책들을 만들어왔던 레이버당이 이것들에 대해 최종적인 거부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치적 지지 그룹을 형성했었던,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참여 하락에 의해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시장경제에 대한 공약과 그것을 운영할 레이버당의 능력을 막아왔던 IV항의 그늘이 제거되었다. 고든 브라운 (Gordon Brown)은 제삼의 길이라는 수사학을 연구할 시간이 없었지만 사회적 민주주의 (social democracy)의 잔재와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와의 병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몰두했다. 그가 이해한 것은 번창하는 시장 경제는 케인즈 (Keynes)가 안정적 가치 기준 (standard of value)이라고 부르는 것을 요구한다는 것과 영국에서는 정치화한 (politicised) 통화와 통화 정책 (fiscal policy)은 붐(boom)과 파산의 사이클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재무장관으로서 그의 첫 조치는 영국의 중앙 은행에 인플레이션 목표와 이자율에 대한 통제를 주는 것으로 블레어의 제삼의 길을 뒷받침해 준 것으로 분석되고있다. 블레어하의 노동당은 뉴레이버의 창조, 제 삼의 길의 발전, 바뀌고 있는 세계에 적절한 진보주의에 선호해서 사회주의 구원칙들을 버렸고, 지배적인 중간계층 (media)의 지지를 얻기 위해 온건파(center)에 무게의 중심을 두었다. 이것은 레프트와 라이트의 정책이 구분될수 없는 잡종 교배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레프트와 라이트는 서로 다른 입장에 의해 대결하기 보다는, 공유적인 바탕에서, 치열한 이데올로기적 반목없이, 상호적 존중하에서 그리고 국민들을 위한 사회적 진보의 보다 나은 대안을 제시한다는 도전하에서 대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1980 년대 중반 피터 맨덜슨 (Peter Mandelson)은 새도우 컴뮤니케이션부 (Shadow Communications Agency )를 만들었고, 새로운 정치적 현실하에서 성공의 조건이었던 레이버의 마케팅 전략에 있어 혁명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정책 결정 형성의 중요 원칙으로서 “한 당원에, 한 투표” 방식을 도입했고, 당 제도 (institutions)들로부터 당지도자들을 해방시켰고, 더욱 포풀리스트적인 정치 문화에 문을 열었다. 레이버는 정책들이 대중의 인기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힘들게 배웠다. 상대적으로 공개토론은 당내에서 우선적으로 정리되었고 그리고 조작된 의견 – 소위 말하는 홍보 조작(spin) – 으로 바꾸었고, 그 다음에 전국에 발표되었다.

