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사르코지. 파리/AP 연합
지난 5월 6일 프랑스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좌파냐 우파냐를 놓고 각축전을 벌이는 가운데 우파가 예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왜 예상대로 우파가 이겼을까? 지난 6개월동안 프랑스에서 일어나는 선거운동을 보면서 느낀 점이 있어 글을 올리기로 한다. 그러나 밝혀 두건데 나는 정치 전문가가 결코 아니다.
나는 1995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한국을 떠나 프랑스로 유학을 왔다. 그해 시라크가 당선 되었고, 말하자면 정확하게 12년간 시라크 정부 아래 살았던 셈이다. 한국에서는 정치에 관심도 없었고, 단지 한국을 떠나기 전 프랑스가 1995년 대선을 치룬다는 사실에 나와 같은 외국인들에게 어떤 정책을 쓰느냐에 잠시 관심이 갔을 뿐이다.
그때도 프랑스의 실업문제가 심각했었고, 결국 그 문제가 미테랑아래 좌파정권이 패배한 주요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12년동안 프랑스의 실업문제는 더욱 악화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우파가 정권을 잡은 것은 좌파의 불안정한 지도체계, 대세의 흐름에 민감하지 못한 태도에 기인한다.
우파정권, 대중연합운동은 시라크가 창설했다. 그러나 시라크의 지지없이, 반 시라크 주의를 내세우며 사르코지는 2005년 대중연합운동 총재를 맡으면서 이미 대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고 볼수 있다. 반면 우파 사회당은 이미 대중적인 지지도가 높은 여성후보 세골렌 루와얄을 즉각 밀어주지 않았다. 프랑스 사회당의 성격은 엘리트계의 남성위주로, 내가 봐도 이상주의에 젖은 탁상공론을 일삼지 미테랑과 같은 카리스마적인 지도자가 부족했다. 쉽게 말해 잔머리는 많은데 큰머리은 없다고 봐야 했다. 그런 분위기에 루와얄의 등장은 획기적이었다. 그녀는 내가 본 정치인들중 가장 민중의 현실을 잘 파악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2005년 부터 사회당에 개혁을 추진했으면 이번 대선은 판도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회당에 말많은 잔머리들ㅡ스트로우스 칸, 파비우스는 2006년 서로 사회당의 정권을 잡으려고 나섰다. 사회당 서기인 홀랑드가 남편인 루와얄은 심지어 파비우스로 부터 '아니 엄마가 대선에 출마하면 애들은 누가 본 단 말인가' 라는 소리도 TV를 통해 들어야만 했을 정도였다.
뒤늦게 2006년 12월부터 대선 준비를 시작한 루와얄은 경험부족도 있었지만 사회당내에서 그녀를 뒤받침해주는 큰머리가 없었다. 심지어 그녀의 오른팔로 경제부분 전문가 였던 에릭 베송이 그녀를 공개적으로 언론에 무차별적인 인신공격을 하면서 2007년 2월 탈당해버렸다. 그가 루와얄의 여성적인 면을 몰상식하기 짝이 없게 공격 하는 것을 보면서 민주주의가 발전한 프랑스에도 저런 일이 다 있구나 생각했다. 그는 거기서 그친게 아니라 더욱 더 비난하기 위해 '누가 마담 루와얄을 가장 잘 아는가?' 라는 책까지 출판했고, 이 책은 베스트 셀러 순위1위였다.
