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새 ‘다민족국가’ 변신에도 폭력·범죄 안늘어
비시민권자 정치참여…영·미에 당한 차별도 영향
비시민권자 정치참여…영·미에 당한 차별도 영향
로티미 아데바리는 지난 6월 아일랜드 역사상 첫 흑인 시장으로 선출됐다. 하지만 그는 아일랜드 국민이 아니다. 7년 전 나이지리아에서 건너온 이민자인 그는 세금을 내는 외국인에게 지방정치 참여를 허용하는 이 나라의 이민정책 덕분에 수도 더블린 서쪽 위성도시인 포트리시 시장이 될 수 있었다.
미국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한때 유럽의 대표적인 ‘이민자 수출국’이었던 아일랜드가 이민자들의 사회 참여를 유도하는 모범적인 ‘이민자 수입국’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5일 보도했다.
켈트족의 나라인 아일랜드는 최근 10년 사이에 이민자가 급증하며 다민족국 반열에 올라섰다. 1999년 아일랜드 정부가 노동허가증을 내준 외국인은 6천명에 불과했지만, 7년 뒤인 2006년에는 이보다 8배 늘어난 4만8천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궂은 일을 도맡으며 1990년대 아일랜드 경제의 급성장을 ‘아래에서 지탱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 결과 일부 지역에서는 2002년 이래 외국계 이민자의 수가 120%나 늘어났다. 수도 더블린에는 학생의 50%가 외국인인 초등학교가 생겨났다.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을 법하지만 상황은 다르다. 이 나라에서는 2005년 파리나 2006년 런던같이 인종 갈등이 야기한 폭동이나 테러 같은 심각한 범죄가 전무하다시피했다.
그 이유는 비시민권자들의 사회참여에 있다. 아일랜드는 비시민권자들의 지방정치 참여를 허용하는 세계 15개국 가운데 하나다. 현재 아일랜드 경찰에는 중국과 폴란드·캐나다·루마니아·덴마크 국적의 이민자들이 경찰로 일하고 있다. 2004년 개정된 아일랜드 고용 평등법이 △국적 △종교 △이혼 여부 △성적 취향 등 총 9개 항목에 근거한 차별 금지를 명시하고 있다.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의 이런 ‘진보적’인 정책에는 영국과 미국 등에서 뼈저린 차별을 겪었던 경험이 반영돼 있다. 과거 아일랜드를 지배했던 영국인들은 ‘개와 흑인, 아일랜드인 출입금지’라는 푯말을 내걸 정도로 아일랜드 사람들을 노골적으로 차별했다.
그러나 여전히 소외감을 느끼는 이민자들이 적지 않다. 2006년 조사에서 아일랜드에 사는 이민자의 35%가 “국적이나 인종 때문에 조롱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고, 흑인의 경우 이 비율이 53%로 훨씬 높았다. 지난 7월에는 경찰직에 합격한 한 시크교도가 “근무 중 터번(두건) 착용 금지는 종교에 근거한 차별”이라고 항의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아데바리 시장은 “아일랜드가 외국인 이민자들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며 다문화주의를 시험한 것은 불과 10년밖에 되지 않았다”며 “세금을 내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결정하는 것은 지역사회에서 소속감을 높여준다”고 지적했다.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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