2007년2월 BBC와의 인터부에서 블레어는 10년 동안 영국의 상황이 얼마나 호전되었는가를 말했다. 블레어의 논평이 옳은가에 대해 상당한 의문이 존재한다. 공공 지출에 많은 증가가 있었고, 그로 인해 도처에 새로운 학교와 병원이 세워졌고, 교사들은 더 낳게 지불되었고, 더우기나 병원에서의 대기자 명단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있다고 존 로이드 (John Lloyd)는 주장했다. 미들랜드와 북부의 빅토리안적 구 도시, 적어도 역사적 중심지, 는 급진적으로 바뀌었고, 이스트 런던 (East London)과 리버풀, 글라스고우와 버밍햄의 카운슬 주택 지역에서 가난이 감소되었다고 느껴지고 있다. 부자들은 더욱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자들은 덜 가난하게 되었다. 하지만 영국에서 실질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것에 말할 때 블레어의 주장이 옳지만, 그런 변화가 뉴레이버하에서 전적으로 일어났다고 주장할 때는 블레어가 틀렸다고 존 로이드는 주장한다. 영국의 경제를 정상화하는데 있어, 블레어는 잇점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더욱 힘들고 논란이 많은, 더러운 작업은 그 이전에 새처가 이미 시작했었고, 영국 경제는 존 메이저 (John Major)하에서 보다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경제적 향상의 시작은, 사실상 영국이 유럽 지역밖에서 계속 남아 있을 수 있게 만들었고, 블레어와 노동당이 사회주의 종언을 하는데 커다란 도움을 주게 되었다. 뉴레이버는 사회당, 거대 산업과 노동자 계급의 대결의 근거를 항상 더욱 감소시키고 단지 온건주의자들을 끌어들여만 정부가 생존할 수 있다는 사고와 함꼐 출발해서 창조되었고, 또한 새처가 경제를 보다 낳게 바꾸었다는 것과, 그녀의 시장 자유화와 공공서비스 모델은 구노동당의 모델에 비해 보다 잘 작용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뉴레이버의 사회적 차원은 두 주류로 나누어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블레어가 이끄는 사회적 자유주의자들 (Social Liberals)과 고든 브라운에 의해 이끌어지는 사회적 민주주의자들 (Social Democrats)로 구분되고 있다. 전자에 의하면, 구 평등주의적 목표들은 성취될 수 없고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현대화 (modernity) – 정착된 습관들과 통례적인 연계 (customary ties)로 부터 해방은 사회적 붕괴와의 연결 – 의 애매한 결과들은 “시민의 권리와 의무 (the rights and duties of citizenship)” 의 개념에 근거한 새로운 사회 계약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또한 가난은 이제 남겨진 문제이고, 그 해결은 재분배의 문제가 아니라,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들이 필요하고, 제 삼의 길은 평등 (equality) 이 아니라 사회적 포함 (inclusion)이다라는 것이다. 정부는 사회복지 (welfare)의 상부에서 하부로의 제공자로서가 아니라, 공동체 행위 (communal act)의 지원자로서 보여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후자에 따르면, 구평등주의적 목표들은, 비록 매우 약해진 형태일지라도, 여전히 실제적으로 중요하고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짜 제한은 세금 저항 – 공공 서비스를 위한 고세금을 지불하는 것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항 – 이므로,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보다 영리한” 사회 복지 정책을 추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2월 5일 선데이 익스프레스 (Sunday Express)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56%의 응답자들은 블레어가 빠른 시일내에 사임하기를 원하다고 했고, 또한 435 의 레이버당원들도 그가 즉각 물러나기를 바란다고 응답했다고 보도했다. 토니 블레어의 마지못한 사직 발표 이유는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그가 만든 문제들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1994년 레이버당의 리더가 되기 전에, 한 저녁 식사에서 블레어는 브라운에게 리더쉽에 대한 하나의 제안을 했다. 레이버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브라운에게 리더쉽을 넘겨주겠다는 조건으로 브라운에게 리더쉽 경쟁에 나서지 말 것을 제안했고, 브라운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세차례에 걸쳐 보수당을 패배시킨 후, 브라운에게 했던 약속을 실행하기로 선택했다. 다 시 말해서, 네번째로 후보로 나서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2006년 9월 토니 블레어가 1년이내에 그만둘 것이라고 말했을 때 재무장관이면서 차기 후보자인 브라운은 그리 충분하지가 않다는 말로서 그의 불만을 표시했고 공식적인 사임 시기를 발표할 것을 촉구했었다. 블레어의 측근이면서 국방부장관인 톰 왓슨 (Tom Watson) 역시 리더쉽의 긴급 교체를 공유한다고 말했고, 영국의 레프트의 공식 대변지인 가디언(Guardian) 신문 역시 블레어의 정치적 유산은 세계의 혼란을 만든 생각없는 모험주의이다라는 헤드라인을 붙혔었다. 하지만3월 5일 업서버 (Observer)와의 인터뷰에서 블레어는 조기 사임을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에 있어서 미국과의 전략적 연합은 그의 정치적 종언의 시작을 표시했다. 존 로이드에 따르면, 블레어는 테러리즘에 대한 전쟁에 있어 부쉬와 의견 일치를 이루었고, 이것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그가 부쉬의 앞잡이라고 믿게 만들었다. 하지만 정반대로 미국 이전에 블레어가 먼저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고자 원했다는 것이다. 부쉬가 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에 블레어는 사담 후세인 정권을 바꾸기 위해 세계를 확신시켰고,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군사력을 가진 미국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빌 에머트 (Bill Emmott), 이코노미스트 (Economist) 전 디렉터, 는 2005년 4월 인터뷰에서 블레어가 이라크 전쟁에 참여해서 무엇을 할 려고 했던 것에 대해 진실을 말했고 본다고 대답했다. 즉 블레어는 비밀 정보부가 보고한 것에 대해 믿었지만, 진짜 무엇을 알고 있었는 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3년 7월 16일에 무기 전무가인, 데이빗 켈리 (David Kelly) 의 자살은 그의 말을 증명해주는 예로서 볼 수 있다.

2005년 3월 선거에 앞서, 업서버 지는 블레어의 태도를 매저키즘 (masochism)적 전략이라고 표현했다. 화난 유권자들과 정면 대결적으로 부닥쳐서, 공개적 편달 정책을 취하고, 희생자 노릇을 하므로서, 충분히 처벌 받았다고 유권자들에게 확신을 주는 형식을 취했다는 것이다.

선전, 대중관계에 있어 매스미디어적 지나친 통제가 있었다. 너무나 긴 정치적 집권은 결국 정치 쇼 시대에 있어 10여년간 연속적으로 똑같은 쇼를 반복할 수 없다는 것이고, 미디어와 대중은 새로운 인물을 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블레어는 당보다 그의 개인적 이미지 선전에 너무 치중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비밀 자금을 댓가로 상원에의 지명을 약속한 부정 사건 역시 그의 사임의 불명예스러운 한 부분이다. 비밀 자금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토니 블레어의 많은 측근들이 체포되었고, 블레어 역시 2007년 경찰에 의해 두번씩이나 조사되었다.

정책의 목표가 가장 가난한 자들의 절대적 위치를 개선해야만 하는 것인지 아니면 부자와 가난한 자들간의 틈을 좁히는 것인지에 대한 정책 선택의 문제를 남겨놓았고, 당 권력의 중앙집권화 (concentration) 대 분권화 (decentration) 또한 문제점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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