이쯤 되면 루와얄의 정치적인 능력에 의심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루와얄은 자신을 철저하게 배신한 베송을 비난하지 않고 없었던 일처럼 처리하였다. 베송은 1차 투표 결과이후 사르코지 진영에 합승하여 그녀를 더욱 더 비난했으며 5월 2일 사르코와 루와얄 대담 준비에 사르코지를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든, 사르코지의 전략은 들어 맞았다. 역사적으로 좌파엔 잔머리들이 많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 민주주의식으로 모든 잔머리들을 존중하다 보면 그만큼 분열을 초래하기 쉽단 이야기다. 사르코지는 이것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그는 미국의 부시가 추진한 대선방식을 도입했다. 즉, 우민화 정책, 국민에게 친밀함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되 절대 복잡한 언변으로 연설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특히 그의 연설은, 12년간 실업과 이민자들에게 시달렸다고 생각하는 프랑스의 65세 이상 투표권자들에게 정확하게 꽂혔다. 프랑스는 평균수명이 82세안팍으로 좋게 말해 장수 국가인 동시에 그 인구의 중요성때문에 유럽의 가장 '늙은 국가들'중 하나 이다. 당연히 나라의 노동력과 능동성은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1968년 5월 프랑스 학생운동이 나라를 망쳤다고 생각하며 민주주의의 의미 보담 과거 드골시대 화려했던 프랑스의 노스탈지어에 사로 잡힌 인종차별주의자들로 변신한 노인들이다. 사르코지는 여기에 표밭이 숨겨져 있다고 믿었다. 왜냐면 2002년 대선때 1차 투표결과로 극우파 르펜이 시라크의 적수로 떠올랐었는데 르펜의 유권자가 바로 이 60대 이후 세대들이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기존 우파의 젊은 층을 겨냥해서 유세장마다 미국식 다이나믹한 분위기를 이끈 것도 한몫하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르코지는 프랑스의 주요 TV 언론매체 사장들과 연계, 기자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여론, 언론조작은 외국인인 내가 보기에도 너무나 뻔했다. 루와얄과 사르코지가 TV대담을 할때 사회를 맡은 프랑스의 유명한 남자 아나운서 파트릭 뿌와브로 달롱은 루와얄의 말을 번번히 저지하고 끝까지 면박을 주는 것이 느껴졌으며 사르코지와 눈을 맞추는 것이 역력했다. TV에서는 루와얄의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을 더 많이 보여주기도 했고 대선 결과 전 라디오에서는 마치 사르코지가 대통령이 된 것 처럼 떠들기도 했다. 이 와중에 좌파의 유세는 당연히 처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루와얄과 그의 지지자들이 말을 잘해도 먹히지 않았다. 사르코지가 무슨 말을 하건, 뻔한 거짓말과 책략을 쓰던 최고라고 생각할 정도로 우민화 정책 효과는 성공을 거두었다.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효과가 중요하다고 보이는 유세는 많은 이들의 우려를 금치 못했다. 역대의 독재자들이 응당 그런 식으로 정권을 잡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사르코지의 선거운동을 보면서 그를 뽑은 50퍼센트의 프랑스인들은 이제 민주주의는 상관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다. 사르코지가 선거 운동내내 떠든 주요 내용은 '우리도 이제 잘 살아보자, 남이 가난하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남의 가난은 어쩔 수가 없다. 우리 프랑스인들이여 잘 살아 미국인들과 같은 부자가 되자'였다. 그 소리에 넘어간 것이다. 사르코지의 연설중에는 우리 한국도 언급된 적이 있었다. '아시아의 용, 남한의 경제적 다이나믹을 좀 봐라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라고…. 그 소리 들었을때 기분이 좀 묘했다. 프랑스는 못 사는 나라가 아니다. 빈부의 격차도 미국보다 덜 하다. 단지 지난 12년 동안 경제가 활성화 되지 않아 나라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우울모드에 빠져 있다. 사르코지의 대선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미 엘리제 궁의 주인이 되었지만 그는 2012년 재선을 이미 준비하고 있다. 그의 야망은 과연 프랑스의 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것인지 아님 재선까지 성공한 대통령이 되고 싶은 것인지 좀 더 두고 봐야 겠지만, 좌파 분열 정책은 이미 성공하고 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루와얄의 정치적인 능력에 의심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루와얄은 자신을 철저하게 배신한 베송을 비난하지 않고 없었던 일처럼 처리하였다. 