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홍서방 댁
어제 숙희 아줌마네 밭(통나무 집이 딸린)에 초대받아 저녁을 먹고 오는 길에 시장에서 1500원 주고 산 시금치 다발을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아줌마에게 전화를 하니 잠깐 들러 시금치 가지고 가란다. 우리집에서 아줌마네 밭까지 1시간 거리, 차비만 왕복 5천원이 넘어 그냥 드시라고 해도 숙희 아줌마는 자기 집엔 채소가 넘치니 꼭 내일 와서 시금치를 가져가란다.
비가 죽죽 내리는 와중에 시금치를 가지러 아줌마네 밭에 갔더니 홍서방 댁(나이가 많으신 분이지만 성격이 너무 스스럼이 없이 친구같아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이 와있었다. 내 임의로 홍서방 댁이라고 명명했지만 사실 그 아줌마 남편은 홍씨가 아니다. 남편은 독일인으로 키가 크고 좀 싱겁게 생겨 한국인으로 따지자면 왠지 홍씨일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내 멋대로 아저씨를 홍서방, 아줌마를 홍서방 댁이라고 부른다.
어쨌든 홍서방댁은 여기사는 대부분의 중년 아줌마들처럼 70년대 독일로 온 파독 간호사다. 30년 넘게 병원에서 일하고 이제 퇴직을 앞둔. 나는 이 홍서방 댁을 참 좋아한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꼭 오래 사귄 사람처럼 편하게 대하는 데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참 재미있다. 나이는 환갑인데 외모에 전혀 신경을 안쓴다. 염색을 안해 백발이 성성한 단발머리에 무늬없는 핀 하나 달랑 꽂고 옷도 벼룩시장에서 사입은 양 늘 추레하다. 욕은 한국말로도, 독일말로도 참 잘하는데 듣고 있으면 불쾌하기 보다 시원한 쪽이다.
홍서방 댁은 요즘 신이 났다. 두 가구가 살 수 있는 낡은 집 한 채를 샀기 때문이다. 이 집을 수리하느라 요즘 정신이 없단다. 오늘도 사실은 용달차를 몰고 문짝과 계단을 사러 건축자재상에 가는 길에 숙희 아줌마네 밭에 들렸단다. 깻잎 모종을 좀 얻어갈 양으로. 홍서방 댁은 신이 나서 집수리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다가 갑자기 문짝을 사는 일은 다음으로 미루어도 되니 집 구경이나 하러 가잔다. 나는 아줌마가 샀다는 집이 어떤지 궁금도 하고 그 집이 숙희 아줌마네 밭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라길래 쾌히 가보기로 결정했다.
홍서방 댁이 사는 집은 두 가구가 나란히 살 수 있는 이층집이었는데 정원이 아주 넓었다. 이 집은 아줌마가 평생동안 몸담아왔던 간호사 생활을 퇴직할 때가 되어 노후연금 삼아 산 거였다. 집 반쪽을 세놓으면 왠만한 연금받는 것 정도의 월세는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조금 융자를 내고 무리를 해서 집을 산 거란다. 가진 돈이 별로 없어 집수리는 두 양주가 손수 해야했는데 평생 건축과는 담쌓고 산 두 사람이 수리했다고 보기엔 집이 너무나 멀끔해 보였다. 칠도 깨끗했고 무엇보다도 집안을 훤하게 만들어주는 큼지막한 천창과 창문들, 문짝들을 둘이서 직접 달았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사람이 닥치면 다 하게 돼있더라고. 독일 인건비가 좀 비싼가? 그래서 내가 거의 다 수리했어. 우리 신랑은 높은 데를 잘 못올라가거든. 아주 벌벌 떨어. 그래서 저 나무도 내가 톱들고 올라가서 가지를 다 쳤지. 저기 저 천장보이지? 저기에 잡동사니 넣는 다락을 만드느라고 올라가서 망치질하다가 떨어졌지 뭐야. 떨어지는 통에 아파서 한동안 일도 못했어.” 높은 데도 높은 데지만 홍서방 댁은 무거운 것도 척척이다. "신랑이 집수리하느라 허리를 삐끗해서 요새 무거운 걸 잘 안들려고 그래. 