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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블로그] 개학을 앞두고-프랑스 파리에서

등록 2007-09-04 17:02

프랑스는 해마다 7,8월 두달 간의 여름 방학이 끝나는 9월이면 새학년이 시작된다. 우리집 꼬마는 3년의 과정을 거치는 유치원을 끝내고 5년 과정의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단체 생활을 좋아하고 즐기는 아들 녀석은 학교로 다시 돌아가 친구들을 만날 생각으로 벌써 부터 들떠있다.

지난 3년 동안 개학 준비물은 실내화와 간단한 비스킷 한통, 크리넥스 화장지 한통이 전부였다. 그리고 매일 빈손으로 학교를 다녔었는데 초등과정은 학교에서 준비물 리스트를 따로 작성해 주었다.

- 학교가방은 최대한 가로 세로 40 x 30 일것, 필통은 두개를 준비할 것.
- 필통1에 들어갈 목록은 연필 8개, 싸인펜 12개, 색연필 12개.
- 필통2에 들어갈 목록은 20g짜리 풀 2개, 지우개 2개, 20센티 납작한 자, 가위 하나.
- 그외 기타 플라스틱 개인용 하얀 칠판과 무성 사인펜 8개, 크리넥스 화장지 한통, 미술도구로 팔렛트와 붓 세개 등등이다.

프랑스는 자녀 교육에 있어서 가정 교육의 역할과 학교 교육의 역할 사이 균형을 중요시하는데, 유치원 제도는 만 3세부터 시작해 어린 아이들이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학교에서 생활하도록 되어있다. 급식은 아이들이 다양한 음식을 체험할 수 있도록 일주일 식단이 짜여있고, 도시락은 알레르기 증세를 비롯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금지되어 있다. 집에서 점심을 먹이길 원하는 부모들은 점심시간 마다 학교로 아이들을 데리러 와야 한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은 주로 단체 생활에 필요한 질서와 복종을 배운다. 아직 한참 어리다고 볼 수 있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일정한 규칙과 권위에 따르도록 훈련을 받는 모습을 보고, 처음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 나는 조금 불만스러웠다. 유치원 과정은 주로 아이들이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을 권위와 질서에 익숙한 로보트처럼 만드는 분위기로 보여 왠지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화장실 볼일도 혼자서 다 처리했고, 심지어 자기 방도 스스로 정리하기 시작한데다가 학교 급식을 먹기 시작한 이후로는 입맛도 다양해 지고 식사 예절도 배워왔다. 부모인 우리가 한 일은 별로 없이 어떨땐 학교에서 우리 아들을 교육시키는 점이 더 많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었다.

유아기에는 어른들의 권위와 질서에 따르도록 교육시키다가 점점 사춘기로 들어 서면 학생들의 활동에 크게 의무를 부여하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판단하도록 독립적인 행동 방식을 키우는 것이 유럽식 교육인 것 같다. 어릴 땐 가급적 자유스럽게 키우다가 자라면서 권위에 따르도록 제약과 의무를 부여 하는 일본과 한국, 대만 등의 동양식 교육과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지만, 어떤 제도가 더 낫다고 강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유럽식의 교육제도가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정신문화의 산물인 것처럼 의식의 변화 없이 제도만 변화시킨다고 장점을 이끌어 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외 3년 과정의 유치원 교육은 자기 표현 능력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은 유치원 마지막 과정에 시작하는데 학교에서는 부모들에게 아이들이 글쓰기와 읽기를 집에서 익히는 것을 만류할 정도로 언어 표현 위주의 교육을 강조한다. 그래서 인지 프랑스 아이들은 아주 수다스럽다. 지난 봄에 아이들이 루브르 박물관으로 견학가는 것을 참석한 경험이 있는데, 아직 책을 읽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꿰뚫고 있어서 무척 놀라웠었다. 쓰고 읽는 태도보다 듣는 태도, 청각을 통한 교육효과가 유아기에 있어서 더 중요하다는 이론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집에서 약 3분거리에 떨어진 곳에 있다. 우리가 사는 동네는 파리시내에서 학군이 좋은 지역이 아니다. 서울처럼, 파리도 센느강을 기준으로 강북과 강남으로 나뉘어질 수 있는데, 우리는 아프리카와 아랍, 아시아 등의 이민 세대가 많은 강북지역에 살고 있는 셈이다. 파리의 좋은 학군은 강남에 있다. 당연히 프랑스 전통 부르주아 집안들도 강남에 모여 있다.