베송은 1차 투표 결과이후 사르코지 진영에 합승하여 그녀를 더욱 더 비난했으며 5월 2일 사르코와 루와얄 대담 준비에 사르코지를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든, 사르코지의 전략은 들어 맞았다. 역사적으로 좌파엔 잔머리들이 많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 민주주의식으로 모든 잔머리들을 존중하다 보면 그만큼 분열을 초래하기 쉽단 이야기다. 사르코지는 이것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그는 미국의 부시가 추진한 대선방식을 도입했다. 즉, 우민화 정책, 국민에게 친밀함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되 절대 복잡한 언변으로 연설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특히 그의 연설은, 12년간 실업과 이민자들에게 시달렸다고 생각하는 프랑스의 65세 이상 투표권자들에게 정확하게 꽂혔다. 프랑스는 평균수명이 82세안팍으로 좋게 말해 장수 국가인 동시에 그 인구의 중요성때문에 유럽의 가장 '늙은 국가들'중 하나 이다. 당연히 나라의 노동력과 능동성은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1968년 5월 프랑스 학생운동이 나라를 망쳤다고 생각하며 민주주의의 의미 보담 과거 드골시대 화려했던 프랑스의 노스탈지어에 사로 잡힌 인종차별주의자들로 변신한 노인들이다. 사르코지는 여기에 표밭이 숨겨져 있다고 믿었다. 왜냐면 2002년 대선때 1차 투표결과로 극우파 르펜이 시라크의 적수로 떠올랐었는데 르펜의 유권자가 바로 이 60대 이후 세대들이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기존 우파의 젊은 층을 겨냥해서 유세장마다 미국식 다이나믹한 분위기를 이끈 것도 한몫하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르코지는 프랑스의 주요 TV 언론매체 사장들과 연계, 기자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여론, 언론조작은 외국인인 내가 보기에도 너무나 뻔했다. 루와얄과 사르코지가 TV대담을 할때 사회를 맡은 프랑스의 유명한 남자 아나운서 파트릭 뿌와브로 달롱은 루와얄의 말을 번번히 저지하고 끝까지 면박을 주는 것이 느껴졌으며 사르코지와 눈을 맞추는 것이 역력했다. TV에서는 루와얄의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을 더 많이 보여주기도 했고 대선 결과 전 라디오에서는 마치 사르코지가 대통령이 된 것 처럼 떠들기도 했다. 이 와중에 좌파의 유세는 당연히 처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루와얄과 그의 지지자들이 말을 잘해도 먹히지 않았다. 사르코지가 무슨 말을 하건, 뻔한 거짓말과 책략을 쓰던 최고라고 생각할 정도로 우민화 정책 효과는 성공을 거두었다.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효과가 중요하다고 보이는 유세는 많은 이들의 우려를 금치 못했다. 역대의 독재자들이 응당 그런 식으로 정권을 잡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사르코지의 선거운동을 보면서 그를 뽑은 50퍼센트의 프랑스인들은 이제 민주주의는 상관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다. 사르코지가 선거 운동내내 떠든 주요 내용은 '우리도 이제 잘 살아보자, 남이 가난하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남의 가난은 어쩔 수가 없다. 우리 프랑스인들이여 잘 살아 미국인들과 같은 부자가 되자'였다. 그 소리에 넘어간 것이다. 사르코지의 연설중에는 우리 한국도 언급된 적이 있었다. '아시아의 용, 남한의 경제적 다이나믹을 좀 봐라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라고…. 그 소리 들었을때 기분이 좀 묘했다. 프랑스는 못 사는 나라가 아니다. 빈부의 격차도 미국보다 덜 하다. 단지 지난 12년 동안 경제가 활성화 되지 않아 나라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우울모드에 빠져 있다. 사르코지의 대선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미 엘리제 궁의 주인이 되었지만 그는 2012년 재선을 이미 준비하고 있다. 그의 야망은 과연 프랑스의 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것인지 아님 재선까지 성공한 대통령이 되고 싶은 것인지 좀 더 두고 봐야 겠지만, 좌파 분열 정책은 이미 성공하고 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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