그래서 정원바닥에 놓을 바닥돌도 나혼자 다 옮겼어. 저게 저래보이지만 하나에 20킬로는 족히 될걸? 저걸 혼자서 스무 개도 넘게 옮겼잖아. 근데 저거 옮기고 나니까 삐끗했던 어깨가 도로 맞춰졌는지 고질병인 어깨통증이 없어졌어." 바닥재는 또 어떤가. “독일사람들이 사실 일은 꼼꼼하게 잘하지만 느려터져서 보고 있으면 속에 천불이 나거든. 그래도 바닥만은 온돌로 하고 싶어서 전문가를 불러서 했는데 보고 있자니 내가 해도 저 사람들보다 2배로 빨리 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 그래서 아주 사람들을 잡았지. 얘네들이 시간당으로 돈을 받으니까 그 느려터진 걸 그냥 두고 볼 수가 있나. 나중에는 나도 합세해서 같이 깔았다니까. 근데 해보니까 별거 아니더라고.” 이러신다. 억척도 이런 억척이 없다. 나이 환갑에 하루종일 병원에서 일하고 돌아와서 집수리를 하느라 꽤 무리를 하신 모양인지 그간 조금 흔들리던 송곳이가 거의 뽑혔다고 한다. 이가 흔들리니 발음이 샌다며 입을 손으로 막고 계속 말씀하신다. “나도 곧 퇴직을 하겠지만 나는 퇴직하고 집에서 놀기가 겁나. 퇴직하고 집에서 쉬는 사람들 치고 성한 사람이 없어. 일할 때는 멀쩡하던 사람들이 퇴직하기가 바쁘게 여기 저기가 아파서 늘 전화통 붙들고 아프단 얘기만 해대거든. 나는 안그래야 될텐데 벌써부터 퇴직하는 걸 몸이 알고 이가 이렇게 흔들린다니깐.” 홍서방 댁은 너나없이 어렵던 6,70년대에 독일로 와서 평생동안 억척스럽게 일하다가 퇴직을 맞이한 용감한 간호사들의 대명사다. 당시 계약기간을 채우고도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남아 일한 아줌마들을 보면 하나같이 다 홍서방댁 같다. 나는 파독 간호사분들을 좀 아는데 이들 중 집에서 가정주부로 계시는 분들이 거의 없다. 대부분이 60이 되도록 아직 간호사로 재직중이다. 간호사로 와서 교수나 의사가 된 사람도 있고 한국식당을 열었거나 사업을 한 사람도 있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50대 중반의 나이에 무슨 치료사 면허를 따겠다고 공부를 시작하셨다. 이분들 모두 나이를 잊고 너무나 치열하게 사신다. 이국땅에 남아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일을 하면서 한글학교까지 세운, 지금은 퇴직할 나이가 된 늙은 간호사들. 이들에겐 요즘 우리 세대에서 찾아보기 힘든 용기, 억척스러움, 그리고 끈기가 있다. 이 분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늘 젊은 내가 너무 안일하게 사는 것이 아닌가 뒤돌아보게 된다. 집안을 다 둘러보고 돌아가려는데 홍서방 댁이 집에 온 손님인데 그냥 보내면 섭섭하다고 자꾸 밥을 짓겠단다. 그렇게 오래 기다릴 시간이 없다고 했더니 ‘그럼 라면이 두 개 있는데 그럼 두 개 끓여서 셋이서 나눠먹을까?’ 이러신다. 섭섭해하는 홍서방 댁을 뒤로 하고 집을 나왔다. 길을 걸으며 뒤돌아보니 집이 꽤 낡아보인다. 지붕에 이끼도 끼었다. 집수리 기간이 꽤 걸릴 것 같다. 일복 많은 홍서방 댁, 퇴직하고도 한동안 아플 시간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홍서방 댁이 사는 집은 두 가구가 나란히 살 수 있는 이층집이었는데 정원이 아주 넓었다. 이 집은 아줌마가 평생동안 몸담아왔던 간호사 생활을 퇴직할 때가 되어 노후연금 삼아 산 거였다. 집 반쪽을 세놓으면 왠만한 연금받는 것 정도의 월세는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조금 융자를 내고 무리를 해서 집을 산 거란다. 가진 돈이 별로 없어 집수리는 두 양주가 손수 해야했는데 평생 건축과는 담쌓고 산 두 사람이 수리했다고 보기엔 집이 너무나 멀끔해 보였다. 칠도 깨끗했고 무엇보다도 집안을 훤하게 만들어주는 큼지막한 천창과 창문들, 문짝들을 둘이서 직접 달았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사람이 닥치면 다 하게 돼있더라고. 