어쨌든 우리 부부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로 아이를 보내고 싶어했고, 그 학교는 사립이었다. 프랑스의 공립학교는 모두 학비가 면제된 반면 월급이 한달에 약 250만원 이상인 가정은 하루 당 6천원 정도 하는 급식비를 지불해야 한다. 사회주의가 존중되는 국가 답게 아주 가난한 가정의 학생들은 고등학교 과정까지 학비와 식비 모두 면제된다. 그러나 사립학교라고 해도, 국가에서 어느 정도 재정을 지원 받기 때문에 파리 강남의 역사적으로 유명한 스타니슬라스 가톨릭 사립 학교를 제외하고는 학비가 그닥 비싸지는 않다.

우리 아이가 다녔던 유치원은 초등학교를 거쳐 고등학교까지 이어져 있는데, 석달에 30만원 정도 하고, 학생들의 인원수가 적어서 각 학년당 반이 하나 뿐이라는 장점, 집에서 가장 가깝다는 점 등등 때문에 선택하게 된 것이다. 사립 유치원은 보통 선착순으로 원서를 접수하는데, 아침 일찍 아이를 등록했었다. 원서 접수 이후 원장에게 아이를 데리고 가서 면담을 하는데 아이가 처음 학교라는 공간에 흥미를 느끼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어떤 아이들은 원장 얼굴만 봐도 울음을 터뜨리거나 부모의 옷자락을 잡고 얼른 나가자고 하는 경우도 있다는데, 그럴 경우 원장은 입학을 보류한다고 들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원장의 며느리가 한국사람이라는 것도 아이를 편하게 학교로 보내게 된 동기가 된 것 같다.

프랑스에선 만 10세 이하의 어린이가 혼자 등교와 하교를 도맡아서 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파리 같은 대도시내의 학교들이 셔틀버스를 운영하는 것도 아니다. 약 20여년 전 부터, 아마 아이들의 실종 사고를 우려해서인지, 10세 미만의 아이들이 혼자 밖으로 나가 놀거나 돌아다니는 일이 없어서 바로 옆집에 놀러가도 데려다 주고 데리고 와야 한다. 한번은 아이를 앞세우고 시장을 가는데 아이가 혼자 좀 떨어져서 뛰어갔다. 길거리에 어린 아이들이 혼자 다니는 일이 없으니까 사람들이 다 쳐다보던 기억이 난다. 결국 어떤 할머니가 나를 보더니, 아! 저 아이 엄마가 당신이군요! 하면서 안도의 표정을 띄웠었다. 동양인이니까 식별이 금방 되던 모양이다.

프랑스는 개인주의적인 유럽 사회답게 아이들의 교우 관계도 아이들 위주로 이어지므로 부모가 굳이 개입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이다. 아이들끼리 생일잔치를 열어도 부모들은 정해진 시간에 아이들만 떨구어 놓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 정해진 시간에 데리러 오기 때문에 부모들 접대에는 신경쓰지 않도록 되어있다. 시간 약속에 대해서 프랑스 사람들은 아주 철저하다. 늦을 경우에는 미리 꼭 연락을 해야 하는 것은 기본적인 에티켓.

아이들이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면 부모들끼리도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은 어느 사회생활에서나 기본적인 예절이다. 그러나 사회계층간의 구분과 각 가정마다 교육방식이나 취향이 분명한 사회에서 부모들도 아이들처럼 함께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는 일은 극히 드문 현상이라고 받아들여진다. 단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기에 어려운 부모들 사이라 할 지라도 아이들의 동심어린 우정이 거리낌 없이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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