독일 인건비가 좀 비싼가? 그래서 내가 거의 다 수리했어. 우리 신랑은 높은 데를 잘 못올라가거든. 아주 벌벌 떨어. 그래서 저 나무도 내가 톱들고 올라가서 가지를 다 쳤지. 저기 저 천장보이지? 저기에 잡동사니 넣는 다락을 만드느라고 올라가서 망치질하다가 떨어졌지 뭐야. 떨어지는 통에 아파서 한동안 일도 못했어.” 높은 데도 높은 데지만 홍서방 댁은 무거운 것도 척척이다. "신랑이 집수리하느라 허리를 삐끗해서 요새 무거운 걸 잘 안들려고 그래. 그래서 정원바닥에 놓을 바닥돌도 나혼자 다 옮겼어. 저게 저래보이지만 하나에 20킬로는 족히 될걸? 저걸 혼자서 스무 개도 넘게 옮겼잖아. 근데 저거 옮기고 나니까 삐끗했던 어깨가 도로 맞춰졌는지 고질병인 어깨통증이 없어졌어." 바닥재는 또 어떤가. “독일사람들이 사실 일은 꼼꼼하게 잘하지만 느려터져서 보고 있으면 속에 천불이 나거든. 그래도 바닥만은 온돌로 하고 싶어서 전문가를 불러서 했는데 보고 있자니 내가 해도 저 사람들보다 2배로 빨리 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 그래서 아주 사람들을 잡았지. 얘네들이 시간당으로 돈을 받으니까 그 느려터진 걸 그냥 두고 볼 수가 있나. 나중에는 나도 합세해서 같이 깔았다니까. 근데 해보니까 별거 아니더라고.” 이러신다. 억척도 이런 억척이 없다. 나이 환갑에 하루종일 병원에서 일하고 돌아와서 집수리를 하느라 꽤 무리를 하신 모양인지 그간 조금 흔들리던 송곳이가 거의 뽑혔다고 한다. 이가 흔들리니 발음이 샌다며 입을 손으로 막고 계속 말씀하신다. “나도 곧 퇴직을 하겠지만 나는 퇴직하고 집에서 놀기가 겁나. 퇴직하고 집에서 쉬는 사람들 치고 성한 사람이 없어. 일할 때는 멀쩡하던 사람들이 퇴직하기가 바쁘게 여기 저기가 아파서 늘 전화통 붙들고 아프단 얘기만 해대거든. 나는 안그래야 될텐데 벌써부터 퇴직하는 걸 몸이 알고 이가 이렇게 흔들린다니깐.” 홍서방 댁은 너나없이 어렵던 6,70년대에 독일로 와서 평생동안 억척스럽게 일하다가 퇴직을 맞이한 용감한 간호사들의 대명사다. 당시 계약기간을 채우고도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남아 일한 아줌마들을 보면 하나같이 다 홍서방댁 같다. 나는 파독 간호사분들을 좀 아는데 이들 중 집에서 가정주부로 계시는 분들이 거의 없다. 대부분이 60이 되도록 아직 간호사로 재직중이다. 간호사로 와서 교수나 의사가 된 사람도 있고 한국식당을 열었거나 사업을 한 사람도 있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50대 중반의 나이에 무슨 치료사 면허를 따겠다고 공부를 시작하셨다. 이분들 모두 나이를 잊고 너무나 치열하게 사신다. 이국땅에 남아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일을 하면서 한글학교까지 세운, 지금은 퇴직할 나이가 된 늙은 간호사들. 이들에겐 요즘 우리 세대에서 찾아보기 힘든 용기, 억척스러움, 그리고 끈기가 있다. 이 분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늘 젊은 내가 너무 안일하게 사는 것이 아닌가 뒤돌아보게 된다. 집안을 다 둘러보고 돌아가려는데 홍서방 댁이 집에 온 손님인데 그냥 보내면 섭섭하다고 자꾸 밥을 짓겠단다. 그렇게 오래 기다릴 시간이 없다고 했더니 ‘그럼 라면이 두 개 있는데 그럼 두 개 끓여서 셋이서 나눠먹을까?’ 이러신다. 섭섭해하는 홍서방 댁을 뒤로 하고 집을 나왔다. 길을 걸으며 뒤돌아보니 집이 꽤 낡아보인다. 지붕에 이끼도 끼었다. 집수리 기간이 꽤 걸릴 것 같다. 일복 많은 홍서방 댁, 퇴직하고도 한동안 아플 시간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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